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좋아한다는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때로는 혼자만의 가슴앓이로, 어쩔때는
굉장히 안 좋은 결말을 맞는 경우도 생기지만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게 연애고 사랑인게 사실이다.
나도 물론 살아오면서 좋아하고 좋아함을 받으며
성장기를 보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처음이 아니겠는가.
일곱 살 무렵, 난 목동에서 영등포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었다.
어머니는 이사를 오신 뒤 바로 상가에 있던
미술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찾아 날 등록하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래 학원 아이들과 친해진 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과 아파트단지를 뛰어다니며
미취학아동의 열정을 뽐내곤 했다.
그 미술학원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여자아이가 유일하게 한 명 다닌다는 점.
착하고 얼굴도 귀여웠던지라 남자애들하고도
잘 어울렸었는데 유독 나한테 치근덕댔던 기억이 있다.
빨강 파랑 물감으로 신나게 유색인종들을 만들어 낼 때
옆에 있는 물감통에 연신 붓을 휘젓질 않나,
놀이를 할 때도 옆에서 꺄르르하며 쫒아다니질 않나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솔직히 그 시절 난 그 아이의 행동을 두고
'나를 좋아하는구나.'라는 판단을 하긴 힘든 나이였고
그냥 졸졸 따라다니는 착한 여자애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날이었다.
그 학원은 미술학원이긴 했지만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터라 중간에 놀이시간을 갖곤 했는데,
TV도 있고 여러가지 장난감도 많아
참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였다.
그날 난 호호아줌마를 보고 있었다.
(아내를 잘 만나야 집안이 잘 산다는 교훈을 주는 만화다.)
신나는 후크송과 영상에 내 정신이 한창
매료되어가고 있는 그 찰나,
뜬금없이 그 아이가 내게 화장실에 데려다달라며
조르기 시작했고 옆에서 보던 선생님도
'동생이 부탁하면 들어줘야지'하며
등을 떠미는게 아닌가??
하긴 뭐, 그 나이때는 앉아서 오줌싸다가
엉덩이가 변기에 끼는 불상사가 간혹 일어나던 때라
난 큰 반발없이 말을 따랐고,
문에서 조금만 나오면 보이는 화장실에
그 아이를 데려가 일을 치르게 했다.
그리고 곧, 그 아이가 나와
다시 손을 잡고 학원으로 데려갔다.
선생님은 짧은 거리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 밖으로 나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렇게 작은 미션이 마무리되어가나 싶었다.
갑자기 그 아이의 걸음이 멈췄다.
'뭐지?'하면서 뒤를 돌아본 난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엑소의 백현을 보는 풋풋한 여고생.
그런 은하수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화장실 데려다 준 게 그렇게 고마웠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그 아이는 약간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며
'쪽'하고 내 볼에 뽀뽀를 했다.
솔직히 처음엔 상황파악이 되질 않았다.
촉촉한 도장이 얼굴을 찍고 난 후
'이 녀석이 나에게 입술장난을 쳤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후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눈길은 마치
'이 얌전한 고양이같은 녀석들이 부뚜막을 오르네'하는
앙큼함과 아이들의 성장을 뿌듯해하는 복잡미묘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마치 신방에 구멍을 뚫고 훔쳐보는
마을사람들의 느낌이랄까.
굉장히 당황했다.
누군가에게 아주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된다는
그 당혹스러움은 7살 개구쟁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든 것이었기에.
그때의 난 이 상황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멀지 않았다.
옆에 앙증맞은 표정을 한 아이 하나.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그 아이에게 집중되었다.
'한 건 넌데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냐?'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 부끄러움은 분노로 바뀌었고
결국 난 옆에서 날 반짝거리며 바라보는
그 아이에게 죽빵을 날렸다.
달리기만 하면 고꾸라지는 그 나이대의 무게중심은
당연히 매서운 주먹질을 버틸 수 없었다.
풀썩 쓰러짐과 동시에 가혹한 현실에 눈을 뜬
그 아이는 통곡을 하며 눈물을 쏟았고
사색이 되어 한 달음에 달려온 미술선생님은
황급히 그 아이와 나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 선생님은 허둥지둥 의자를 세 자리 놓은 뒤
우리에게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서로가 맞아야 행복한 것이다.
서울이가 널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계속
마음에 두면 너만 힘들다.
다른 남자아이들도 많다.'는 둥.
흑흑거리는 6살 여자아이가 이해하기는
영 껄끄러운 이야기들로 교실을 메꿨다.
(이 선생님도 어렸을 때 비슷하게 맞았던 게 분명하다.)
여하튼 내 행동에 대해선 크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표현은 나쁜거다.'라는 이야기만 한 뒤
곧 수업이 끝났고
집에 도착한 난 밥 잘 먹고 잘 놀다 잘 잤다.
원래 그 나이때는 큰 생각이 없다.
사실 이 이후의 일은 또렷히 기억나지 않는다.
크게 굴곡없는 하루하루의 반복이었으리라.
게다가 이후에 1학년이 되어 학교에 다니게 된 난
그 아이와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고
한학기가 끝난 뒤 바로 목동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뒤로 4년 정도 지난 뒤, 난 5학년이 되었다.
집에서 디지몬카드를 가지고 놀던 중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지금 영등포 롯데백화점이니 옷을 사자."
라는 이야기를 들은 난 버스를 타기 위해
집 앞 정거장으로 향했다.
곧 22번 버스가 도착했고 난 자리에 앉아 목적지로 향했다.
근데 버스를 혼자 타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지라
한 열 정거장쯤 지나니 여기가 내릴 곳인지
아니면 지나친건지 막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난 백화점보다 좀 이른 교보문고 근처에서
내려버리고 말았다.
허둥지둥하면서 일단 근처에 있는 어른에게
백화점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위치를 알게 된 난 한 시름 놓으며 주위를 둘러봤고,
곧 이곳이 익숙한 풍경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전에 살았던 그 곳.
당산동 그 아파트가 멀지 않은 옆에 있었다.
'참 오랜만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발걸음을 단지 안으로 옮겼다.
거의 모든것이 그대로였다. 쓰레기가 우글우글한
분리수거장이며 줄 서있는 차들로 가득한
야외주차장. 내가 살았던 아파트 103동까지.
문득 깔깔대며 술래잡기하던 예전 생각이 떠올라
난 기억을 더듬으며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는 그 옛날처럼 뛰어노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재밌어 보이네.'하며 무리를
구경하던 난 시선을 멈추고 말았다.
그 아이였다. 4년이 지났지만 예전 얼굴은 그대로였다.
예전처럼 하얗고 티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반가운 감정이 가슴부터 올라와 입으로 안녕을
외치려던 순간, 난 흠칫했다.
내 기억 속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1킬 영데스.
"안녕! 내가 어렸을 때 죽빵 날렸던 것 기억하니??"
하며 아는 체를 하긴 너무하지 않은가.
결국 난 조용히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는 물개박수를 치며
빠른 속도로 미끄럼틀을 가로질러 올라갔다.
한 20초동안 주변을 맴돌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 뒤
난 쓸쓸히 단지를 나왔고 그 후로 다신 가보지 못했다.
물론 그 아이도 다신 못 봤다. 참 미안하다.
이젠 그 아이가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른다.
물론 '혹시라도 만날까?' 라며
그 아파트에 다시 갈 생각도 크게 없지만
만약 마주칠 기회가 생긴다면 사과의 표시로
본죽과 파리바게트 기프티콘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