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시는...강릉 안갈거야...통영이랑 정선도 안갈거야...태어나서 오빠가 처음 데려다준데...오빠가 다시 데려다줄때까지 다시는 안갈거야..."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D였는데...
그 날 정말 하루종일 울었다.
경포대 해변가에서부터 숙소로 들어간 호텔에서도 진짜 계속 울었다.
호텔방에서 D는 이불뒤집어쓰고 정말 엉엉 울었고, 나는 의자에 앉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술이 확 깨더라.
차라리 D가 꽃뱀이었음 한적도 있었다.
만만한 호구 하나 물어서 적당히 지내다가 그래. 니가 원하는 공부하고, 니가 원하는 삶 살아라.
나한테 잠깐이나마 연애감정 품게 해준걸로 충분히 값어치했다. 더 못줘서 미안할 정도,
그렇게 생각한적도 있었다.
"나...진짜...오빠랑 있기만 하면 돼.
오빠 나 싫어? 왜 내가 다가가면 오빠는 자꾸 멀어지려고 해?
오빠 아직도 예전 그 사람 못 잊는거야?
내가 오빠한테 유학보내달랬어? 나 유학 안가도 돼.
그래. 오빠 말대로 나 아직 어려. 오빠 말대로 아직 해야할 일 많을지도 몰라.
그래. 나 오빠랑 처음 사귄것도 아니고, 오빠가 내 첫남자도 아냐.
그런데 처음으로 내 전부 바쳐도 되겠다. 이 사람이랑은 진짜 알콩달콩 살 수 있겠다. 싶은건 오빠가 처음이야.
그런데...왜 오빠는 자꾸 나한테서 멀어지려고만 해???"
그렇게 한참을 울고서 히끅히끅거리면서 D가 나한테 말했다.
"너도 나랑 같네. 나는 내가 가지려고 하면 다 떠나. 내가 욕심 안가지면 내 곁에 있는데,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하면 손틈사이로 다 빠져나가.. 그거 자꾸 그러다보면 진짜 신기할 정도야.
그래서...나 너가 내 옆에 있어야겠단 욕심 일부러 안가졌는지도 몰라...
내가 말했지? 너처럼 예쁘고 착한 얘가...야. 솔직히 말할께. 너는 진짜 내 이상형이야. 쪼끄만하고 얼굴도 작고 예쁜데다가 날씬해. 나는 졸라 펑퍼짐해서 나랑 반대되는 애가 내 이상형이여.
전 여자? 나 계랑 뭐 어떡게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 졸라 충격먹고 하루에 소주 5병빨아야 겨우 잠들고 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깡그리 잊었어.
나 내 20대 전부 그렇게 잊었어. 정말 흐리멍청하게 기억나지 제대로 기억안나. 그게 겨우 3년 전인데도 그렇게 잊었어.
연애? 내 주제에? 그래. 결혼상대로는 모르지. 내 앞으로 대출 천만원돈 남은 서울에 집있지. 이름은 아부지꺼지만, 내 차 있지. 빚은 저거 대출금 천도 안되는 돈이 전부여. 부모님 건강하시고 내가 명품 이런거 고집하고 때되면 해외여행 나다니고 하지 않으니까 연봉의 절반이상은 다 저금해. 너 이 나이대에 흙수저가 억소리나게 모은 사람 얼마 안돼.
결혼욕심??? 없어. 동생이 첫 애로 아들 낳아놔서 대는 내 조카가 이을거니까 한시름 놔서 생각도 없어.
아득바득 벌어다가 말년에 실컷 써재끼고 그래도 남은거 있음 조카들 줘버릴거야.
자선단체? 도와달라는 쪽에 안주고 지들이 써먹을지 누가 알아.
내 피붙이 조카애들 줘버릴거여.
그럼 내 무덤에 한번씩 꽃 한송이라도 놔주겠지. 풍장그런거 해달라고 할 생각이지만.
결혼이야 꿈꾼적있지. 너도 한 10년가까이 만나면 이 사람은 내 운명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돼.
그런데 그게 또 여지없이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면 그때부터 그건 내것이 아냐.
포기했어. 완벽히.
지난 2년 넘게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너랑 만나고 너가 나 좋아한다. 그러고 아. 나도 너 좋아하는구나. 이 생각하고...이제 내 나이가 누구 만나보고 그럴 나이아냐.
