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기원은 영민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두 사람은 영민이 근무하는 강남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로 들어가자 한켠에 지하창고가 보였는데, 영민이 그리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
영민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명의 경찰관이 자리서 일어섰다.
"어라... 김경사님 오늘까지 휴가시잖아요?"
"그래서 내가 훌륭한 경찰 아니냐..."
"............. 근데 뒤에 분은 누구.....?"
영민이 기원을 소개했다.
"다들 인사해... 힘들게 스카웃한 ㅅㅏ설탐정 이시다..."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최동훈 경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조한일 순경 입니다..."
기원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구기원 입니다"
"이 분도 우리가 수사하는 여...자를 알고 있나요?"
최경장이 묻자 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 허락도 떨어졌고... 지원도 약속 받았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브레인이야"
사실 열흘 전만 해도 이들은 얼른 여자를 체포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민이 본부를 다녀 온 후 모든게 뒤바꼈다.
영민이,들었던 것을 설명하자 모두가 콧웃음을 치며 믿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방대한 양의 박스가 본부로부터 도착했는데.. 다들 기겁을 해댔다.
박스 안에는 '붉은사쿠라' 에 대한 정보 문서가 가득 담겨져 있었고,
그것은 50년 동안 누적된 비밀 수사자료였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해도 좋네... 물론 빠져도 전혀 불이익은 없어.."
서장의 지시가 내려지자 대부분의 요원이 빠져나갔다.
10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이 영민을 포함한 세명으로 확 줄었다.
문서를 읽어 본 7명이 겁을 먹고 빠지자... 서장이 셋을 따로 불렀다.
"두 달을 주겠네... 그 안에 해결 못하면 깨끗히 손을 털도록... 자네들도 결혼은 해야할 것 아닌가..."
"노파심에 하는 말이네만, 직접 대면하는 바보는 없을거라고 보네.."
서장은 이들에게 따로 전용 수사실을 만들어 주었고 셋은 거기서 먹고 자고 했다.
"조순경이 탐정님에게 대충 상황을 설명해줘... 최경장은 나랑 잠시 갈 데가 있어"
영민이 최경장과 나가버리자 기원이 물었다.
"자료부터 봅시다.."
"아... 네... 따라오세요"
조순경이 창고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자 기원이 따라갔다.
"이놈들 이죠.."
구석에는 이삿짐 박스 같은 곳에 파일과 A4 용지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끔찍하죠?"
조순경이 어깨를 으쓱했다.
"두 달이 아니라 2년을 봐도 다 못 보겠는걸..."
기원이 노란색 파일을 집어 들었다.
"아시다시피 증거가 없어요... 증인도 없고 물증도 없고... "
"살인 방조죄 아닌가요?"
조순경이 고개를 저었다.
"자살자들은 '붉은사쿠라' 가 돌아 간 뒤 정확히 한시간 후에 목숨을 끊었어요...,
그래서 방조죄도 성립이 안돼요..."
"흠... 어디 보자..."
기원이 파일을 넘겼다.
날짜 별로 사건이 기록돼 있었는데... 기원이 펼친것은 20년 전 자료였다.
ㅡ 1986년 1월 3일 서울시 노원구 XX동 XX 빌라 201호 ㅡ
피해자 : 이 용 호
나 이 : 34세
직 업 : 기자
자살방법 : 커터날로 경독맥 절단
ㅡ 1986년 2월 17일 진주시 문산읍 XX리 1024번지 ㅡ
피해자 : 박 점 순
직 업 : 무 직
나 이 : 65세
자살방법 : 익 사
ㅡ 1986년 3월 9일 울산시 중구 염포동 XX아파트 A동 408호 ㅡ
피해자 : 이 경 주
직 업 : 학 생
나 이 : 18세
자살방법 : 옥상에서 투신
ㅡ 1986년 4월 30일 전라남도 진도군 XX읍 241-8번지 ㅡ
피해자 : 오 명 환
직 업 : 군 인
나 이 : 22세
자살방법 : 감전사
파일을 읽으며 기원이 입을 열었다.
"이거 한 달에 한번씩 사건이 벌어졌군요?"
"맞아요... 정확히 한 달에 한명씩 죽었죠.."
"그런데 하루에도 수십명씩 자살할텐데 어떻게 구별하죠?"
기원이 파일을 덮고 조순경을 바라보았다.
"아주 쉬워요... 보통 자살자들의 시체는 표정이 제한 되거든요.."
