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며칠, D는 사수인 장대리는 안따라다니고,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D씨...멘토로써 나르 선택한것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데...아니. 임원보고회의까지 왜 따라와-_-;;;;(나 여기 다과서빙하러 가는거여.)
라고 내가 한번 뭐라 할 정도였다.
애가 겉도나...했지.
외근나갔다가 점심 즈음해서 회사로 들어오고 있는데, 저 쪽에서 회사여직원들이 밥먹고 커피를 쭉쭉 빨며 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D가 있었다. 언니들이랑 팔짱끼고 꺄르르륵. 웃으면서 있었다.
"막내는 막내네요. 여직원들이 아유~우리 막내 하는게 보이네요."
"너랑 나는 그런 적 없었잖아. 나는 너 막내때 으이구 이 웬수야.라면서 데리고 다녔는디?"
"...저 챙기신거 아니었어요?"
"챙겨줬잖아. 정신머리랑 개념."
"으에에에에?"
"시끄라. 배고파서 신경이 곤두섰으니까 날 자극하지마. 킁킁. 이게 뭔 냄새여. 옳지 오늘은 청국장이다."
"으에에에에?"
"한번만 더 일본만화에 나오는 여고생같은 소리하면 띠어버릴거여. 가자. 안먹을거야?"
"아뇨. 먹습니다."
D의 평판은 퍽 좋았다.
사상 첫 사무일이라 걱정 좀 했는데, 워낙에 똘똘한 애라 금방금방 배워나갔다.
특히 회사유일 스페인어 담당 장대리가 이뻐 죽을려고 했다.
어우~나는 D같은 동생있었음 좋겠어.라며 자꾸 자기를 대리님이 아니라 언니라고 부르라고 그러고, 둘이 손잡고 화장실다니고, D가 안나오는 월요일 금요일은 풀이 죽어서 일하다가, 화수목 오후랑 별수 없이 나와야하는 주말근무때도 D랑 콩닥거리며 잘 지냈다.
"어? 이거 내가 준 옷 같은데???"
저녁에 늦게 끝날 것 같아서 근처 국밥집에서 국밥말고 있는데, 장대리가 D의 옷을 보고 그런다. 움찔했다.
"네? 아. 네. 그...그래요?"
"...아닌가? 옷취향이 나랑 비슷한가?"
"왜 나랑 남직원들도 옷 비슷한데."
"과.장.님.은. 사무실잠바입는다고, 셔츠도 옆에 세탁소에 다 던져놓고 업체만날때 가서 찾아입는 사람이구요."
"내 영업비밀이다. 함부로 누설하지 말도록."
"글쎄 과장님은 제가 항상 말하지만요. 그럼 여자들이 안 좋아라해요....그러니까~"
"이모!!! 여기 우리 장대리 밑반찬떨어지니까 잔소리해!!! 얼른 갖다줘요!!!"
다음 날. 또 외근나갔다가 오후 늦게, 남들은 퇴근준비하는 시간에 내 일하러 사무실 복귀했는데, D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뭐? 왜? 라고, 눈치를 주고, 자리에 앉으니 까똟이 쏟아진다.
-AA언니가 옷 줬어요. 너무 예뻐.
-아니아니 장대리님
-공주님 옷 같아. 장대리님이 어제 내 옷 보니까 나 막 주고 싶다고 언니가 주는거니까 그냥 받으라고 쇼핑백으로 몇 개나 주셨어.
-지진 온 줄 알겄다. 진동이 멈추질 않네. 왜 받을땐 안보내고 이제 막 보내.
-오빠 운전 중일까봐.
-그려 배려심이 깉은 아이로다. 칭찬해주마. 장대리한테 고맙다고 했어?
-ㅇㅇ. 언니가 같이 옷사러 가재.
-장대리가 나한테나 졸라 까칠하지, 남들한텐 잘해. 친해지면 좋아. 너랑 업무도 같이 하니까...잘 써먹어. 인턴월급받고 너무 무리하지말고.
-자꾸 내 의욕꺽는 소리하지마아.
-그럼 업무시간에 까똟보내지마-_-
-흥. 오늘 몇시에 끝나?
-너보다 늦게. 먼저 들어가서 쉬어. 나 이거 팀장님께 보고하고 박대리랑 유대리랑 일보고 들어갈거니까.
