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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5).
게시물ID : love_406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4
조회수 : 174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01/23 22:37:57
"내가 이제 너랑 별 짓을 다하는구나...남자 둘이 앉아 빵을 다 쳐먹고..."
"왜 옛날 생각나지 않냐? 학생때 빵집에서 막 여자애들 만나고ㅋㅋㅋㅋ"
"이의있소!!! 피고는 위증을 하고 있소!!! 니가 학생때 여자를 만났다고?"
"왜 옆에 여중애들 있잖아."
"까고계십니다. 중딩때 땀내에 쩔던 남중에서 남자들하고만 지낸 과거가 너무 슬퍼서, 과거를 망상하고 그게 진짜 기억처럼 덮어버린거 아녀?"
"까지말고 쳐잡수세요."

아. 이 놈은 내 모근개수까지 아는 새끼지.
친구는 과거를 들키자 내 입에 지가 먹던 고로케를 쑤셔넣었다.

그 날은 친구랑 요즘 빵집에 까페까지 운영하는 프렌차이즈빵집에서 빵을 먹고 있었다. 우걱우걱.

"빵을 3개씩 먹었나?"
"넌 4개. 방금 내가 고로케 양보했잖아."
"아밀라아제 맛 밖에 안나더라. 이 좀 닦아라. 정화조가 친구하자고 그러겠다. 
목젖에 걸려서 토할뻔한게 아니고, 니 주둥이 냄새땜에 토할 뻔했다."
"닥쳐. 야 가서 빵 2개만 더 사와라. 커피 좀 남았어."
"배 안부르냐?"
"사주면 처먹을거잖아."
"졸라 비싼거 먹을거여."
그 놈 카드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고만고만한 빵들을 고르고, 카운터로 갔다.
"어?"
"어?"

무슨 산업의 역군이신가...이번엔 그 빵집에서 그 애를 만났다.
그 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슈크림이랑 애플파이랑 얼마입니다. 하고 얼른 계산해주었다.

"뭐 사왔냐? 딱 지 좋아하는것만 사왔네."
나는 그나마 딱딱한 애플파이를 그 주둥아리에 정통으로 던져주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이씨. 왜 사줘도 쥐뢀이야."
"..."
"뭐 왜?"
"야. 우리 21살때 주말에 뭐했냐?"
"뭐하긴 븅쉰아. 이뼝XXX!!!! 하면서 뭐빠지게 걸레질이나 하고 다녔지."
"아니. 군대가기전에."
"놀아재꼇지. 내일 세상이 망하니까 오늘 놀아야지하고."
"그랬지? 21살이면 그래야지?"
"졸라 놀아재끼고 성적표에 쌍권총 몇개는 그어줘야지."
"나 그러다가 4학년때도 48학점 듣고 계절학기도 9학점씩 들었어-_-"
"나보다 더 븅쉰이 여깄다닠ㅋㅋㅋㅋㅋㅋ"



다 먹고 다른 친구들이랑 당구치기로 한 시간이 되어 나가며 슬쩍 카운터를 봤는데,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어째 기분이 얹짢아져서 그 날 당구도 잘 안쳐져서 게임비 다 물었다.
이 기분에 술마시면 기분이 더 안 좋아질것 같아서, 게임비만 내고 그냥 간다고 했다.
드디어 왔군. 간경화 간경병 간염 간암. 귀찮으니까 서로 조문 안가는걸로 퉁치자. 안간다? 
그 주둥아리들에 초크칠을 해주고 집에 들어왔다.



