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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과 하라감독의 굳은약속
게시물ID : sports_81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너굴
추천 : 15
조회수 : 143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7/10/07 15:02:33
'하라 다쓰노리(49) 요미우리 감독은 한국계'라는 소문이 있었다. 지난해 지바 롯데에서 요미우리로 이적한 이승엽(31)은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아무튼 하라 감독은 이승엽을 끔찍이 믿고 좋아했다. 감독이 외국인 선수를 지나치게 감싸고 돌자 몇몇 선수들은 질시를 했다. 

이승엽에게 4번타자 자리를 빼앗기자 " 스승에게 돌아가겠다 " 며 왕정치 감독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로 떠난 고쿠보 히로키가 그중 하나다. 이만하면 이승엽도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말 하라 감독에게 " 혹시 재일교포이신가 " 라고 물었다. 하라 감독은 " 아니다 " 라며 빙그레 웃었다. 

*** 20년 전의 자신을 보다 

하라는 고교 시절 44홈런, 대학 통산 144홈런을 쳤다. 그가 1988년 요미우리에 입단하자 도쿄 신문사는 이 소식을 전하는 호외를 발행했다. 오 사다하루(王貞治)ㆍ나가시마 시게오 같은 전설적인 타자의 탄생을 예고하듯. 

하라는 그해 신인왕을 차지했고, 이어 요미우리의 48대 4번타자에 등극했다.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통산 382홈런을 치면서도 홈런왕에 오른 적이 없다.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한 '슬픈 영웅'이었다. 그는 툭 하면 4번 자리를 위협받았다. 

하라 감독은 자신 같은 희생양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요미우리의 4번타자는 팀의 중심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4번으로서 영욕을 맛본 하라 감독이기에 적임자를 신중하게 골랐고, 신뢰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하라 감독은 이승엽에게 20년 전의 자신을 투영했다. 

*** 서로를 믿었다 

지난해 2월 1일 스프링캠프 첫날 지휘를 마친 하라 감독은 " 이승엽의 타구는 마쓰이 히데키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 " 고 말했다. 당시 주전조차 확보하지 못한 외국인 선수를 요미우리의 상징인 마쓰이에 비교한 것부터 파격이었다. 이승엽이 3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홈런 5개를 때리고 돌아오자, 하라 감독은 2006시즌 개막전부터 그를 4번타자에 기용했다. 요미우리 70대 4번타자 이승엽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승엽은 초반 맹타를 터뜨리다 4월 말부터 깊은 부진에 빠졌다. 하라 감독이 그에게 말했다. " 넌 요미우리 4번타자다. 삼진을 당해도 고개 숙이지 마라. 네가 기죽으면 동료 모두가 전의를 상실한다. " 이승엽은 가슴이 아려왔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자기를 믿어준 지도자가 없었다. 이때부터 이승엽은 하라 감독을 후견인이자, 그라운드의 아버지로 여겼다. 

*** 두 사나이, 약속을 하다 

이승엽은 지난해 WBC 홈런왕을 차지한 데다 일본에서도 홈런 41개ㆍ타율 3할2푼2리를 기록,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승엽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요미우리는 중위권으로 떨어졌다. 하라 감독이 이승엽에게 " 요미우리에 남아달라. 내년 우승을 함께하자 " 면서 잔류를 요청했다. 

이승엽과 하라 감독은 계약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고리로 연결돼 있었다. 이승엽은 지난해 왼쪽 무릎 부상을 입은 채로 4번 자리를 지켜냈다. 시즌 뒤 수술을 받았을 만큼 통증이 심각했는데도 참고 뛰었다. 

이승엽이 4년간 30억 엔으로 일본 프로야구사상 최고액 계약을 이끌어낸 것은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기백과 투혼, 그리고 하라 감독의 절대적인 지지가 크게 작용했다. 이승엽은 잔류 계약을 하며 " 내 손으로 꼭 하라 감독을 헹가래치고 싶다 " 고 약속했다. 

*** "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 " 

이승엽은 올 시즌 왼쪽 어깨와 왼쪽 검지 부상에 허덕였다. 심각한 부진에 빠진 이승엽을 계속 4번에 기용하는 것은 하라 감독의 아집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하라 감독은 6월 9일 라쿠텐전에서 이승엽을 요미우리 입단 후 처음으로 4번에서 내렸다. 

하라 감독은 "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이다. 이승엽이 4번으로 돌아와야 정상적인 타선 " 이라고 침통하게 말했다. 

이승엽은 4번 복귀와 하위타선 추락을 반복했다. 6월 17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삼진 3개를 당하자 하라 감독은 " 부진이 너무 길다. 삼진 3개는 말도 안 된다 " 고 노여워했다. 하라 감독은 6월 20일 이승엽이 홈런을 치자 두 팔을 들고 환호했다. 3일 전의 분노는 비판을 미리 막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이승엽은 7월 11일 엄지 부상을 참지 못하고 2군행을 자청했다. 방망이를 들 수조차 없어 수술대에 오르려 했다. 하라 감독이 막아섰다. " 팀을 위해 뛰어달라. 홈런을 쳐야 한다는 부담을 버려라. 타율도 신경 쓰지 말라. 필요할 때 쳐주면 된다. " 

*** 서로가 서로를 살렸다 

통증 부위는 타격을 할수록 악화되는 곳이다. 이승엽은 참고 뛰었다. 이승엽은 9월 7일 한신전에서 홈런 3개를 몰아쳤다. 24호부터 29호 홈런을 선두다툼 중이던 한신ㆍ주니치전에서 때려냈다. 

이승엽은 10월 2일 야쿠르트전에서 동점 투런홈런을 토해냈다. 부상과 싸우며 3년 연속 시즌 30홈런을 꼭 채웠다. 이 홈런으로 요미우리는 5년 만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승엽은 약속대로 하라 감독을 헹가래쳤다. 

하라 감독이 3개월 전에 수술을 허락했다면 이승엽은 거액을 받고 드러누운 꼴이었다. 하라 감독은 이승엽이 이겨내리라 믿었다. 이승엽이 막판 홈런쇼를 펼치지 못했다면, 그래서 우승을 놓쳤다면 하라 감독은 구단과의 재계약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믿었고, 서로를 살렸다. 

*** 2006~2007년 하라 감독, 그리고 이승엽 

2006.2 하라 감독 " 이승엽의 타구는 마쓰이 히데키를 보는 것 같다. " (두 달 뒤) 4번타자 임명 
2006.5 하라 감독 " 4번답게 당당하라. 삼진을 당해도 고개 숙이지 마라. " (이승엽이 부진하자) 
2006.7 이승엽 " 요미우리에서 너무 행복…시즌 뒤 진로 망설일지도. " (진로에 대한 질문에) 
2006.10 이승엽 " 요미우리에서 우승하고 하라 감독을 헹가래치고 싶다. " (요미우리 잔류 결정 뒤) 
2007.2 하라 감독 " 이승엽이 메이저리그 갈까 걱정…팀을 이끌어달라. " (2007 캠프를 시작하며) 
2007.6 하라 감독 "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다. 우리 4번은 이승엽. " (이승엽을 4번에서 내리며) 
2007.7 이승엽 " 이제부터 개인성적보다는 팀 승리에 공헌하고 싶다. " (엄지 수술을 포기하며) 
2007.8 하라 감독 " 홈런ㆍ타율 신경 쓰지 마라. 필요할 때 쳐주면 된다. " (승부처에서만 해달라며) 

김식 JES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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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찡하네요(본문제목 그대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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