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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혁]그때 그 여중생(7)
게시물ID : humorbest_426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oryry님꺼
추천 : 19
조회수 : 1848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5/31 20:12:51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5/31 12:36:30
음 누구를 위하여 야그를 퍼오는가 추천 하나 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오

-7- 

어느새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옷 깃을 여미며.. 

과외를 가는데.. 

그 애한테 전화가 왔다. 



"선생님 미안~ 오늘 학교에서 볼일 있어서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잦다. 

방송반 연습 때문 인줄은 알지만... 

한소리 하려고 하는데. 



"야채 호빵 사다 놔요 데워 먹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린다. 




"여보..오늘 야근 해야 돼.." 

"또? 당신 자꾸 이러.." 

"순두부 찌개 끓여놔." 

딸깍.. 



..이라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도 꼬박꼬박 전화를 해주시니.. 

얼마나 자상한 남편인가... 



아무튼 

왔던 길을 30m 가량 되돌아가 

호빵을 사고 

한참을 걷다보니.. 



요즘들어.. 

조건 반사적으로 그 애의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 환불 할 수는 없고.. 



"이건 내가 먹어야 겠다." 



왜 그렇게 유치한 결심을 했는지 모르나... 

아무튼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호빵을 먹기 시작했다. 



이따가 보면 확실하게 다그치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개 먹고.. 

담배 한 개피 피우고. 

다시 한개 더 먹고 있는데. 



"추운데 여기서 뭐해요?" 



그 애가 나타났다. 



"보다시피 호빵 먹고 있다" 


"와.. 역시 선생님 최고! 기다렸다 같이 먹지...배고팠나 보구나" 



호들갑스럽게 호빵 봉지를 들었다가.. 



"어 없잖아 이게 뭐야" 



임마 열받지? 



"니 줄려고 산거 아니다.나 배고파서 샀다" 



최대한 퉁명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왜?" 


"한 입만 줘요오..." 



그 애는.. 전혀 분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괜히 호빵 두 개를 먹은 나만 바보가 된 것 아닌가. 




그래서.. 

발끈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안돼. 니가 사먹어" 



그 애는 열받기는 커녕.. 

씨익 웃으며 내 얼굴을 내려다 본다. 

"삐졌냐? 니가 그렇지 뭐..." 하는 표정이었다 



"알았어요, 사 올게요 잠깐 기다려요 그럼" 



돌아서서 뛰어가는 그 앨 보며.. 

퍼뜩 정신이 들었다. 

여기서 만약 얘를 그냥 보내면.. 

나는 호빵 심부름 시켰다고 삐진 놈이 되는 것이었다. 




"잠깐...장난이다 내가 사줄게 같이 가자" 


"그럴 줄 알았죠... 나랑 같이 걷고 싶어서 그랬구나?" 




결국... 왔던 길을 한참이나 돌아가 

야채 호빵을 샀다. 



"더 안먹어요? 혼자 먹기 미안한데." 



너 열받게 하려고 벌써 두개나 먹어 치웠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애는 호호 불며 호빵을 맛있게도 먹었다. 

아깝다는 듯이 야금 야금.. 



"맨날 여기를 지나치면 사먹고 싶은데 용돈이 빠듯해서 말이지.." 



이봐 이봐.. 

내 용돈도 빠듯 하단다. 



여튼.. 

그 앤 호빵 하나에 기분이 좋아 졌는지.. 

또 쉴새없이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우리 선배들 진짜 웃긴거 있죠? 

부실 청소하고 있는데 옆에서 과자 봉지 마구 버리구.. 

자기들은 손 하나도 까딱 안하면서" 



바닥에는 플라타너스 낙엽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어느새 계절은 늦가을이다. 


그 애는 낙엽들을 징검다리 처럼 밟으며.. 

종종 걸음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 옆을 맴돈다. 



"선생님 근데 있잖아요, 

플라타너스 잎은 너무 무식하게 커요..색깔도 안 예뻐요" 


"야..입에 뭐 넣고 말하지 마" 



그러자.. 

