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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3).
게시물ID : love_406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4
조회수 : 1874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8/01/21 23:15:25
"네. 여보세요."

거래처랑 미팅끝나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운전중이라 번호 확인도 안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는 잘 안받음. 명함받으면 바로 저장함.)

"여보세요. 혹시 XXX씨 핸드폰인가요?"
"네. 그런데요."
"아...안녕하세요. 저는..."
"...아!!! 바람막이!!!"




그 애는 오후 5시부터 12시나 1시까지 그 감자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나는 주로 9시나 10시 즈음에 집에 도착해 씻고 술 한잔 털고 자고 새벽 5시 반이면 출근하곤 했다.

괜찮다니깐, 자꾸 그러네. 라면서도 꼭 얼굴뵙고 돌려주고 싶은데...시간이 안맞네요...라는 그 애의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서,
그럼 퇴근하고 밥먹으러 갈께요. 뼈해장국에 수제비 좀 많이 넣어줘. 젓지말고 흔들어...아니 뜨거우니까 그러지 마. 하고는 
퇴근하고 그 가게로 찾아가기로 했다.



"어서오세요~"
24시간 여는 그 감자탕집은 늦은 시간임에도 시끌시끌했다.

"뼈해장국이랑...쐬ㅈ...아니 그냥 뼈해장국만 주세요."
"네. 여기 뼈해장국~"

딱 들어왔을때 그 애가 반겨주고 해줄줄 알았는데, 조선족 아즈마이가 반겨주어 초큼 실망했다. 

오유를 보며 당근에 쌈장찍어 오물대고 있자니, 딸각.하고 반찬그릇이 놓여진다.
셀프로 무김치며 김치를 덜어먹는 집이었는데...내 맹세코 말하는데 그렇게 예쁘게 잘라진 무김치는 본 적이 없었다.
"...아."
"수제비 많이 넣어드릴께요^^"

두근.

설마 나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애의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릴 줄이야. 




조선족아즈마이들이 접객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요즈음.
이제 갓 스무살 된 여자애는 존재만으로도 빛이 났다.

평소같음 아줌마들이었음 짖궃은 농담이라도 던졌을 풍의 아저씨들도,
늦은 시간에 고생이 많다며, 장난걸고 하지는 않더라.

일단 저.쪽,구.석.에서 누구든지 성희롱성 발언을 지껄이면 이 뚝배기를 니 두개골에 아로 새겨주겠다.라는 포스의...
아무나 붙잡고 도를 아느니 하는 이들이 포스에 쫄아서 눈도 안마주치는 놈이 
당근 오이를 오드득 씹고 뼈다구를 야무지게 쭉쭉 빨아먹으며 노려봐대니 하기 힘들었겄지.

"이모~저 오늘..."
"아. 기래. 시간이 버얼써 그렇게 되았니? 얼른 가보라."
"네. 내일 뵐께요. AA이모~내일 봐요."
"기래~고생했다~조심히 가라~남자들 다 늑대야~"
"네^^"

성질이 급해 믹스커피는 뜨거운 물에 안 먹고 찬물 섞어 먹는지라, 커피 하나 뽑아다가 빈 종이컵에 찬물부어 섞어 먹고 있자니...
그 애는 얼른 시계를 보고는 메고있던 앞치마만 벗어놓고는 이모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다.

"어라? 끝?"
"네^^"
"...옷만 줘도 되는데?"
"실은...저 오늘 월급받았어요."
"...내 친구가 미래설계플래너 이런거 해. 소개시켜줄께. 그 놈한테 상담 한번 받어. 그리고 그 놈이 짜주는 플랜대로만 안하면 최소한 깡통은 안차."
또 풋.하고 웃는다.
그래. 이 나이 또래는 이런 웃음을 지어야 어울린다. 



잠시 실갱이가 벌어졌다.

월급받았으니까 커피사드릴께요. 
글쎄 내는 여자한테 커피얻어먹는 취미없어. 옷 줘. 집에 가게. 잠와 피곤해.