-나.도.오.빠.랑.같.이.집.에.가.고.싶.다.아.아.아.아.아.
-나도 법정근로시간만큼만 일하고 싶드아. 일해. 오빠 바뻐.
-네에~
"외근갔다오면 복귀신고를 해야지. 실실쪼개면서 까똟질이야? 지금 연애때문에 보내는거 아니면 너 깔거야. 뭐야?"
"...까세요. 팀장님."
"내가 보내면 3일 뒤에 확인하고 5일 뒤에 답장하는 놈이 손도 안보이게 찍더라?"
"저도 나름대로 학교다닐때 엄지손가락 닳도록 문자찍은 사람인데 이 정도 못 찍겠어요."
"하여간 입만 살아가지고. 야. 따라와. 상무님 호출."
"네에네에."
"이번 주말에? 어. 일하고 이제 퇴근하지임마. 너보다는 더 성공적인 커리어 쌓을거야. 너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지. 그래서 어디서 모이는데? 아. 그 중국집? 어. 거기 요리 괜찮더라. 가격도 싸드만. n빵 뿜빠이? 졸라 퍼마셔야지. 퇴근하고 넘어갈께. 한 5시 쯤에 보면 될 것 같애. 주말근무에 정해진 퇴근시간이 어딨어. 카드찍고 나가면 땡이지. 누구 데려오라고? 야이씨. 갸랑 사귀는거 아니라니까. 담부턴 그렇게 불러내고 그러지마라."
퇴근하는데 친구한테 전화와서 예전에 우연히 발견하고 반해버린 어느 중국집서 고량주 빨자고 전화가 왔다.
그렇게 만담을 주고받으며 차문을 열고 차에 타는데...
"왘!!!!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 너 여기서 뭐해? 아니. 여기는 어떡게 들어온거야???"
D였다.
나는 어련히 스마트키 주머니에 있는줄 알고, 평소같음 어? 왜 주인님이 오셨는데 불깜빡깜빡안해? 그랬을텐데.
친구랑 전화하는 통에 신경도 안쓰고 그냥 탔다.
D는 내 카드지갑을 들고 후후훗.하고 웃으며 흔든다.
아. 그래서 문이 그냥 열렸구만.
"술냄새야~너 술마셨어?"
"네에~중간고사 끝났다니까~언니가 사줬어요~"
"장대리랑 대작한거여? 장대리가 우리부서 끝판왕인데???"
"아니~다른 언니들이랑~비서언니라앙~다른 인턴언니들이라앙~"
D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오늘 회식참가인원들을 하나하나 헤아린다.
"애기냐? 그걸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게?"
"피이!!! 나 애기아냐~"
"21살이면 애기지. 나도 그 나이땐 애기소리 들었어."
"에엨??? 오빠가아?"
"...그때 이등병-_- 애기야 하면 이뼝!!! 김!!!X!!!!X!!!!!하고 다녔거든-_-"
"아하하하하. 웃겨~ 오빠보고 애기래."
"그치. 넌 그때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건데. 분수나눗셈하면서."
"아하하하하. 오빠 군대있을때 난 초등학생이었대~"
오랫만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술마셨더니, D는 기분이 많이 업되어있었다.
나랑 술마실땐 말만 좀 더 많아진다. 정도였는데, 오늘은 이 애 완전히 풀어졌다.
"벨트매. 가자."
"매줘."
"까불지말고 매시지?"
"매줘어어어어~"
"어디서 앙탈이야-_-? 나한테 씨도 안먹히는거 알면서 그래?"
"매줘매줘매줘매줘매줘."
"매를 주라고? 또 혹나고 싶은게야?"
"아이씨...진짜 아팠어어?"
"...아. 그때 그건 오빠가 지금도 미안하다. 가자. 벨트 좀 매줘."
D는 손을 등 뒤로 빼고는 눈을 딱 감아버린다.
하아...이런 애가 아닌데...술이 웬수지웬수. 내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만.
한숨이 팍팍 나오고, 액면가는 아직도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로 보이는 얼굴이라...
진짜 어디 하나 안닿고 벨트만 찰칵 메주려고, 그 좁은 차 안에서 몸을 아크로바틱하게 꼬면서 벨트를...맬 줄 알았지?
