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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연하의 부인과 결혼한 이야기 _ 김장전쟁
게시물ID : humorstory_428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37
조회수 : 5817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4/12/01 11:25:35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293  1편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337  2편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596  3편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28651  4편
 
김장철입니다. 다들 김장은 하셨는지요? 요즘은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도 많다고 합니다. 3*년째 매년 김장=생노가다를 하며
자란 저는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들을 100% 이해합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매년 가을 김장하는 날 만큼은 아줌마들 광란의 축제였습니다.
김장 품앗이를 한 아줌마들이 그날만큼은 가족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막걸리를 마시고 수육을 먹는 날이었거든요.
물론 거하게 취하면 80년대 관광버스를 연상케 하는 파티장으로 마을회관은 변하곤 했습니다.  
저도 옆에서 막걸리도 줏어 먹고, 고기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많이 바뀐게 어머니들이 돌아가면서
김장 품앗이 한 뒤 밤새 씹고 마시고 하던 격렬한 농촌의 파티문화는 없어지고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김장을 하더라구요.
물론 아직도 노동 인력이 풍부한 우리집에 김장시 인건비가 발생하는 사태는 없습니다. 그럼....
 
나는 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라 부인이 요리를 하도 못해서 김장할 때 참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굳이 그녀가 김장에 한 몫을 하고 싶다면 밭에서 배추나 뽑았으면 하는 마음 정도.. 
아니면 강인한 체력을 활용해 김장독을 묻을 땅이나 팠으면 하는 생각이다.
특히 김치 속을 넣는 작업은 정교한 손놀림과 감이라는게 중요한 데 우리 부인은 큰 손 만큼이나 김치속(양념)을 배추에
피칠갑 아니 김치속칠갑을 만들어 놓고는 했다. 간혹 조폭영화에서 담근다는 표현이 쓰는데, 딱 그 표현에 걸맞는
배추와 무를 양념으로 학살하는 퍼포맨스를 보이곤 했다. 부인 손을 거쳐간 배추는 짜거나 싱겁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 시골은 매년 김장철만 되면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김장 배틀이 벌어진다. 바로 누구네는 몇 포기를 담궜는데, 우리는 몇 포기를
담궜네 하는 질적 맛의 승부가 아닌 물량의 승부였다. 우리 어머니는 100포기, 200포기 담근다면서 포기 단위로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저기 밭에 있는 배추 보이지? 저거 다 담글거여" 라고 하셨다.
항상 어머니께 어머니 포기하면 편해요. 제발 포기 단위로 하세요. 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멜서스의 인구론을 신봉하셨는지 우리 가족의 인구수가 증가했으므로 심는 배추의 수도 늘어나야 한다는 이론을 펼치셨다.
 
