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롤에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언랭충이지만
가끔 나의 부랄친구들을 만나면 튀어 나오는
우리들만의 무용담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시즌3.
나와 친구 둘은 슬슬 롤에 재미를 잃어갈 때였다.
친구 한놈은 배치를 망쳐 브론즈였고
다른 친구 녀석은 일하느라 바쁜 탓에 아주 간혹 간혹 롤을 할 뿐이었다.
나 역시 배치를 망친 탓에 2승 4패의 상태에서 랭게임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나마 하는 것이라면 간간히 즐기는 칼바람이랄까.
친구와 나 셋은 오랜만에 모여 노말을 즐겼다.
새벽은 찾아오고 점점 담배 끝이 타오를 무렵
우리는 하얗게 불태우며 멘붕 상태에 빠졌다.
연전 연패. 시간은 새벽 4시를 가르키기 시작했고
뭐만 하면 트롤을 만나거나, 우리가 똥싸서 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롤을 잡는 친구 녀석은 탑 라이너였는데 티모와 다리우스에게 탈탈 털리며 멘탈이 저하늘의 끝으로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나마 재밌게 이겨갈 때쯤이면 적들의 날카로운 칼서렌을 바라보며 cs150개도 못채우고 끝을 내기 바빴다.
그렇게 이기는 판도 체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말이다.
허나 이기는 것도 잠시, 연달아 3연패를 달성하며 나의 언랭 멘탈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녀석들을 선동하여 칼바람의 세계로 꼬셨다.
그나마 자주하던 브론즈충 친구는(솔직히 실력은 괜찮은데..) 칼바람은 자주 접했지만
나의 사랑스런 탑라이너 친구는 일반만 하기도 바쁜 몸이신지라 칼바람에 행차하셔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증전 칼바람 도합 600판을 넘도록 주구장창 돌렸던 언랭충 필자는
모든 캐릭터가 소화 가능하였기에
언제든 스왑을 해준다며 친구들을 꼬셔 무작위를 돌렸다.
그래도 우리의 멘탈은 많이 지친 상태였다.
이번 판도 진다면 칼바람 따위 때려치우기로 암묵적인 눈빛 교환을 시전했다.
그렇게 매칭은 시작되었고
아군의 조합은 그럭저럭 좋은 상태였다.
자크, 오리아나, 룰루, 오공, 탈론.
탱하나에 ap와 ad가 적절히 배합된 우리의 조합은 비록 원딜이 없을 지라도 밀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나의 브론즈충 친구는 룰루를 단 2판밖에 하지 않았던 보라돌이였고
내 탑라이너 친구는 '오공은 미드캐릭이냐?'라고 묻는 순수한 녀석이였다.
허허 병신들. 세트로 지랄들하네 하며 웃어 넘겼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나마 브론즈 충 녀석은 정글과 서폿을 겸하는 녀석인지라
비록 직접 해본 경험은 적으나
룰루를 자주 상대해봤기에 믿고 맡겼으며,
탑라이너 친구에겐 '우콩은 2렙때 바론도 잡는 녀석이야. 하하' 하고 거짓부렁을 날리며 자크를 잡았다.
(사실 칼바람에서 오공 인식이 그리 좋진 않는데, 탱만 가도 딜탱이 꽤 돼는 좋은 녀석이다. 하지만 탑라이너충 친구에게 차마 자크를 줄 순 없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하고 로딩창을 보았다.
적은 쓰레쉬를 선두로 하여 케이틀린, 미스포츈, 무덤, 트티의 4원딜 조합이였다.
허허 하고 우리의 승리를 점쳤다. 룰루와 오리아나의 포킹력까지 겸한 우리로선 밀릴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팀을 믿은 건 경기도 오산이였다.
친구가 아닌 팀으로 만난
탈론과 오리아나도 자신들의 캐릭터를
제대로 해본적 없는 건지
적의 간헐적 포킹에 움찔움찔 하였으며
내 룰루 친구는 픽스를 그저 평타 지원 용도로만 여겼기에 우리는 타워 밖을 나가지 못했다.
우콩 친구는 그제서야 우콩이 ad임을 눈치채곤 조용히 타워에 틀어박혔다.
이대로 가선 후반 상황에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보였다.
유일한 탱인 나는 도란 방패 패기를 보여주겠다는 3도란 방패를 챙겼으나
쳐맞쳐맞 신공으로 패시브가 빠지며 흐물흐물 젤리나 마찬가지인 탱인데,
생각해보니 후반 4원딜의 공격력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적들은 뭐가 그리 기쁜지 우리 타워를 웃으면서 치기 시작했고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조촐한 칼바람 경력으로 최적의 시나리오를 머리에 그리기 시작했으며
맵에 강력한 백핑을 찍으며 친구들한테 일렀다.
"기다려."
탈론, 오리아나와 룰루친구에게 cs정리만을 부탁하였고
나는 6렙 될때까지 기다리자고 친구들에게 음성전달을 하였다.