나는 내려서 조수석쪽으로 가서 조수석 문을 열고 벨트를 찰칵 매주러 갔다.
이거 어린 사촌동생들 뒷좌석에 태우고 다닐때 벨트매주고 하다보니까, 이제 그냥 벨트매줄 일 있으면 이러고 있음.
이 모습을 본 적 있는 친구가. 천상 애아빠여. 여친도 없고 와이프도 없고 자기 친자식도 없지만 그 단계를 다 건너뛰고 저러고 있는거 보면 천상 애아빠여. 그랬다가 내 손에 심영될뻔함.
'찰칵'
어?
술냄새 풍기며 앉아있던 D가 나를 와락 안았다.
6.25가 왜 일어났는지 앎? 방심해서.
"언니언니. 남자 착각했어;;;;; 나 그런 남자 아냐;;;;;;;"
"쉿!!!! 조용!!!!"
내 귓가에 대고 나름 단호하게 말하는 D.
목소리도 애기같은 애가 그리 말하니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응을 못했다.
D는 그렇게 한참을 날 안고있었다.
나는 본의아니게 벨트매주고 빠지려는 찰나에 D에게 안겨서, 양손이 어떡게든 D에게 안닿고 내 몸의 중심을 잡으려 필사적으로 버티며 서있어야 했다.
허리 뽀사지는줄 알았다.
"고마워. 오빠."
"으...으으응...그래그래...고마우면 은혜 좀 갚아라. 지금 나 허리 나갈것 같으니까...팔 좀 풀어라..."
"조금만 더..."
"나 10셀께. 그때까지는 풀어주도록...하나 둘 열. 풀어풀어. 탭하고 싶은데 탭하면 중심무너질까봐 그러지도...야. 자냐?"
전에 등록금 문제로 신나게 싸우고, 편의점에서 화해하고 나오다가 술 사려다가 안된다고 질질 끌려나올때 깨달은거지만, D는 악력이 참 쌧다, 손도 작은 애가.
어라? 인체가 수면에 들면 근육이 이완되야하는데, 이건 거의 사후강직 수준인데? 어? 어? 야. D야. 오빠 진짜 허리아프다. 풀어라. 이거...
겨우, 살며시 고개를 들어 D얼굴을 보니, 새근새근 잔다.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본건 또 처음이고, 이제보니 약간 얼굴에 화장기가 도는거 보니, 장대리가 손을 댔군.싶더라. 예뻤음.
나는 살며시 얼굴을 더 D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쪽??? ㄴㄴ.
나는 신사라서, 적인 방심할때 기습하는 그런 사람이 아님.
"후!!!!"
"아!!!!"
나는 감은 D의 눈 쪽을 향해 입김을 훅!!! 불었다.
내가 포옹을 풀려고 할때마다 양손과 이두삼두에 힘이 팍팍 들어가고,
내가 애 피곤에 절어 자는걸 한두번 본 사람이 아닌데, 어두웠지만 살짝 실눈을 뜨려는게 보여서 또 실눈 뜨는 타이밍에 눈에 입김을 불었다.
"어디서 자는 척을 해."
"아아아아아아~"
"앙탈은. 아이고야. 허리아프다. 너 술 너무 마셨어."
"이이이이이잉~"
"손손. 손다친다. 문닫을께."
집에 가는 차안에서 D는 이제 거의 지 지정석이 되버린 조수석에 몸을 푹 파묻고는,
잠 안자면 가는 길에 심심치 않게 나랑 대화나 해주지. 말 한마디 안하고 뭐가 좋은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창 밖만 바라봤다.
"D."
"응?"
"뭐 맛있는거 먹었어? 기분 디게 좋아보인다?"
"그것도 있고."
"다른건 뭔데?"
"안 가르쳐줄거야."
"..."
"안 물어봐?"
"방금 려성동무의 짧고 간결한 대답과 강렬한 눈빛에서 백번 물어봐야 소용이 없을거란 그런 확신이 들었소. 내래 조국통일의 과업은 9년전에 2년만기전역하며 실패했지만, 지금은 피곤하고 허리아파 뒤질것 같으니 운전에나 집중하는걸로 대신 하겠음매. 려성동무는 좀 자라우."
"하나도 북한 사람 안같애."
"대동강맥주를 안마셔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