우리 집 김장의 최대의 적은 포기 배틀을 하는 아줌마들도, 김장철만 되면 몸살을 앓으시거나 갑자기 마음의 병이 생기시는 아버지도 아닌
바로 다섯 명의 고모들이었다. 특히 김장철만 되면 어머니와 대립구도를 펼쳤는데, 미네랄만 캘줄 아는 바보 scv처럼
빈김치통만 들고와서 김치통을 가득 채우고 가는 고모들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어머니에게 "김치속 맛이 이상하네, 배추가 덜 절여졌네 등"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는 말을 했다. 어머니는 항상 고모들이 미네랄을 캐고 돌아가는 scv처럼 줄줄이 돌아가는 고모들을 보시면서
(저런 쌍ㄴ......너무 심한 욕이라서 쓸 수 가 없네요.)
그런데 그런 고모들에게도 최강의 적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부인님이셨다. 부인은 연기가 아닌 실제로 김치를 잘 버무리지 못하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 고모들이 옆에서 훈수를 두거나 시범을 보이면 바로 물고 늘어졌다.
마치 scv를 스토킹하며 집요하게 한대씩 두들겨 패는 저글링처럼 그녀는 집요하게 고모를 해맑게 웃으며 쫓아다니면서 "그럼 어떻게 해요?
고모님이 시범을 보여주세요." "아.. 이렇게 김치속을 넣는거구나. 헤헤" 등 내가 봤을 때는 전혀 귀엽지 않은 오히려 분노를 채워주는
본인은 귀요미 짓이라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어그로를 끌었다. 분노가 가득찬 방태전사같던 고모들도 마지못해 앉아서 김치속을 넣으면
그때부터는 고모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계속 말을 시키면서 김치를 버무리게 했다. 특히 올해는 9개월 된 아들을 업고
"저라도 김치를 담그겠어요" 하는 눈물 방화의 지존 <엄마없는 하늘 아래> 와 맞먹는 연기력(사실 부인은 올해 김장대열에 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사전 매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 된다)으로, 다섯 고모를 풀파티로 김장전선에 참여시켜 어머니의 40년 한을 풀어드렸다. 
어머니는 과거 효도관광으로 포장한 지옥같던 중국여행을 다녀오시고 심각한 변비에 걸리신 적이 있었는데, 보름간 고생하신 뒤 변을 보셨을 때
환희에 찬 표정보다 더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우리집 남자들은 주로 김장 때 배추를 뽑아서 나르고, 소금에 절이는 사전 작업과 김장독을 넣을 자리를 파고, 묻는 작업을 주로 한다.
물론 김장철만 다가오면 온 몸과 마음의 병이 생기시는 아버지는 항상 사라지신다. 큰 형은 언제나 그러듯이 배추밭에서 일단 배추를 감상 한 뒤
 "올해 배추가 실하네요.. " 이 멘트와 동시에 밭에 앉아 애니팡2 아니 올해는 크래쉬 오브 클랜을 했다.
항상 일하는 건 고추밭의 에미넴인 작은 형과 검은 소 인 나다.  
고추밭 에미넴 아니 배추밭의 롤로노아 조로로 빙의한 형은 무자비한 삼도류로(양손에 부엌칼, 그리고 입에는 담배..) 배추를 차례로 쓰러뜨린다.
(간혹 티비에 하수들이 배추를 잡고 뽑는데 몇 포기는 그렇게 가능하겠지만, 배추도 손상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허리를 다른 용도에 쓸 수
없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낮 일을 아무리 잘하면 뭐하는가! 중요한 밤 일을 잘해야지) 그러면 검은 소인 내가 수레를 끌고 배추를 실어
나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작은형과 내가 놀기만 하는 큰 형에게 울분에 차서 놀기만 하고 일을 왜 안하냐고 항의하면, 큰 형의 "이따 밤에 좋은데
데려가 줄께! ♡" 이 말에 우리는 다시 말없는 롤로노아 조로와 검은 소가 된다.
그렇게 배추를 나른 뒤 400리터 대형 다라이 몇 개에 배추를 넣고 소금을 뿌려 절이면 두 마리의 그날 일은 끝난다. 물론 버무릴 때 잘 절여진 배추를
나르는 것도, 김치를 담긴 김장독을 파고 넣는 것도 우리 두 마리의 일이다. 나머지 한 마리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오겠노라로 떠난 뒤
오지를 않는다. 나쁜 놈 우리 집에서 스타벅스까지 1시간 40분 걸리는데....
 
그렇게 1박 2일의 김장체험을 끝내면 저녁에는 오랜만에 형제들간에 술자리가 벌어진다. 힘들게 스타벅스 커피를 사온 큰 형도, 아들이라
부르지만 실질적인 누렁소인 작은 형도, 검은 소인 나, 이렇게 세 형제가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하며 술을 마신다. 큰 형이 좋은 데 데려가 준다는
이야기를 머리 속에 계속 상기하며 술을 마신다. 그렇게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큰 형이 가져온 이상한 술을 마시다보면 잠깐 눈이 감긴다. 눈을 뜨면 이미 TV에는 동물농장이 나오고 있고 작은 형과 내가 마치 아나콘다와 카이만 악어처럼 서로 부둥켜 안고 자고 있다. 막걸리와 소주는 한일전을 앞둔
축구선수들의 비장한 마음으로 버텼는데 그 이상한 술을 마시고 실신했던 것 같다. 그 나쁜 새끼는 또 모닝커피 즐긴다고 1시간 40분 걸리는 스타벅스로
떠났다고 한다. 여자들 (어머니, 고모들, 형수님, 부인)도 김장을 마친 날 밤에서 안방에서 한 잔 하면서 그동안 쌓인 수다를 푼다. 특히 올해는 우리 부인의 득남과 팔씨름 대회 준우승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그런데 아버지는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 계신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김장을 마친 다음 날 SCV 들 아니 고모들이 먼저 줄줄이 떠나면 큰 형과 나도 서울로 향한다. 롤로노아 조로 아니 작은 형은
한 명 한 명 떠날 때마다 "내가 고향을 지킬테니 너희들은 걱정마" 이런 표정으로 배웅을 해준다. 부인은 어머니를 안아 드리며, 마음에는 없을 거
같은 "어머니 서울 한 번 꼭 놀러오세요" 라는 멘트를 남긴다. 어머니는 다른 누구보다 1박 2일간 친딸처럼 옆에서 챙겨주고 이야기를 해준 막내
며느리가 서울로 가는게 가장 서운하신 모양이다.  트렁크에는 김치통을 몇 개 실고 뿌듯한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안보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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