"..."
"..."
"이거 이대로 팀장님께 품의 올릴께요. 고생했어요."
긴장모드로 서 있던 여직원의 얼굴에 안도감이 확 퍼진다.
"왜요?"
"과장님 어디 고쳐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건 틀린게 있으니까 그런거지, 오늘같이만 해오면 내가 왜 고쳐오라고 해요. 이거 자료만드느라 고생했어요."
"네에~감사합니다."
"아. B씨."
"네?"
"그러고보니까 B씨 몇 살이죠?"
"과장님~같은 팀인데 제 나이도 모르세요?"
"내가 채용했나. B씨 나이를 내가 어떡게알아-_-;;;;;;;;;"
"26살이요."
"에????? 20대 꺽였었어????"
"호호호호호호. 제가 좀 동안이죠????"
차마 아니. 내가 그만큼 너한테 관심이 없었어.라고는 말 못하겠더라. 
"너무 애기같이 봤네. B씨. B씨는 21살때 뭐했어요?"
"학교다녔죠~"
"아르바이트 뭐 했어요?"
"아뇨.안했는데요? 집에서 등록금 다 내준다고, 그냥 공부만 하랬어요. 과장님은요?"
"주유소에서 총잡았지. 그러다가 성적표도 총잡고."
"아~그래서 셀프주유소가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름넣으시는구나."
"그런가?"
"그런데 갑자기 21살때는 왜 물으세요?"
"그냥. 갑자기???"
여직원은 아리송한 얼굴을 한다.
"왜요?"
"아뇨~과장님 여직원들한테 이런 질문 전혀 안하시잖아요. 개인적인 질문 이런거. 갑자기 물으셔서요."
"...그러게. 왜 이러지? 뭐...이번 건은 정말 고생했어요."

그리고, 그 날 안하던 짓 한다고, 김과장 곧 죽는대. 왜 사람이 죽기 전에 안하던짓 하잖아.
사인은 간경화 간경병 간염 간암 중에 하나.로 알아서들 사망진단서 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보고서 품의서 들고오는 대리 사원들은 퍽 고생을 했다.



그 날은 일찍 끝난 날이었다.
씻고 방바닥에 철푸덕 앉아서 플스를 좀 할까 그냥 테레비나 볼까...하다가, 그냥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나는 혼밥 혼술 이런거 유행하기 전에 이미 혼자 뷔페며 횟집이며 심지어 전주에서 막걸리집 이런것도 다 섭렵한 사람이라, 혼밥 이런거는 전혀 거부감이 없는데 그 날은 어째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영 땡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무턱대고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애 집으로 가는 언덕배기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 봄이라 해가 짧은 때였다.
아직도 이런 가로등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두침침한 가로등 아래, 작고 갸냘픈 여자애가 책더미를 안고 위태위태하게 걷고 있었다.
그 애가 매고 있는 낡은 백팩도 터질것 같이 무거워보였다.

"어?"
"가방줘. 들어줄께."
"안녕하세요...그리구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줘."
그렇게 반강제로 가방을 뺏아들고 움찔했다.
"혹시 여군 이런거 준비해?"
"네?"
"...이거 군장무게잖아-_-+ 이걸 지고 안고 여기까지 온거야?"
"...네...레포트가 있어서..."
"...그러고보니 감자탕집 아르바이트 안가?"
"...학교때문에 자꾸 빠지니까..."
"일단은 집까지 가자. 들어줄께."
주저하는 표정이었지만, 몸은 거짓말을 안한다. 허리가 펴지고 발걸음이 퍽 가벼워졌다. 
그 몇 분동안 그 애는 한 백번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힘든 내색을 안내려니, ㅇㅇ. 이 간단한 대답 한번을 못해줬다.

"헉헉...이거 입에서 내는 소리가 아니여...그냥 내가 오늘 몸이 좀 안좋아서...헉헉..."
"하아하아...정말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가서 물 한컵만 가져다줄래?"
"아!!! 네!!! 잠시만요!!!"
"찬물찬물. 나뭇잎 그런거 띄우지말고...도대체 뭔 책들이야..."
안고들어간 책들 말고 미처 들고가지 못한 가방을 슬쩍 열어보았다.
척 봐도 전공책들이다. 꽤나 낡은걸 보니 교수가 표지만 바꿔가며 책장사하나보다. 
아마 그 사이에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이 확립되었어도, 이 책들은 아직도 천동설을 논하고 있을 법한 비쥬얼이었다. 
짠했다. 나는 대학생때 책값받아다가 수업시간에 출튀하고 당구장 피씨방 막걸리값으로 그 책값을 소비하고, 시험은 선배들 족보들고와서 시험보고 개망하고 교수님께 싹싹 빌어도 학고를 못 면했는데;;;;;
"여기요. 천천히 드세요. 체해요."
"(벌컥벌컥벌컥) 땡큐. 어 시원하다."
나는 물 한컵을 단번에 비우고 숨을 고르고, 그 애는 가방이랑 컵을 들고 낑낑대며 반지하방에 들어갔다가, 수건을 들고나왔다.
"아. 땀?"
"네. 감기들어요. 아직 바람 차요."
"센스쟁이시네. 고마워."

