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있습니다. 거기에 어느 특별한 내부 기관을 가지고 있는 여성형 귀족 로봇도 있지요. 그 로봇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유랑하는 인간 남자가 있어요. 그 남자는 빨강, 초록, 보라색의 액체가 든 병 세 개를 가지고 다니며 연주를 합니다.
여(女)로봇은 끌려가는 도중에 타워 위에서 남자의 연주소리를 듣고 대열에서 이탈해버립니다.
로봇과 남자는 금세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그러나 로봇은 다시 잡혀가게 되고, 둘은 헤어지죠.
둘이 만난 날의 밤으로 추정되는 장면에서, 로봇은 자신의 내부 기관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기관은 남자가 가진 유리병들과 동일한 색을 지녔습니다.
그들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거기서 이야기는 끝나고, 꿈에서 깨어납니다.
사귄 지 오래 된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야,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지?”라고 물어보니, 어물쩡거리며
“어..그냥..뭐 하다가 친해진 거 아님? 뭘 그런 걸 물어보냐?"라고 타박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어떻게 만났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인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지요. 공유하고 있는 정보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둘 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밀감이 남게 됩니다. ‘어떤 사실을 공유한다’는 사실 때문에 둘 만의 비밀이 생긴 듯한 느낌도 들게 돼요.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샌가 서로의 정신세계를 인정하고 공유하게 되는 것이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혼조 아키오’와 반 내 남자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마키나 쥬리’를 다룬 단편애니메이션 ‘하모니’의 이야기는 둘의 대화와 행동 묘사를 통해 진행됩니다. 반 아이들에게 관심받지 못하는 아이인 아키오에게 쥬리는 눈만 마주쳐줘도 황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키오에게는 한번 들은 음악을 바로 연주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 그 능력으로 인해 쥬리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줄거리만 본다면 특별한 게 없는 단편 애니메이션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백미는 액자식 구성으로 삽입되는 또 하나의 영상입니다.
이 글의 도입부에 썼던 꿈 이야기입니다.
그 작은 두 손으로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어.
너는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그 미소 가리며 홀로 눈물 흘렸지.
이제 괜찮아.
언제든 함께 있으며
그 아픔을 나눌 테니까.
너와 함께라면, 떠날 수 있을거야.
KOKIA - アルモニ (Harmonie)
1분 3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음악까지 깔려있는 뮤직 비디오.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학교 씬과 달리 감독이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 듭니다.
이 짧은 영상 하나로 ‘난 하모니 봤다!’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 때문에 이작소에 참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짧지만 영상미, 음악, 분위기 셋이 조화되어 감동이 두 배, 세 배로 증폭 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주범이기도 합니다.
“일부로 전체를 판단한다”의 좋은 예시라고 볼 수 있지요.
결국 ‘Harmonie’ (Harmony의 독일어)라는 제목은 아키오와 쥬리의 결합 그 자체를 뜻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감독은 사전적인 의미의 하모니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시청자와 극의 영상, 음악, 분위기가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만들고 그로인한 카타르시스 (감동)를 느끼는 점까지 고려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은 이 애니를 통해 그만의 세계로 우리들을 초대합니다.
"내 세계는 이런데, 어떻게 생각해?"
"흠, 내 생각엔 말이지..."
그와 친해질 지 말 지를 정하는 건, 이 애니를 보는 사람들의 몫이죠 뭐.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출처 | Harmonie (アルモニ) 보러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PmrloAtHkq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