그런데 너는 너무나 완벽해. 집안일도 척척하지. 너무도 착하지. 거기도 누가봐도 아~예쁘다. 할 정도로 예쁘지. 거기다가 머리도 참 좋아. 귀엽기도 엄청 귀여워.
욕심부렸어. 나이차 11살차이. 내가 욕 좀 신명나게 먹고, 그 욕먹은만큼 오래살면 너만큼은 살겠지.
나이어린 신부 좋잖아. 나 환갑되도 너 40대야. 얼마나 좋아.
그런데, 너가 나때문에 공부...유학꿈 접었다니까...이건 아니다 싶었어."
D도 허공에 대고 말하고,
나도 허공에 대고 말했다.
서로 상대가 무슨 말을 했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머리로는 알아듣는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지.
원래는 밤새 만리장성쌓을 생각이었다.
나도 남잔데....
회사복지로 나오는 숙소지만...
암것도 안하고, D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동해일출을 보고 있었다.
깜빡 졸았다.
아침부터 운전했지. 낮에는 쏘다녔지. 낮술은 또 양껏 마셨지. 저녁 밤에는 나는 울리고 너는 울었지. 안 피곤할리가 있나.
차가운 손길이 내 뺨에 닿았을때 그 잠에서 깼다.
D였다.
손차가운거보니까 이불뒤집어쓰고 좀 잤나보네.
어쭈? 나를 두고???가 아니라, D가 따듯하게 조금이라도 잤다는 생각에 적이 마음이 놓였다.
"...추워...이불로 들어와..."
"...6시다 벌써."
"...체크아웃 3시래. 물어봤어....오빠...좀 누워서 자."
"...나 자고 있으면 훌쩍 가버릴려고 그러지? 아서라."
"...나 오빠말 잘 안듣지?"
"어마어마하지. 남북통일이 소원인 사람인데, 우리 이쁜 D가 내 말 좀 들어줫음하는게 내 첫번째 소원이야."
희미하게 D가 웃는다.
그동안 같이 살면서 안 싸운 날이 참 드문 우리였지만, D의 그 희미한 미소에 내가 얼마나 마음 놓았는지 모른다.
"오늘은 오빠말 잘 들을께...같이 푹 자고...서울가자. 나 안떠나. 걱정마. 진짜야. 오빠 안심시키려고 그러는거 아냐. 오빠 눈 떴을때 나 오빠 눈 앞에...아니...오빠 옆에 있을거야."
피곤했다.
아침부터 운전했지. 낮에는 쏘다녔지. 낮술은 또 양껏 마셨지. 저녁 밤에는 나는 울리고 너는 울었지. 밤새 의자에 앉아 자다깨다 하다보니 삭신은 쑤시고 몸은 점점 얼어붙지...
그러고 D랑 같이 이불 속에 들어가서...진짜 곯아떨어졌다.
그러다 번뜩 눈이 떠졌디.
암창 블인헸다.애가 나를 두고 갔으면 어쩌지???하고.
야. 이거 10만원줄께 지갑에 넣어놔. 이거 있음 이 좁은 대한민국어디든 못갈데없어.
그거 가지고 떴으면 어쩌지?
D는 내 눈앞에 있었다.
나 재우고 한숨도 안잔듯 눈이 빨갛게 되어있었다.
내가 손을 뻗자, 그 손을 잡고 자기 뺨에 코에 입술에 목덜미에 가슴에 허리에 배에 엉덩이에 대준다.
"오빠두고 안간다니까?"
"...결심한거지?"
"...잘 안될지도 몰라. 오빠가 도와준대로...유학준비할께...
나 진짜로 공부 많이 안해놔서 잘 안될지도 몰라."
"그럼 나한체 시집오면 되겠네."
"피이...나 그러다 진짜 유학가면?"
"...내랑 결혼하려면 최소한 학사학위. 유럽대학교 석서항위이상에는 가산점 있습니다."
D는 싱긋웃고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뭍는다.
"너 보내려고 그러는거 아냐. 너...하고 싶은 공부는 해보고와서 나 간택해주면 되잖아."
나를 끌어안은 D의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쏼아있네.
"후회하지마."
"까불지마."
나는 내 품안의 D의 머리를 쓰담쓰담하고, D는 이럴때 그렇듯 내 품에 얼굴을 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