그렇게 창사기념바람막이가 든 쇼핑백을 두고 옥신각신하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자.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가 나보다 나이차 두자리수 이상 차이나는 애한테 얻어먹으려는건 
만에 하나 내가 결혼해서 내 아이가 첫월급 받았다고 밥사줄때. 그때나 얻어먹을 생각인 사람이야.
이건 내 굳건한 신념이니 건드리지마. 
오히려 내가 사주고 싶으니까, 가자. 커피집."
"...그럼 저 술 사주세요."
"...갈수록 첩첩산중인 아가씨일세-_-..."
"그럼 제가 사주시는 커피 마실거예요?"

그랬다. 그냥 커피를 얻어마셨어야 했다.
그.런.데, 훌륭한 밥안주인 뼈해장국을 두고 한잔 안꺽은 나는 갑자기 술이 확 땡겼다.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졌다.
마법이 풀리기 전에 집에가서 자빠져자야 내일 아침회의에 나갈텐데...

"...야. 미쳤냐?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해?"
"...팀장님. 저 내일 아침회의 쨉니다."
"...너 요즘 무슨 약하냐? 혼자 피식피식 처웃더니, 이제는 아침회의를 째신다?"
"저번에 거래 성사시킨걸로 주라는 보너스는 안주고, 팀장님 애들도 안하는 소원들어주기 쿠폰 주셨잖아요."
"애새끼냐. 그걸 또 믿게?"
"여자랑 있습니다."
"내일 휴가처리해줄께. 그냥 나오지마. 뭘 아침회의만 째. 
너 휴가 안쓴지 오래됐지? 내가 부장님께 말씀드릴께. 날 잡고 웨딩사진 찍고 청첩장 들고 복귀해."
"오바하지마시고요-_-...딱 한잔만 빨고 들어갈건데 그냥 내일 회의 가고 싶지 않아서요."
"회의는 잊어. 야. 전화 잘했다. 자료 출력한거 내가 발표할께. 걱정마. 내일 그냥 쉬고. 보고전화도 하지마. 내일 모레 보자. 통신끝."
"수신완료. 편안한 밤 되십쇼."



조건을 걸었다.
"집이 어디?"
"네?"
"우리가 술마시는 장소는 아가씨집. 반경 100m내에서 마실거야. 101m도 안돼. 술먹고 뛰어가도 30초 이내로 갈 수 있는데서 마시는거야.
그리고 둘이 합쳐서 딱 한 병. 오케이?"

그 애의 집은 이 동네 오래산 나도 아는 골목이었다.
초년생때 아무리 없어도 여기는 아니지.하고 복덕방 아저씨랑 들어가보지도 않았던 다세대주택이 모인 골목.

확실히 그 애의 집인지 확인할려고, 아가씨가 산다고 떼안쓰게 아예 지갑두고 오라고 들여보내니, 내 발 밑의 반지하방 불이 켜지고, 잠시 후 불이 꺼진다.

100m이내에 술집은 커녕 마을버스정거장도 없는 동네라, 조건을 조금 풀었다.
조금만 더 나가면 아까 그 쓰러질것 같은 동네에서 꽤나 번화한 길이 나온다.

사실 뭘 더 먹자니, 금방 뼈해장국을 공기추가해서 먹어놔서 배가 불렀고, 그 애도 하루종일 일해서 녹초가 된 터였다.
"그래...기왕 사주기로 했으면 좋은거 사줘야지. 이쪽으로."



어느 상가건물 지하에 있는 조그만 바였다.
인테리어에 좀 욕심을 줄이면, 이 상가건물정도는 임대료걱정안하게 지를것 같은 양반이 사장인 바인데, 그만큼 계산서 보면 움찔할 정도로 가격이 쎈 집이었지만, 서비스도 퍽 괜찮고 사장님이라면 처음 오는 이 애도 부담가지지 않게 대해줄것 같아서 데리고 들어왔다.