"공포스럽다든지... 인상을 쓴다든지... 것도 아니면 무표정인 경우가 99프로예요"
"그런데요?"
"헌데 붉은 사쿠라를 거친 경우는 표정이 확연히 밝아요... 시체가 모두 웃고 있죠"
"혹시...보셨나요?"
기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몇 명 봤죠... 확실히 구분이 됩니다.."
기원이 다시 파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세시간이 지나자 외출했던 두사람이 돌아왔다.
"이야~ 열심인걸?"
영민이 기원에게 다가왔다.
"밥먹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탐정나으리.."
"난 자장면..."
기원이 고개도 안 들고 대꾸했다.
"어라.. 너 중이 자장면 먹어도 되냐?"
"자장면이 싫으면 개고기도 좋고...."
"큭... 좋아 좋아.."
영민이 조순경에게 소리쳤다.
"자장 곱빼기 둘!!"
"난 돌솥비빔밥..."
최경장이 말하자 조순경이 무시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중국집이죠? 여기 강남 경찰선데요 자장 곱빼기 3그릇만요!!"
"어...? 이것 봐.. 조순경.. 내 꺼는?"
최경장이 당황해서 말하자 조순경이 싸늘히 대답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같은 것 좀 먹어요... 요새 누가 한 그릇을 배달합니까?"
"뭐야? 난 점심 땐 꼭 돌솥비빔밥을 먹어야 한단 말이야!"
"그럼 시켜드시든가요..."
조순경이 휙 나가버렸다.
"크크... 배달 아주머니 째려보는 거 안보이던? 다수를 좀 따라와.."
최경장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거 다수의 횡포 아닙니까?"
"그럼 직접 시키든가..."
"시킵니다, 시켜요!!"
최경장이 소리를 빽 지르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여기 방금 전화한 강남 경찰선데요 짬뽕 하나 추가해 주세요..."
"............."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문서를 뒤지던 기원이 영민을 깨웠다.
"영민아, 일어나봐 물어볼게 있어..."
"아.... 으.. 뭔데?"
영민이 실눈을 떴다.
"공식적으로 50년 동안 한달에 한명씩 죽었어... 맞지?"
"그래..."
살짝 뜬 실눈마저 감아버리는 영민이었다.
"근데 최근 한달 내에 15명이 죽었어..그것도 한 지역에서..맞지?"
"그래..."
"그래서 상부에서 지원을 해준 것이고.... 맞지?"
"그래...."
영민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한가지 방법이 있어..."
"그래.... 응? 뭐..뭐라고?"
영민이 벌떡 일어났다.
"붉은 사쿠라는 정부에게도 중요한 인물이야...."
"그렇지... 근데 그건 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정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
"뭔데.. 말해봐.."
영민의 입이 바짝 타올랐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양복 차림의 사내가 수사실을 방문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권상호 입니다..."
"오셨군요..."
서류를 보던 기원이 반색했다.
"요청하신 내용에 대해 각하께서 협조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내는 무뚝뚝하게 말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요구하신 자금입니다.... 단 저희는 모르는 돈이죠.."
말을 마친 사내가 수사실을 빠져나갔다.
"와... 진짜로 반응이 왔네... 이거 대박인걸!!"
영민이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헛... 자금이라면 일전에 얘기하신 그거 말입니까?"
최경장과 조순경의 표정에도 놀람이 나타났다.
"그래... 자금을 얻었으니.. 이제 사람을 모아야지..."
기원이 봉투를 열자 수표 열장이 나왔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잠..잠깐 이게 얼마야?"
"억...억이 열개면 십..십억?"
수표를 보던 영민이 입을 딱 벌렸다.
"만져나 보자..."
"저두요..."
나머지 두 사람이 달려들자 기원이 수표를 집어 넣었다.
"내 예상으론 이것도 빠듯합니다..... "
"쩝.."
최경장이 입맛을 다시자 영민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뭘 하지?"
기원이 미소를 지었다.
"뭘하긴... 광고해야지.."
5대 메이저 일간지....각종 스포츠 신문사... 전문 광고지까지...
그 날 하루 수사실의 전화기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저명한 문학비평가이자 독설가인 윤성호씨는 그 날도 때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으며 습관처럼 신문을 펼쳤다.
"이런 개쌍노무 새끼들.."
일면에는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저것들 땜에 소화가 안돼요 소화가..."
다시 한장을 넘기자 자신이 쓴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