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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뭐...
게시물ID : freeboard_6466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자냐
추천 : 1
조회수 : 15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27 22:14:26

난 고등학교때 부터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한다해도 돌아서면 잊어먹는 그런 아이.

 

그렇다고 잘 노는 것도, 사고를 치는 것도, 지각을 하는 것도 없는 그냥 성적은 항상 뒤에서

 

놀지만 담임 선생 머리는 아프게 하지 않는 학생 딱 그 정도 였다.

 

하지만, 영어는 그나마 남들보다 조금 덜 뒤떨어지는 편이란게 유일한 위안 이었다.

 

아 그리고 또 하나의 위안, 영어로 상고 다니는 친구를 일주일에 한번씩 과외형식으로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

 

3년 내내 성적이 안 좋으니, 수능 점수는 잘 나올리가 없었고, 게다가 수능날 점심을 소보루빵으로

 

싸가는 바람에 점심에 체해서, 수능 3,4교시는 완전 망쳐버렸다. 내가 과외시켜주던 내 친구보다

 

내 외국어 영역 점수가 더 낮다는 사실은 쉽게 떨치기 힘든 충격이었다.

 

결국 나를 받아주는 학교는 양산에 4년제 대학교. 부산에서 내가 다니던 대학교 이름대면 알수없는

 

묘한 웃음을 받게되는 학교 뿐이었다. 나는 거기서도 공부는 하지 않았다. 소주 2잔이 주량인 나에게

 

술 마시느라 놀 일도 별로 없었는데, 그냥 놀았다. 지랄맞게도 난 그 흔한 스타도 할 줄 모르는 인간

 

이라서, PC방을 가서 인터넷 서핑하면서 시간 때우고 놀다 집에 가는 게 전부.

 

방학때는 남들 도서관에서 스펙이다 뭐다 공부할 때, 집이 특별히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아르바이트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옷 수선집 배달 , 레스토랑 써빙, 고깃집 불판 닦이 등등.

 

솔직히 말해서, 대학때 까지도 공부는 모르고 살았다. 내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집에서는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준비하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하고, 학기 중에 그나마 관심있어하던 광고공모전

 

은 번번히 떨어져서 남은 것도 없었다. 전공은 금융이었지만, 광고과에만 들락 날락 하다 보니,

 

전공교수들은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았다. 4학년 1학기 때까지 전공 교수들 한테 무시를 당했고

 

그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스펙은 반 나절 공부하고 딴 유통관리사 하나였다. 평균학점은 3,0 될까

 

말까였다. 사실 절망적이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이제 진짜 취업을 걱정해야 할 때가 됐는데,

 

4학년 1학기때 교양과목에서 처음 알게 된 교수님이 서울에 있는 포워딩 업체에 나를 소개해줘서

 

취업을 시작했다. 나는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어서, 사회생활도 아르바이트랑 별 다를게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은 정말 큰 착각...거의 매일 여직원들과 싸웠고, 3개월이 되던 시점에

 

짤렸다. 그 당시에 형은 집에서 자격증 공부한다고 돈 벌이가 없고, 20년을 지게차 운전해도 월급 2백이 채

 

안되는 아버지에 의지한 채 우리집은 살아가고 있던 상황에서, 나는 카드 빚 100여 만원이 있었다.

 

집이 그런 상황에서 회사에서 짤렸다고 말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회사에서 짤리고, 3개월을 서울에서 지하철 택배 알바 같은거 하면서

 

버티가 결국 부산으로 내려갔다. 집에다가는 회사가 갑자기 너무 어려워 져서, 나올수 밖에 없었다고 거짓말 하면서...

 

하지만 카드 빚이 있는 걸 형한테 들켜버려서 나는 형한테 맞아야만 했고 나이 먹고 맞았다는 사실에 내 자신이 한심해서

 

가출을 했다. 돈이 없어서, 찜질방 하루 치 돈 내고, 2-3일을 숨어 지내기도 하고, PC방에서 자기도 하고, 한달을 그렇게

 

방황하다 다시 서울로 갔다. 다행히 운 좋게도, 외국계 포워딩회사에 1년 계약직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고, 집에 연락

 

해서 서울에서 잘 지낸다고 연락도 하면서 괜찮아 지나 싶었지만, 여직원들하고의 불화로 6개월을 채 못 넘기고 또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복귀...그리고 볼트 공장에 한달에 120 받아가면서 수입업무 담당으로 일하게 되었다.

 

토익 점수도, 외국인 하고의 대화 경험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중국 출장 및 수입 거래처 가격 협상 같은 업무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그 회사 시스템이 개판이라서, 내가 하는 실수는 잘 드러나지 않았고,

 

1년 6개월을 하루 12시간 격주 근무, 120이라는 월급을 받아가며 버텼다.

 

내가 그만 둘때 내 위에 부장은 나를 못 그만두게 할려고 계속해서 설득했다.

 

나는 울 뻔 했다. 매 번 들어가는 회사마다 짤리기만 하던 내가 회사에서 못 그만두게 막는 모습이 실감나지

 

않아서 울 뻔 했다. 그리고 다시 벨기에계 외국계 화학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그때 부터 서서히 내 모습이

 

안정되어 가는 걸 느꼈다. 지금은 다시 이직을 해서 두바이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가끔 난 억세게 운이 좋았

 

다고 생각한다. 토익 점수도 없고, 평점 3점 겨우 넘기는 학점, 누구한테 털어놓을 수 없는 학교 이름.

 

그냥 적어보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내 모습을...33살 아직 철 없이 살고 있는 놈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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