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애니메이션 게시판에 연재되던 <레프트 노벨>이 3부 프롤로그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읽었고, 기존에 찾아볼 수 없었던 참신한 소재의 작품이라 읽어보지 않은 분들에게 소개할 겸 하여 허술하게나마 감상평을 적어보았습니다.
감상평 - 라이트가 그 라이트였어? 좌파 라이트 노벨 <레프트 노벨>을 읽고
수개월 전부터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라이트 노벨을 소재로 언어유희를 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흔한 유형은 제목을 비튼 말장난이었고 그 파생형으로 ‘뉴-라이트 노벨’이니 ‘레프트 노벨’이니 하는 말도 나왔지요. 처음에는 그냥 웃고 지나갔던 한두 단어짜리 농담은 어느덧 서너 줄짜리 소재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었고, 정말 그런 내용의 소설이 나온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오늘의 유머 애니메이션 게시판에 정말로 <레프트 노벨>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묘하게도 최초 업로드 날짜가 10월 26일이더군요. 여하튼, 웹상에 떠도는 소재로 그럴싸하게 만들어낸 만화나 소설이 한두 편 올라오고 연중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별 기대를 가지고 클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레프트 노벨>은 2부 완결까지 연재되었고, 좌파 활동가를 소재로 삼은 소설이라면 <어머니>나 <강철군화> 같이 다소 무거운 분위기만 생각했던 제게는 꽤 신선한 자극이었습니다. 연재기간 3개월 동안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고, 그 즐거움에 대한 나름의 보답으로 간단하게나마 감상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레프트 노벨>은 PD계열(로 추정되는) 운동권 고등학생인 주인공 이리치가 ‘모의 유엔 교육공동체’, 약칭 ‘코뮌(COMMUNE)'에 참석하며 시작됩니다. 참가자들은 추첨을 통해 각각 유엔 회원국 하나씩을 맡아 역할을 연기하게 되어있는데, 주인공은 담당할 국가로 그만 미국을 뽑고 말지요. 투철한 좌파 이리치는 당혹스러워 하지만 이윽고 좌파답게 강요된 규칙 따위는 무시하기로 결심하고 코뮌에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쳐나갑니다. 그러던 도중 자신을 ’동지‘라 부르던, 마찬가지로 코뮌 참석자이자 NL계열 운동권인 수진을 도와주려다 오히려 관계가 껄끄러워져 당황하게 되지요. 같은 활동가인 이리치 자신조차 벗어나지 못한 편견으로 인한 실수였음을 깨닫고 다시 연대감을 회복하는 장면은 한국 사회에서 NL이라는 존재의 처지가 어떤지를 보여준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둘에게 코뮌에서 이리치와 대립하던 참가자 장필이 갑자기 접근해오기 시작하며 주요 인물 셋이 안면을 트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어떤 좌파 고등학생의 일상을 다소 가볍고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코뮌의 막바지에 극우 학생단체가 등장하고 이리치가 귀가 중 납치당하며 암울한 시대적 배경이 획연히 드러나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코뮌에서의 발언을 트집잡혀 대공분실로 끌려가 위협당한 후 풀려난 이리치는 그것을 구실로 학교에서 부당한 퇴학을 당하고, 그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총동원한 1인 투쟁을 벌여나갑니다. 수진과 장필도 이리치를 돕기 위해 나섰다가 장필까지 퇴학당하고 말지만, 그렇게 함께 싸워나가며 이리치와 장필은 좌파와 우파라는 뚜렷한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제법 친해지게 됩니다. 둘은 기나긴 싸움 끝에 여론의 주목을 유도하고 우호적인 정치인과 교섭하여 복학 결정을 이끌어내지만, 이번에는 수진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사실 수진도 투쟁 도중 퇴학을 당했지만 NL인 자신까지 전면에 나서게 되면 여론이 반전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실을 숨기고 자신의 복학은 포기한 것이지요. 이것을 알게 된 이리치와 장필은 그들도 복학을 포기하기에 이르지만, 모종의 인연을 통해 세 ‘동지’들은 함께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것으로 소설이 중단됩니다.
