제가 원래 한국 가요조차 거의 안듣던 철저히 서브컬쳐스러운 인간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남들이 동방신기 샤이니 빅뱅을 외칠때 저는 맥시멈 더 호르몬이라는 약간 그로테스크적인 느낌의 락밴드를 듣다가 브리티시 밴드들에 혼자 꽂혀 있었지요. 오아시스가 해체한 직후의 시기에 오아시스 팬이 돼서 눈썹끼리 서로 붙을 것 같은 두 영국 아저씨들의 굿즈를 샀었어요. 아직도 그 아저씨들 스티커가 구석에 잔뜩 쌓여있는데 쓸데도 없고 이쁜 아저씨들도 아니어서 처치 곤란합니다. 아무튼.
제가 원체 얼리어답터가 아니라 항상 꽂히는 노래 있으면 한달 내내 그 노래만 듣는 인간이라서 정말 아는 밴드들만 알고 한국 가수들은 몇몇 인디밴드 말고는 잘 몰랐어요. 특히 힙합 장르는 전혀 몰랐어요. 그리고 아이돌들의 타이틀 댄스곡들을 싫어했고(아직도 제 스타일은 아니긴 함) 씨엔블루도 싫어했던 기억이 납니다(이불에 구멍이 날 락부심)...
암튼 어쩌다 어쩌다 방탄을 좋아하게 됐는데.. 역시 타이틀은 귀에 꽂고 들을만큼 취향이 아니더라구요. 그러다가 수록곡 몇몇개를 듣게 되었는데 윙즈라는 앨범에 멤버들이 각자 솔로곡이 수록되어 있더라구요. 듣다가 랩몬스터의 reflection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가사가 너무 좋고 조용히 랩하는게 넘 제 취향이라 한달 동안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곡도 듣게 되고 특히 tomorrow라는 노래 가사가 너무 공감이 돼서 그것도 몇달동안 맨날 들었어요. 그런식으로 듣다보니까 몇몇 타이틀곡 빼고는 제 트랙리스트에 빼곡히 차더라구요(한동안 정말 방탄곡만 들었다는.) 아직도 피땀이나 쩔어는 제 트랙리스트에 못들어갑니닼ㅋㅋㅋㅋ 뱁새 21세기소녀 다 듣지만 저는 댄스곡이 안맞나봐여
거기에 방탄애들이 내는 싸이퍼나(싸이퍼 파트3은 제 노래방 18번입니다) 믹스테잎도 들으면서 힙합에 관심이 갔어요. 아이돌 노래 들으면서 무슨 힙합이냐 하실수도 있는데 랩몬이나 슈가 믹스테잎 낸거 듣다보니까 랩이 멋질수도 있구나 했어요(그전까지는 힙합알못 온리 락밴드) 랩몬의 do you나 농담 역시 꽂혀서 한달동안 들었구여. 슈가가 내는 것도 정말 자주 들었습니다. 슈가는 랩 가사가 직설적인 편이고 랩몬은 좀 비유적인 편인데 저는 랩몬쪽이 더 취향이더라구요. 거기에 애들이 트위터에 올리는 음악추천이나 이런걸 통해서 다른 가수들도 많이 알게되고 저 자체로도 힙합을 더 듣게 되더라구요.(그전까지는 쇼미더머니도 안좋아했음)
암튼 아이돌 하나를 좋아하고 나니까 다른 아이돌 노래도 편견 없이 듣게 되더라구요. 막상 들어보면 좋은 노래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고집스럽게 옛날 노래만 주구장창 들었다면 요샌 멜론에 나오는 신곡들은 일단 들어보고 보는 인간이 되었어요. 우리나라에 좋은 가수들 많더라구요 ㅠㅠㅠ 흑흑 멍청한 인간아
그리고 제 동생을 매일 같이 저를 놀립니다. 그렇게 아이돌 비웃던 인간이 이젠 자기보다도 신곡을 꿰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취좆하면 안된다는 건 진리였습니다. 결국엔 취좆하던 것들을 파게 된다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