수건에서는 여자애의 냄새가 아닌, 반지하방 특유의 곰팡이냄새만 났다. 

"...이제 뭐할거야?"
"네???...레포트쓰기 전에 책 좀 보려구요."
"저녁은?"
"먹었어요."
참으로 슬프게도 그 순간 그 애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신사라면 못 들은체 해주겠지만, 난 신사가 아니다. 오히려 망나니과지.
"3일 전에 먹은 저녁말고, 오늘 저녁 말이야-_- 가자. 밥먹자."
"아뇨. 저 괜찮아요."
"여기까지 짐들어줬는데, 혼자가서 쓸쓸하게 저녁먹으라고?"

그 애는 순간 고민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이런 아저씨랑 밥을 먹으러 가야하나.하고 고민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애는 체크카드의 잔액을 계산하고 있었던 거다.

신사도 아닌 주제에 눈치도 없는 나는. 아. 얼른. 밥먹자고 밥. 이러면서 그 언덕길을 책을 안고지고 갈때보다 더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그 아이 손...은 못잡고 낡다못해 소매가 다 헤진 잠바 소매를 잡고 큰 길로 향했다.



"땀흘리면 고기 먹어야 돼. 내가 안물어보고 들어왔는데 혹시 독실한 베지테리안이야?"
"네??? 아...아뇨."
"좋아좋아. 이모~여기 삼겹살 둘에 목살 둘이요!!!"
"네? 저 그렇게 많이 못 먹어요."
"걱정마. 내가 그렇게 먹어."
음료는 뭘로? 쐬...아니. 사이다 주세요. 
나오는 고기를 자기가 굽겠다고 가져가는데, 얼마나 무겁게 책을 안고 지고 왔는지, 집게 든 손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내가 안다. 차도 못가는 대공진지에 대공탄 인력으로 옮길때 
그 산길을 탄박스지고 올라가서 반합에 반찬 다 때려박고 비빈 밥을 먹으려는데 
수전증 걸린 사람마냥 손이 달달달 떨려, 서러워서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아 비강으로 넘어온 그 눈물의 소금기를 입안으로 느끼며 손으로 퍼먹었던 그 비참한 기억을.
이리내, 내가 고기굽기 검빨띠여.라며 집게랑 가위를 뺏아다가 막내때 굽던 솜씨대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굽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먹을 것 앞에 두고 내숭떠는 여자를, 문자 그대로 밥맛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애는 정말 잘 먹었다.
배고파서 먹는 고기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먹는 거였다.

"D"
"네?"
"우리 저번에 둘이 합해 딱 한병씩 먹자고 했잖아."
"아. 그때요? 그때 술값 많이 나오셨죠?"
"한번씩 그렇게 미치는 날도 있으니까 신경쓰지마. 우리 그때 약속한 둘이 합해 한병. 오늘 딸래?"
"네? 그래도 돼요?"
"ㅇㅇ. 쐬주없이 먹으려니 삽겹살이 퍽퍽하네. 이모!!! 신선한거 하나!!!"

잠깐이었지만, 중노동하고 소주 한잔을 탁 털어마시니, 뒤틀렸던 척추가 펴질것 같이 술기운이 확 퍼졌다.

"아저ㅆ...아니...그..."
"편하게 불러. 솔직히 오빠라고 부르기는 부담스러운 액면가지, 내가."
"혹시...몇 살이세요?"
"21살이랬지? 11살 많아. 1살만 더 차이났어도, 띠동갑이니까 말 놓으라고 했을거야."
"에엑?"
"에엑? 왜 한 40대인줄 알았어?"
"아뇨. 거기까지는 안봤어요."
"그 언저리로 봤구만? 옛다. 좀 탄거 먹어라."
"잘 먹을게요."
"이리 내. 암걸려."

