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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있다.
게시물ID : sisa_3351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진짜라구
추천 : 0
조회수 : 2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22 12:27:21

사망자가 163명

행방불명자가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미확인 희생자 5명 

총 5189명으로 의 피해자.

그들은 대부분 20대의 젊은 대학생



● 서울지법, 전두환 사형 선고(1996)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5·18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전두환에 사형, 노태우에게 징역 22년 6월을 각각 선고한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내란 및 군사반란 사실 등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 면서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함께 기소된 정호용, 황영시 허화평, 이학봉피고인에게 징역10년, 허삼수,유학성 치세창, 이희성 피고인에게 징역 8년, 장세동, 차규헌, 주영복 피고인에게 징역 7년, 박종규,-신윤희 피고인에게 징역 4년을 각각 선고했다. 

검찰과 피고인측은 각각 항소했다 



● 전두환, 무기로 감형(1996) 

서울고법 형사I부(재판장 권성 부장판사)는 1996년 12월 16일 12·12및 5·18사건을 포함한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사건 항소심공판에서 전씨와 노씨에게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각각 선고한다. 

재판부는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이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군형법상 반란 및 내란죄 등을 적용하여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전, 노 피고인이 재임 중 기업체 등으로부터 각각 뇌물로 받은 2,205억 원과 2,628억 원을 추징금으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12, 12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 17내란 을 일으켜 힘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많은 사람을 살상, 군사통치의 종식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지난 87년 6·29선언을 통해 국민의 뜻에 순종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서를 연 점등을 고려해 형량을 낮춘다"고 6 29선언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함께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전두환 사면


김영삼 정부 끝자락에 이회창은 97년 8월 31일에 9월 4일에 김영삼에게 전두환을 추석전에 사면하도록 건의하겠다고 티비에서 말한다. 


그리고 9월 2일 김영삼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갖고 직접 사면을 건의한다.


이 때 김영삼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이유로 사면을 거부하였지만 김영삼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밝힌 바로는 이렇다.


다음은 김영삼이 9월 2일 회동에서 이회창에게 말한 내용이다.

"대통령 선거를 끝낸 뒤 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이 두 사람을 사면하겠다는 생각을 나는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이 회창 대표, 몰라도 이렇게 모릅니까, 사면을 해도 대통령인 내가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내가 사전에 충분히 설명까지 해주었는데 이럴 수가 있어요! 정신 좀 차리세요.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선거가 끝난 후 내 임기 중에 사면할 것이니 다시는 그 말을 꺼내지 마시오." 

[출처] 전두환 사면의 진실|작성자 베르날레스



1997년 12월 22일 


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을 60일 앞두고 풀려난다.



나는 김영삼전 대통령에게 궁금하다.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그렇게 피흘리셨는데도. 

겨우 대통령 자리 하나때문에 정의를 등지고, 극악 무도한 범죄자도 용서할 수 있는가??


이런게 정치라면 나는 빨갱이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당신들을 용서 할 수가 없다.


지역감정을 선거에 이용하지 말아달라. 


지역 감정의 골은 역사 속 강자들이 피해받은 약자에게 사죄로 다가 올 때 비로소 사라지는 것이다.


희생자 유족분들과 광주에 감사합니다.


요즘 오유를보며 정리해보았습니다.

꼭 경상도라도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닙니다. 

오유를보며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식인 정의로운 방법으로 늘 싸워오셨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같은 사람은 그게 정의라 믿고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넣었다. 그리고는 확인사살까지 했다. 많은 시민군들은 특공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 BY 때밀이 아가씨 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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