간혹 원딜의 평타를 맞으며 눈물 흘리는 친구에게
"6렙되면 우리가 유리해."하며 독려를 해주었고
친구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들은 건지 타워를 끼며 쉘위댄스를 보여주었다.
사실 믿는건 룰루의 궁과 나의 궁 뿐이였다.
새벽의 힘든 전투로 인해 내 머릿속 전략에도 한계가 온건지
"돌진한다 -> 꼴아박고 궁을 쓴다 -> 룰루 궁이 2차 에어본을 한다 -> 우콩이 돌진하여 궁으로 3차 에어본을 한다"
라는 단순 콤보만을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레벨이 5렙이 될수록 적의 피는 그대로였고
우리들의 피는 깎여만 가며 타워도 힘겨운 전투를 이어갔기에 똥줄만 타들어갔다.
그때 잠시 '나도 cs구경을 해보겠다'며 타워앞에 얼굴을 비췄던 내친구 우콩은 원딜의 평타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쉴세없는 원딜의 공세를 경험 중인 친구를 보며
나는 그순간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저렇게 쳐맞기를 시전한
탑라이너 우콩 친구는
평소 피오라나 베이가 같은 호전적 캐릭을 자주 담당했기에
무리한 이니시를 감행하여 우리의 한타를 민영화시켰던 전과가 있었다.
순간 나는 눈을 감으며
"친구야 제발 참아줘"라고 호소를 했다.
이때 우리의 경험치 칸이 98%에 도달했을 때 쯤이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돌진하려했던 친구는 나의 호소를 들었던 것인지 다시 타워 뒤쪽으로 빠졌다.
칼바람의 이슬, 구급약을 챙기며 다시 피를 챙기려 했지만 이미 반절은 나가버렸다.
적들은 그런 우콩의 도주를 본 탓인지 기세를 올려 맹렬하게 타워를 쳐댔다.
때마침 우리의 레벨이 6렙에 도달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일렀다.
"잘 참았다 친구들이여."
곧이어 나는 우리 타워 근처 부쉬에 들어가 새총모드로 장전했다.
진짜 한타 한번을 위해 새총 스킬에 3이나 투자했던 나는 이 순간을 너무나도 기다렸다.
적들은 우콩의 퇴각에 방심한 탓인지 뭣도 모르고 신나게 타워를 치고 있었으며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던 그때를 잡기 위해 숨을 골랐다.
들어가기 전에 전진 핑을 찍는 것과 동시에 친구들에게 일렀다.
"돌진할테니, 궁을 쓸 준비를 해라."
그동안 얼마나 쳐맞았던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던가
그동안 얼마나 우리 타워가 힘겹게 싸워왔던가
나는 사실 이번 한타가 망한다면 끝난 게임이라 생각하고 새총 모드를 풀며 창공을 날아갔다.
정말 눈여겨 보고 최소 적이 4명이상 뭉칠 때를 노려 날아간
나의 초록 젤리는 신기한 경험을 맛보았다.
날아가는 도중 뒤이어 나를 감싸기 위한 오리아나의 공이 날아왔고
적 원딜의 품에 함께 안겨버린 것이다.
이때다 싶었던 나는 곧이어 아이들에게 다짓밟아주마를 시전하였는데,
밀리는 즉시 오리아나의 궁이 적들을 다시 묶어주었다.
내친구 룰루는 오리아나의 궁이 끝나는 동시에 커져라를 시전하여 2차 에어본을 가동시켰고
정말 눈물로 참아왔던 나의 우콩친구도 뒤늦게 합류하여 3차 에어본을 가동시켰다.
그나마 멀리있던 적 쓰레쉬가 원딜들을 구출하려 발버둥 쳤으나
이미 그들의 피는 종이 낫장에 불과했고
우리 만큼 이 상황을 꾹꾹 참아왔던 아군 암살자 탈론의 칼날이 원을 그리며 쿼드라킬을 달성했다.
순간 우리는 벙쪄버렸다.
마치 프로게이머가 펼쳤다고 하더라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궁의 연계였기 때문이다.
"우와 미쳤닼ㅋㅋㅋ"
"님들 프로게이머임?"
나뿐만 아니라 아군과 적군 또한 어이가 없는 상태에 돌입하였다가 채팅방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또 참자."
한번 했다고 또 못하랴.
우리는 마치 입을 맞춘 듯 또다시 궁을 모으며
총 네번의 깔끔한 한타를 이겼고,
무럭무럭 성장한 나의 자크는 피 4천을 찍으며 적의 넥서스를 부셨다. 룰루의 커져라가 동원되면 거대한 젤리 공장이 적들을 뭉개버리는 것이다.
적들과 아군 모두 입을 모아 이번 전투에 감동하였으며 이것은 우리에게 한동안 잊혀지지 않는 무용담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