묵직한 그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오...헉!!!!!!"
사장님은 내가 여자랑 들어오자, 진짜 귀신이라도 본 것 처럼 손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닦고 있던 크리스탈 잔을 진짜로 떨어뜨려서 깨뜨렸다-_-

"(중얼중얼중얼)"
"저 귀신아니니까 자꾸 불경이랑 성경 섞어가면서 중얼대지 좀 마요-_-+"
"...적그리스도는 오고 있어...성경은 진짜였어..."
"저 갑니다?"
"아...아냐...농담이야... ... ... 잠깐 학생은 주민등록증 좀 볼 수 있을까??"
"네? 저 지갑을..."
"아. 맞다. 내가 여기가 계산한다고 그럴까봐 지갑 집에 두고 오랬는데;;;;"
"안돼. 그럼. 봐. 이게 대학생이야? 고등학생이지??"
"저 21살이예요."
"에헤이~"
"에헤이~"
사장님이랑 내 입에서 동시에 그건 아니지~하며 탄식이 나왔다.
나는 끽해봐야 대학교 1학년 20살로, 사장님은 진짜로 고2정도로 봤다고 한다.

"그래. 이 친구, 저기 사거리 뒤에 편의점 옆에 감자탕집에서 알바하거든요?"
"...CC감자탕???"
"어. 그때 사장님이랑 같이 가서 김치찜 먹은 그 집. 거기 알바하니까 한번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전화번호 있죠?"
"어. 있지. 지금 거기 누가 일하시나...아. 전씨...아. 여보세요. 네. 전여사. 거기...학생 이름이 뭐지?...네. D학생이요....진짜 21살이야? 아. 그래. 알았어요. 아니, 여기왔는데 주민증이 없다니까...전여사가 말하면 맞겠지. 알았어요. 다음에 또 밥먹으러 갈께."

사장님은 OK. 인정!!!이라는 듯이 엄지를 촥 들어보였고, 
나는 됐고 사장님이 우리 지체시켰으니, 양심껏 내놔주세요. 하고 손을 휘휘 저었다.

"저기..."
"왜?"
생전 이 가게에서 처음 받아보는 웰컴드링크로 나온 샹그리아 흉내만 낸 달짝지근한 과실주를 마시고 있자니, 
그 동그란 눈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여기 비싼데 아니예요?"
"어. 비싸. 나도 진짜 가끔 와. 양심없이 비싸거든. 여기 사장님은 김창렬한테 사과해야돼. 이 사장님이 먹어야 할 욕을 김창렬이 대신 먹잖아."
"그치만, 제가 사드릴려고..."
슬쩍 주머니를 보니, 오늘은 커터칼이 없고 얼핏 카드가 보인다. 체크카드렸다.
"스미마센~익스큐즈미~"
나는 그 애의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카드를 쏙 빼내었다.
"어? 어? 어?"
"사장님. 이 카드 보관했다가 내 카드로 결제끝나고 돌려줘요."
"분부대로."
사장님은 진짜로 카드를 계산대에 넣어버렸다.
"왜 울상이야. 술사주라며. 요고요고 거짓부렁이일세. 사주라해놓고 사줄라그러고."
"그치만..."
이 아이는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워낙에 가격대가 좀 있는 가게라, 몇 없는 손님들조차 꽤 근사하게 차려입고 앉아있었는데, 
자기는 청바지에 후드티차림이라 자신감을 상실한 모양이었다.
"...사장님."
"왜?"
"우리 저기 안쪽 내실 좀 씁시다."
"나랑 마주봐야 서비스가..."
내가 눈짓으로 그 애를 가르키자, 사장님은 오케이. 하고는 우리를 내실...은 아니고, 딱 하나있는 칸막이 있는 자리로 안내해줬다.

잠시 후, 사장님은 내가 신경 좀 썻어. 하고, 양주와 안주를 들고 왔다.

움찔.

양주병을 보자, 그 아이가 움찔한다.
몇달 전, 짙은 화장과 화려한 홀복.

