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피곤한 일들이 많다. 근무부터 시작해 각종 훈련들과 검열, 행사까지.
그 중에 날 가장 피곤한 일 중 하나가 바로 1년에 한번 있는 전장비. 전투장비지휘검열 이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개인물품부터 창고에 쌓여있는 장비까지 전부 꺼내서 새것처럼 때빼고 광내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더러운게 있으면 빨고 녹슬거나 낡았으면 전부 새로 만들거나 닦아내야 했기에
거의 검열 한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그 중 제일 신경쓰던 장비는 아무래도 개인화기였다. 우리같은 일반 보병소대에서 검열시 가장 중점을 두고
보는 부분이 개인화기였기 때문에 검열 날짜가 정해지자마자 총기관리에 각별히 신경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때부터 소대원들은 시간이 날때면 자유시간까지 포기한 채 총기수입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일과시간이
끝나면 내무실에 자리를 펴고 앉아 각자 자기 총을 꺼내 닦았다. 한손엔 총열을 다른 한손엔 꼬질대를 들고
한마디 대화도 없이 열심히 총구를 쑤시기 시작했다. 고요한 내무실 안엔 군번줄 딸랑거리는 소리만이
울려퍼졌고 스무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땀까지 뻘뻘 흘리며 미친듯이 손을 앞뒤로 움직이는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가끔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낑낑거리는 신음소리까지 내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 당시 화기분대 분대장이었던 나는 남들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다른 분대원들 처럼
K2만 있는게 아니라 M60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총열도 예비총열까지있어 2개인데다가 삼각대부터 각종
잡다한 부속품까지 관리하려면 남들의 배는 손이 갔다. 그렇게 전장비검열이 다가올수록 우리들은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총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보급된지 얼마 안된 새총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오래된 총. 잘 나가는 총.
자꾸 걸리는 총. 깨끗한 총. 더러운 총. 각양각색 이었고 어떤걸 받게 될지는 순전히 운이었다. 다른 보급품과
달리 바꿀수도 없고 보직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제대할 때 까지 함께 가는게 총이었다.
중대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M60이 한 정 있었다. 보통 총에는 제조일자와 총번이 적혀 있는데 얼마나 오래됐는지
제조일자는 닳아져서 보이지도 않고 총번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M60이었는데 그 총이 우리분대에서 가지고 있는
두 정중의 하나였다. 예비총열에 녹이 있었는데 아무리 기름을 뿌리고 솔로 문질러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 총의 전 주인이었을지도
모르는 제임스 상사가 베트남 메콩강 하류를 건너다 생긴 녹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총에 스러져간 베트콩들의 원혼이 서려있어서 그런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보급관님은 나에게 목숨을 걸고 그 총을 새것처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멀쩡한 사수가 있는데 왜 내가
예비총열에 녹이 있었는데 아무리 기름을 뿌리고 솔로 문질러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 총의 전 주인이었을지도
모르는 제임스 상사가 베트남 메콩강 하류를 건너다 생긴 녹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총에 스러져간 베트콩들의 원혼이 서려있어서 그런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보급관님은 나에게 목숨을 걸고 그 총을 새것처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멀쩡한 사수가 있는데 왜 내가
그 총을 닦아야 하냐고 소심하게 반항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내가 분대장이라는 것과
M60 특수분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검열은 이미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주말에 대대적으로 총기수입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후임을 데리고 체력단련실로 가서 자리를 잡고 총을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총은 쉽사리 깨끗해지지
않았다. 결국 난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군대에서 총기수입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단어의
위대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WD40. 모든 총기수입의 완결은 WD40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군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마법의 스프레이였다. 항상 전장비 기간이 되면 여기저기서 WD40을 찾는 군인들로
인해 부대 안이 시끄러울 정도였다. 많이 쓰면 총에 안좋은 영향이 있다는 말이 있어 처음에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작년 전장비때 검열을 온 사단 총기관이 박스채로 들고다니면서 뿌리는 걸 본 후에는 너도나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대한 후에야 정말로 부품을 닳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사실 전장비 검열은 보여주기 식의 의미가 강했다. 와서 직접 사격을 해보는 것도 아니었기에 최대한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특수분해를 해서 부품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다른소대 고참이 날 찾아왔다. 자기 소대
M60도 특수분해를 해야하는데 할 줄 아는사람이 없다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후임에게
내무실에서 WD스프레이를 가지고 와 뿌려놓고 기다리라고 한 뒤 그 고참과 함께 내무실로 향했다.
분해를 도와주고 다시 내려오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있는 후임을 발견했다. 내 얼굴도 하얗게 질려버렸다.
부품들이 서리라도 맞은것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 베트콩의 원혼들이 드디어 이 땅에 강림하는 걸까 공포에
떨다 자세히 부품들을 살펴보니 거미줄이라도 맞은것처럼 하얀 보풀같은 것들이 일어나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후임의 손을 바라본 나는 현기증이 나는걸 느꼈다. 후임이 들고 있는 스프레이에는 선명하게 두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3M
그렇게 부품에다 기름대신 접착제를 골고루 뿌려놓은 후임은 어찌할지를 모른채 멍하니 서 있었다.
접착제는 이미 말라서 하얗게 변해있었고 결합할 줄 몰라서 풀로 붙이려고 했니라는 나의 질문에도
후임은 묵묵부답이었다. 대답해 피터파커 라고 재차 물어도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후임의 모습은
날 악당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결국 내가 다시 부품을 하나하나 닦아내는 동안 후임은 스파이더맨 처럼 벽에 붙어있어야 했다.
전장비 당일 군대에서의 검열이 대부분 그렇듯이 스치듯 휙 지나가는 검열관의 모습은 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