그 애는 야금 야금 거리던 호빵을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에헤 선생님 이것 봐요 야채 호빵" 



하면서... 

입을 벌리고 얼굴을 들이 민다.. 



"욱.. 드러워. 저리 가지 못해" 

"흐흐 당면도 들었어요 맛있겠죠?" 



이런 애를 상대로 잠시나마 삐져 있었던게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저리 치워. 진짜 드러워" 

"자 아~ 좀 드릴까요?.. 꼭꼭 씹어 놨으니까 소화도 잘될거예요 " 

"너 여자애 맞냐?" 

"그럼요 이렇게 자상하고 상냥한 여자애 보셨어요? 자 아~ 얼른~ 맛있어요" 



얼굴을 거의 밀어내다 시피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맛 있는데 왜 그러지?" 



피시식 웃는 그 애를 보며.. 



"너 그런데... 너 요새 좀 살찐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인데. 



예상치 못하게.. 

그 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이다. 



"엑? 입 맛 떨어지게..." 



조금 동요한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빵을 먹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너 저녁 먹고 그거 또 먹는거지?" 

"무...무슨 말씀..." 



기회를 잡았을 때.. 

집중 공격... 



"저... 배 좀 봐..." 

"배.. 배가 어딨어요?" 



이거야 말로..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저질 복수극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매우 재밌다. 



"이 볼때기 살은 또 뭐냐" 



나는 그 애의 볼을 꼬집으며..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어딜 만져요!" 



그 애는 진짜로 삐졌는지 

내 손을 탁 뿌리치고는.. 

뒤도 안돌아 보고 뛰어 가버린다. 



뛰면서도 여전히 호빵은 먹고 있다. 



음... 

좀 너무했나? 

여자애들은 살쪘다는 말에 민감하던데.. 



뒤따라 걔네 집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 주셨다. 



"어서와요 선생님. 좀 늦으셨네요" 

"네 오다가 일이 좀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그 애의 방쪽을 흘끔 돌아보며.. 



"그런데 무슨 일인제 쟤가 오늘 입도 안열고 그냥 방에 들어가네요" 

"아.. 그래요?" 



진짜 좀 충격이었나? 

뭐 그 정도 얘기에 충격을 받다니.. 

여자애는 여자애구나... 



방에 들어가 보니.. 

그 앤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자 공부하자." 



내가 옆에 앉자 그 애는 종이를 하나 쓱 내밀고는 

침대에 가서 이불을 덮고 누워 버린다. 



[제가 그 동안 선생님께 너무 막 대한게 아닐까 생각 했습니다. 

오늘 아파트 앞에서 혼자 호빵을 드시고 계신 모습을 보고.. 

사실은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맨날 과외 늦은 것도 모자라.. 

호빵까지 사달라고 조르고.. 

얼마나 속상하셨으면.. 


눈에 선 합니다.. 

선생님 성격에... 호빵을 사긴 했지만.. 

가슴속에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 해.. 

두 개를 다 먹어 버린 것이라 생각 됩니다. 

철 없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전 정말 바보 입니다. 

오늘은 반성의 의미로 계속 이러고 있겠습니다.] 



음... 어떻게 알았지? 

나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군.. 



어쨌든 이 글은.. 

한 마디로... 

나를 가지고 놀며.. 

과외도 째보겠다는 속셈이군.. 



"일어나지 못해" 



침대로 성큼 다가가서 이불을 확 제쳤다. 



그런데 그 애는.. 

정말로 속상했는지.. 

배게에 엎드려서 흐느끼고 있었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야.. 일어나.. 잘못했어" 

"......" 


침대 옆에 앉으며 등을 토닥거렸다. 



"내일도 호빵 사올게 그만 화 풀어..." 

"......" 

"사실은 너 무지 날씬해.. 장난 한거야" 

"......" 

"진짜 뚱뚱한 애한테 어떻게 그런말 하겠냐? 다 장난 이라니깐.. 너 살 하나도 안 쪘어" 




그제서야 그 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눈물을 닦는다. 



"그럼 이거 마저 먹어도 되죠?" 



그 애의 입 안에는... 

야채 호빵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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