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이제는 말할 수 있다.-79년 10월. 김재규는 왜쏘았는가?
71년 대통령 선거때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약속하라고 건의함. 유세현장에서 자신이 건의했던 내용을 말하면서 박정희를 믿음. 그러나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부하들앞에서도 박정희가 다 망쳤다고 노골적으로 노발대발함. 그리고 당시 오순춘 3군단 연대작전 참모는 박정희를 연금하려고 했다고 증언함. 실제 김재규도 법정에서 유신헌법 이후 3군단시절 박정희가 군단 순시할때 연금 해놓고 녹음테이프를 갖다 놓고 하야 권고시키려고 했다고 진술함.
김재규는 장준하와 인연을 맺고 장준하의 가족들도 경제적 등 지원해줌. 이해학 목사는 정권을 이양하고 양심적 군인이 있는데 김재규가 양심적 군인이라고 장담했다고 함. 김수환 추기경에게 어떤 환자가 있다고 이야기함. 김수환 추기경은 나중에 그 환자가 박정희란거 알고 대통령을 환자로 비유해 놀람. 김재규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청와대에 들어와서 박정희에게 조언해달라고 하면서 제3의안(유신체제를 바꾸는) 관련 이야기함. 김재규의 손위동서이자 1979년 주일공사였던 최세현과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권제한, 국내 정치관계를 대폭제한하고 내각책임제 개헌, 재야 및 비판세력 포함 등에 제3안의안을 계획했지만 김재규가 단독으로 거사함.
출처: ml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