나 그때 진짜 그 다 탄 고기 치우려니까 안타까운 눈빛 보내는 사람. 태어나서 처음 봤다. 진짜로.
나도 모르게, 갈매기살을 두개 더 시켰다.
서빙하는 아줌마도 그래, 니가 처먹겠지. 이 아가씨가 먹는거겠어?라며 주문을 착 받아갔다.

"이거, 오늘은 반드시 제가 사드릴거예요. 꼭이예요."
"아. 오케이오케이. 그래. 그때 나 죽일뻔한거 깽값 한번 받아보자."
고기가 7인분. 후식으로 물냉에 누룽지, 된장찌개 서비스. 한병은 개뿔. 벌써, 3병째였다. 

저번처럼 우리는 또 쓸떼없는 이야기들만 나누었다.
그 애는 내 아재개그도 잘 웃어주었고, 나도 (빠른 년생이라) 12학번이나 차이나는 이 애의 대학생활을 들으며, 강산이 변하긴 변했군. 지금 대학생들은 그런단 말이지?라며, 세상 다 산듯이 한탄을 했다.

그 애에게 저번에 이 핸드폰 바꾸고 요금도 한번 안낸거라, 너가 나 죽이려든다는거 알면서도 다시 빽도했다며 핸드폰 보여주고, 그 애는 나름 최신형인 내 핸드폰을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만지고 있었다. 
"어? 아젔...아니. 오빠. 전화요."
"전화? 아...매너 졸라게 없네. 시간이 몇개인데...예~부장님. Z사에 김과장입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갑에서 온 전화라 울컥하는걸 참고 영업용 한 옥타브 올라간 솔을 유지하고,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늦은 시간에 전화한 갑의 개소리를 들으며, 가게 문 밖에서 나는 다 보고있었다.
화장실을 한번 다녀온 그 애는 가방에서 통장까지 꺼내서 잔액을 확인하는듯 하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낡은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꺼내서 카운터로 향했다. 
아이씨...그냥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카드 마그네틱이 닳았는지 어쨌는지 카드가 계속 안 긁히나보다.
당황한 그 애의 얼굴을 보니 또 가슴이 아린다.

'부장님. 제가 내일 담당부서에 관련자료랑 견적서 오전 중에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죄송한데 전화끊겠습니다."
"안될리가 없는데;;;;;"
"한도초과라고 떠요. 카드가 안 읽히는게 아니고."
"내가 말했지. 나랑 나이대 두 자릿수 이상 차이나는 애한테 밥 안 얻어먹는다고. 여기요. 일시불이요."
야속하게 한방에 긁혔다.
"가방챙겨. 가자. 이모 잘 먹었어요."
"네~또 와요~"



애가 좀 더 취했더라면 또 그 날처럼 업고 왔을거다.
그런데 그 날은, 조선시대 양반님들처럼 남자인 나는 앞서서 걷고, 그 애는 조금 떨어져서 걸어왔다.
얼른 집에 가시라는걸, 그 컴컴한 골목길에 여자 혼자 보내고 그러는 사람아니라고, 억지로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배웅해주고 있으니 저렇게 뒤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지, 혼자 보냈으면 정말 엉엉 울면서 집에 갔을거다. 

내가 안 우는 만큼, 남들 우는거에 대처를 못하는 사람인지라, 뒤돌아보면 정말 당황할 것 같아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맛있는거 사주셔서요."
"별 말씀을. 독거노인이랑 어울려줘서 고마워요. 노인도 공경할줄 알고. 복받을껴."
애써 감추고 있지만 그 사이에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하고는, 그 웃기지도 않는 말에 풋!!!하고 웃는다. 

"아. 맞다. 바람막이. 오늘은 가져가야지."
"아 참. 지금 드릴께요."




조금 취한 통에 그 애가 반지하방 내려가는 계단에서 휘청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애를 부축해서 따라내려가지 않았을거다.
조금 취한 통에 그 애도 정신이 없어서 내가 따라내려오는데 별 제지를 하지 않았다.
조금 취한 통에 나는 다른 여자 집에 발을 들여버렸다.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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