"아이참~사장님~가볍게 먹는다니까요~양주말고 와인줘요. 와인. 칠레꺼 싸고 좋은거 있잖아요. FTA 발효한지 10년이 넘었어~."
"너가 언제부터 와인먹었다고 그래-_-"
"오늘은 와인이야. 와인줘요. 혹시 좋아하는 와인있어?"
"네?...아...아뇨..."
"사장님. 추천해주세요. 너무 헤비한거 말고요. 가볍게 마실만한 걸로."
"어디...그래...좋은거 있다."



뭐야. 이거 뭐 이렇게 달아???하고 물리려는데,
"와~맛있다."하고 테이스팅하라고 따라준걸 주욱 마셔버렸다.
그냥 그렇게 마시기로 했다.

사장님은 맨날 남정네들이랑 오는 내가 여자랑 온게 신기하기도 하고, 
일단 남자보다는 여자손님한테 훠어어어어얼씬 잘해주는 양반이기도 해서, 
우리는 이런저런 비싼 안주들을 맛보시라고 한점씩 계속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나랑 나이차이가 두 자리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우리는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은 대화는 아니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다가, 바다 너머 외국이야기를 하다가, 진짜 달 뒷면에 외계인기지가 있는게 아닌가, 나는 콩송편 안좋아해, 엑??? 그게 맛있다고??? 헐~ 차라리 민트초코를 먹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왜요?"
"무슨 캐비어씩이낰ㅋㅋㅋㅋㅋㅋ"
"네? 이게 그 캐비어예요?"
"응. 이거 안되겠네. 사장님~아니아니~마스터어~"
"왜 그러십니까?"
"이러시면 곤란해요. 카드값 간당간당한데 지갑을 열게 만들어. 한병 더 줘요."
그렇게 한 병을 더 마셨다. 
나에게 와인이란 설탕함유된 싸구려 과일주스나 같은지라, 별로 취하지도 않았고, 그 애는 반병쯤에 상당히 취해버렸다.

"XX씨."
"네?"
그 애를 부축하고 계산을 하는데, 사장님은 안주값은 뺄께.라며 술값만 계산하고, 그 애의 체크카드를 꺼내주었다.
"그러지마라."
"뭘???...하???"
"진짜 그러지 마라."
"취소하고 60개월 할부로 해줘요. 그걸로 한달에 한번씩 로또 사세요."

사장님은 상가입구까지 나와서 우리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며 배웅해주었다.
걱정도 팔자였다.



결국 중간에 부축하는걸 포기하고 업고가긴 했지만, 그 언덕길을 거의 네발로 기어가며 그 애의 집 앞으로 왔다.
"아이고 삭신이야...허억허억...운동부족이 아녀 이건...나이가 문제지...저기요. D양. 들어가서 자. 입돌아가. 추워. 내일 눈온대."
"...가기 싫어..."
"어?"
"여기 들어가기 싫어...춥고..."
"까불지마. 난 더워죽겠어."
"아저씨...아니...오빠 등 따듯했는데..."
"아? 깨있었어??? 그럼 언덕길 올라갈때는 좀 일어났어야지."
"미안해요."
"미안하면 들어가서 자라. 나도 가서 좀 자자."

그 아이는 꾸물거리며, 몇번이고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들어갔다.
나는 그애의 반지하방 불이 켜지고...한 20분 뒤에 꺼지는 걸 보고 들어왔다.




"어. 오늘 김과장 못 온다니까, 그 건은 내가 발표할ㄲ....으아이씨 깜짝아!!!! 야!!!! 오늘 나오지 마라니까!!!!!"
"여~오와요 고자이마스. 좋은 아침입니다."
"너 임마. 여자랑 술마신다며? 애는? 조카는 어딨어?"
"악셀레이터 그만 밟아요. 야. 최대리야. 출력물주라."




쉬기는 개뿔...사우나에서 뜨신 물로 씻고, 고대로 택시타고 출근했다.




"아."
"왜요?"
"바람막이."
"바람막이가 왜요?"
"니가 발주 잘못해서 하나 더 받은 바람막이."
"아...좀 그거 고만 좀..."
"못 받았어."
"예? 하나 더 받아갔잖아요."

"아니 너 말고. 그 애."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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