이 <레프트 노벨>의 특색은 역시 다른 라이트 노벨과 확연히 차별화된 소재, 그리고 기존 서브컬쳐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주연 인물들입니다.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주의 유머코드가 한두 토막 들어간 라이트 노벨은 의외로 적지 않은 편입니다만, 아예 운동권 고등학생의 일상을 주 소재로 삼은 라이트 노벨은 아마도 이것이 한국 최초가 아닐까요.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운동권’은 그다지 낯선 단어가 아니지만, 운동권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1990년대 이후 서울 일부를 제외하면 대학에서마저 운동권 세력이 축소되면서 그들의 주장과 활동을 직접 보고 들은 사람도 그에 비례해 줄어든 탓에, 운동권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단편적인 정보에 기반을 둔 피상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레프트 노벨>에서는 그 희귀한 존재인 운동권 고등학생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독백을 통해 ‘그들’이 사회와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를 딱딱하고 어렵지 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을 막론하고 라이트 노벨들이 비슷한 시공간적 배경과 비슷한 내용전개로 전반적인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느낌인데, 이런 신선한 시도만으로도 라이트 노벨로서 제법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런 유형의 소재와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은 ‘작가의’ 뚜렷한 사상을 부여받은 주인공이 프로파간다를 펼치는 내용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레프트 노벨>이 프로파간다가 아닌 ‘소설’로 남아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장치가 바로 다른 주연들입니다. 주인공이 자신과 다른 사상을 가진 수진과 장필을 만나 관계를 형성해 가면서 <레프트 노벨>은 좌파 주인공이 좌파사상을 설파하는 ‘원맨쇼’가 아닌, 약간 특이한 유형의 청춘소설의 모양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점이라면 관계의 매개체가 우정이나 사랑이 아닌 사상이라는 것이겠지요. 수진과 장필 역시 주인공만큼이나 ‘스테레오 타입’과는 사뭇 다른 인물들입니다. NL 하면 떠오르는 것이 북한과 주체사상이지만 수진은 비(非)주사파 NL이고, 장필은 자유(시장)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뢰를 가지고 있지만 이리치를 대하는 자세는 웬만한 리버럴보다 개방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이처럼 독특하고 이질적인 세 명이 만나 우여곡절 끝에 ‘동지’가 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리치와 수진은 PD든 NL이든 똑같은 운동권이니 친밀해지기 쉽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리치와 장필만큼 으르렁대지 않는 것이 신기한 관계입니다. PD와 NL이 술 마시면 술주정으로 NL이 “조국통일 되면 니들이 숙청대상 1호야”라고 하고, PD는 “민중해방 되면 니들은 죄다 반동이야”라고 한다는 옛날 농담이 이들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죠. 물론 세상이 많이 달라진 요즘은 대립이 심한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호평하는 글을 썼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 몇몇이 보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대상에 대한 서술이 다소 미흡하지 않은가 합니다. 묘사의 분량이 적은 점도 있고, 작중 과거-현재 사건들에 대한 외국(특히 미국)의 이야기가 없는 것은 정치적 소재를 사용한 라이트 노벨로서 약점이 아닐까요. 현대사를 펼쳐보자면,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자임을 믿던 한국인들은 미국의 전두환 쿠데타 묵인과 광주학살 간접지원을 지켜보며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시작전권이 없는 한국의 특성상 작중 이정환 세력의 쿠데타에 미국이 거론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어색합니다. 특히 작중 한국의 시민들은 현재 한국의 시민들만큼 정치적 관심도가 높게 묘사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자인 수진이나 나름대로 합리적인 장필이, 그리고 이리치가 서로간의 논쟁이나 대화에서 미국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오류가 아닐까요. 최근의 라이트 노벨들이 국제사회를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에 있기는 하지만, <레프트 노벨>은 소재 특성상 그렇지 않아야 하고 소설의 발단마저 주인공이 코뮌의 ‘미국’ 역을 맡은 것이지요. 다만 연재 도중 작가분이 시대상 오류에 대해 종종 언급한 적이 있으니 이후 연재분에서는 수정되지 않을까 합니다.
<레프트 노벨>은 상당히 한국적인 소설입니다. 입학식이 4월이라거나 등교 길에 벚꽃이 핀다거나 하는 작품 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 외적인 의미입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공산당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좌파세력은 없다시피 한 상태로 알고 있고,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도 ‘선진국’ 치고는 낮은 편입니다. 이런 소설이 나오기도 힘들고 나와 봐야 별 반향을 기대하기 어려운 토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좌파세력이 미약하지만 정치적 관심도가 매우 높다는 크나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라이트 노벨의 주 독자층인 학생과 청년들의 정치적 관심은 괄목할만한 수준이지요. <레프트 노벨>처럼 정치적인 소재를 사용한 작품이라도 한국의 독자들은 거부감을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설이 ‘나올 만하고, 먹혀들 만 한’곳이 바로 한국 서브컬쳐계라고 할까요. 최근의 정치사회적 격변을 보고, 듣고, 참여한 독자층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훗날 연재가 재개되어 마무리까지 되기를 기원하며, 감상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