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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향수
게시물ID : art_66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삶은계란..
추천 : 7
조회수 : 30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22 19:01:48

 당신이 나에게서, 이 세상에서 발을 돌린지가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는데. 나는 이제껏 바빠서, 혹은 내 앞가림이 바빠서 라는 핑계로 5년전 장례의식 외에 단한번도 당신의 흔적을 찾은 적 없다. 물론 그 당시에야 하늘이 무너지듯 아프고 슬펐지만서도, 나는 어느새 인가 당신과는 조금 다른 갈래의 사랑을 하며 마치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듯 내가 하고 싶은, 그러나 쓸모는 없는 것을 모조리 처리해 나가느라 자연스럽게 당신을 내 마음속 열어 보지 않는 창고에 가두고 문을 잠궜다.


 나는 이별을 경험한다. 당신이 떠나고 난 이후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던 나에게 마치 구원이라도 되는양 손 내밀어 주었던 그 남자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고 없다.  다가왔을때 처럼 홀연히 사라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뇌리에 깊숙히 새기고 집구석에서 한참을 울었다. 뱃속부터 끓어오르는 알수 없는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도저히 정리를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르면 가슴팍이 답답하게 미어져 나는 울음과 함께 그 검은 덩어리들을 토해낸다.


 마룻바닥에 깔린 버건디 컬러의 양탄자가 눈물로 젖었다. 나는 숨이 턱턱 막혀오는 느낌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고, 언젠가 다시 마주칠 그의 옆에, 내가 있어야 할 그자리에 서서 그와 팔짱을 끼고있을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시원스럽게 욕을 한다. …마음이 무겁다. 감정이 격양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채 나는 그저 쓸데없는 감정소모를 계속했다.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루 온종일을 울어재꼈던 나의 울부짖음이 이웃에 들리진 않았을까 낯뜨거운 걱정을 할 수 있을 법한 여유가 생겼을 무렵, 나는 고개를 돌려 시계로 시선을 옮긴다. 마지막으로 본 시계바늘의 모양과 많이 달라져 있는것으로 보아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힘에 겨워 양탄자 위에 널브러진채로,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아 양탄자의 짜임을 가만히 노려본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실과 털. 그 포근한 느낌에 이미 발갛게 물이든 눈꺼풀이 떨리며 덮히자, 그제야 나는 당신을 잃은 그 5년전 당신을 땅에 묻을때에는 이리도 서럽게 울었었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인다. …떠올려 보니 전혀. 아닌것 같았다.


 나는 착잡한 마음에 쓰게 웃으며 양탄자 위를 손톱으로 긁었다. 주먹을 쥔 손바닥 안에 손톱자국이 남기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 냉장고에 쳐박아 놓은 진저에일을 컵에 따라 목을 축였다. 너무 울어댄 탓에 뜨겁게 부었을 목구멍 안으로 시원한 음료가 흘러가니 자연스레 인상이 찌푸려진다. 단맛이 강한 탓에 새큼한 향이 전혀 돌지 않는다. 본래 모든 음식에 대해 가리거나 취향을 타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어째서 어딜 가나 바깥에서 진저에일을 사게되면 만족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는지, 또 그러면서도 왜 굳이 그걸 찾아 마시는지에 대한 의문이 인다. …생각해보니 진저에일은 당신의 디져트 주 메뉴였구나. 



 한심하게도 금방 떠날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 일평생 내 곁을 지켜준 당신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내자신이 역겨워 나는 반쯤 비워진 잔을 싱크대위로 내던지며 깨부쉈다.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고, 비참함은 배가 되었다.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왜 울고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남자가 날 떠난게 야속해서? 아니면 당신의 그 진저에일이 마시고 싶어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난 당신의 흔적을 찾아 갔다. 






 산등성이 한가운데 위치한 공기 좋은 시골마을.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지어놓은 집과 마을터를 둘러보던 나는 꽤 짙은 향수에 잠겨 눈을 감았다. 강직하게 뻗은 고목의 나뭇가지 위로 쌓인 눈송이들이 하이얗게 나를 반기는 것 만 같았다. 나는 목에 둘린 목도리를 졸라매듯 고쳐 매곤 한숨을 쉬며 마을의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을 폐가로 향했다. 뽀얗게 시야를 가리는 입김이 둥근 모양을 그리며 사라진다.



 창문이 다깨지고 문이 덜렁거리는 버려진 집. 나는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이와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의 발자욱을 쫓아 들어간다.



 뽀얗게 먼지가 쌓인 유선전화의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전형적인 전화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화기는 덜걱 소리를 내며 본채에서 멀어져 갔고, 본채와 수화기를 연결 해주던 배배꼬인 전화선이 출렁거리며 움직였다. 귓가로 가져간다. 전기가 끊긴지 오래되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묘하게 가슴이 아려온다. 내키가 당신의 허리춤에 채 닿지 못했을적에, 형제자매들과 목욕을 마치고 이곳 거실을 알몸으로 뛰어다니며 당신을 곤란하게 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천진하게 바닥을 밟고 뛰어올라 당신에게로 안기던 날. 벽난로를 태우며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쇼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있던 당신의 피앙새는 개구진 우리들의 장난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당신과 우리를 번갈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신문을 접었었다.

 다가오는 큰 손과발, 깔끔하게 정리된 검은 머리카락과 말쑥한 차림새. 그는 당신의 피앙새요 우리의 아버지였다. 그는 다정한 얼굴로 미소지으며 두팔로 우리를 끌어안았다. 커단한 손에 감긴 어깨와 머리. 손끝에 닿은 부분에서 부터 천천히 물들어가는 그 당연한 온기는 이제 없었다.



 그립다. 새하얗게 비워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은 겨우 그런 것 뿐이었다. 나는 깨진 창문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에 기침을 하면서, 삐그덕 거리는 마룻바닥을 밟고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 당신의 흔적이 남은 우리의 집. 너무 오랜만인데. 한번쯤 오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이곳에 그리 오래 있을 수 없을것 만 같았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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