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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주의) 쉽게 푼 패러다임 또는 신에 대해-
게시물ID : phil_41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Logosy
추천 : 1
조회수 : 71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12/03 03:06:27

신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해서 새로운 논쟁자가 아닙니다 ㅎㅎ 경계와 의심의 시선은 거두어 주시고

저는 여러분이 신으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예전에 과게에서 활동할 때, 진화와 창조에 대해서 엄청 시비 붙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선선히 보여서 제가 생각해 본 것들, 그리고 왜? 신의 존재가 철학적인

논쟁이 될 수 없는지를 천천히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에겐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글로 풀어 쓰면

인식의 범위, 또는 인식의 창 정도가 되겠군요.

과학철학 분야에도 조예가 있으신 분이면 패러다임은 과학 이론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토머스 쿤씨의 책에서도 나왔다는 사실을 금방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패러다임이 사실 과학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람들이 사건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행동하게 하는

과정속에서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과학자들도 깨닿게 되고 패러다임은 생각의 틀이라는

일반적인 명사로 사용되는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패러다임이란 친구에 대한 짧은 소개이구요.

 

그런데 신에 대한 이야기 전에 왜 패러다임에 대해 설명을 하냐면, 신은 인간의 인지에 있어서

패러다임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두 철학의 거두인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가 있죠.

이 두 사람의 논쟁은 사실 철학사에서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크나큰 갈래를 나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의 신은 범신론의 신이었고 라이프니츠는 인격신을 패러다임으로 가지고

기나긴 논쟁을 해나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럼 둘다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싸운것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 논쟁이 중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부터 내려오는 철학의 진행은 중세에 까지도 무조건 신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서양 철학은 과장 조금 보태어 프라톤의 각주라고 불릴 만큼 플라톤 씨는 서양 철학의 기토를 마련하고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지만 그의 저서인 대화에서 보면 사랑의 속성을 정의하는 부분에서

신의 속성을 끌어올 정도로 그때 철학에서 신은 당연한 존재인 것입니다.

 

또한 수학자나 자연관찰자로 유명한 그리스의 사조들은 이런 이유에서 놀랄정도로 정밀한 우주 천체의 관찰

그리고 현재 진화론에 맞먹은 자연적 관찰들에서도 신과 그의 완벽함을 말하기 위해 우주의 구조를 5개의

정다면체, 신의 완벽한 피조물인 인간중심으로의 생물들의 해석이란 결과에 수렴할수 없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중세에 가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되어 갑니다.

 

하지만 희대의 천재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신은 자연 법칙의 총합이라고... 이 발언은 목숨을 걸고 한 말이었기에

값지기도 하지만, 신의 자리를 인간과 모든 자연의 옆에서 저 멀리로 보내는 말이었기도 합니다.

신이 있어야만 완벽할 수 있는 세상에 그는 신 없어도 우린 완벽할 수 있다고 말한 첫 사람인 것입니다.

이 생각은 모든 학문들을 신학에서 이주시켜 무신론, 또는 유물론이라고도 부를수 있는 새로운 토양에 뿌리 박게 합니다.

이로써 과학은 자연철학에서부터 과학으로 분화되고, 예술은 헤브라이즘에서 헬레니즘으로 옮겨옵니다.

음악은 신의 완벽성 만이 아니라 그 음 자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할수 있는 사상적 바탕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이 스피노자의 말을 감히 사상에서 르네상스의 시작점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흐름 뒤에 만들어진 세계는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계몽주의의 시작, 과학 혁명과 인간 이성의 발현!

이성의 암흑기로 불리던 중세에 비하면 너무나도 밝고 화려한 세계가 펼쳐진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신분은 제가 왜 패러다임 이야기를 앞에서 했는가 궁금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유신론과 무신론은 라이프니츠의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중 어디에 서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모든 자연에는 그 자체로서 실존하는 법칙이 있고 인간의 이성은 어떤 외부의 도움없이 그것을 알수있다는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면 당연히 무신론자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신은 무의미 하니까요.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신이 모든 질서를 만들었으며 그 신이 지금도 우리의 삶에 간섭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해석하면 당연히 유신론자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신만이 의미가 있으니까요.

이런 다른 패러다임 위에서 싸우는 싸움이 어떤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오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제가 과게에서 봐왔던 수많은 창조 진화의 싸움들 처럼요...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 신으로 싸워야 한다면 이런 패러다임 중 어떤 것이 참이냐라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들어가게 되면 왜 신을 믿는가 혹은 믿지 않는가라는 이야기까지 가게 됩니다.

 

믿음, 논증이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우리의 삶 중 신념 또는 관점의 많은 부분들은 인지되지고 회의되어져 정리되기 보단 심정적이고 이미지적인

호불호를 따라가는 경향이 큽니다.

신을 믿고 싶어서 믿고, 신을 믿고 싶지 않아서 믿고, 혹은 그냥 믿어져서 믿고, 믿어지지 않아서 믿지 않고

예를들면 죽을 위기에 처한 환자가 수술로 살아나면 어떤 사람은 의사의 손을 보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 위의

하나님의 손을 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고쳤어 하면서 의사 필요없음 하는 사람은 예의가 반푼도 없는거고

위기에 순간에 신을 구하는 사람을 보고 쓸데없는 짓한다는 사람은 인정이 없는 것입니다 ㅎㅎ

여튼 같은 사건을 봐도 해석이 이렇게 다르고 또 이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런데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들이 한 현상을 보고 다른 결론이 났다고 서로를 헐뜯는다? 말이 안되는거죠.

그것은 대화가 아닌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이 매우 길어졌네요 ㅎㅎ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 흔히 부리는 진리에 대한 배타성이 사실 니네 동네 룰일 뿐이라는 것이고

이성주의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 신을 믿는 것이 곧 지적 자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저를 변호하는 것이고,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서 싸워 봤자 결론 안나는데 싸울려면 패러다임까지 가서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패러다임을 공격하는 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터부가 되었고 겁나 힘들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하고 양쪽에 당부드리는 것은

믿는 사람이라면 논쟁하지 말고 기도나 하십시오. 생각을 바꿀수 있는 건 신 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도 좀비가 아닌 사람은 자신의 인지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을 행한다는 금언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더이상 제가 좋아하는 오유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진지는 <이 텍스트는 어떻게 읽어야하는가>를 쳐묵쳐묵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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