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우린 왜 안되는 걸까...?”
그녀의 입에서 어디로 울려퍼지는지 알 수 없는 말이 새어나왔다.
“우리만 사랑하면 되잖아... 자식 같은 건 필요없어.”
땅에 닿아 녹아가던 눈이 점점 쌓여가고, 간혹 떨어지는 물방울이 눈의 일부를 녹였다.
“대부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는 의외로 차분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태도는 그녀에게 더 큰 혼란을 야기 하고 있었다.
“이해...해달라고 한적도....없다고...”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속삭였다.
“그래도 내가 널 사랑하는데 변함이 없고, 네가 날 사랑하는데 변함이 없잖아. 세상이 우릴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세상을 따를 필요는 없어.”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린 우리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돼.”
그녀의 마음속엔 다시금, 오래전부터 잊고 있었던 안도감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녀의 발치엔 눈물에도 미처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었다.
며칠 뒤, 그와 그녀는 데이트를 나왔다. 그녀는 그의 팔에 팔짱도 껴보고, 그의 손도 잡아보았다. 주변은 아무런 감흥없이 그들을 지나쳐갔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갔다. 매우 일상적인 일들을 즐겼다.
“어? 둘이 완전 사이좋은데!”
우연히 만난 그의 친구들도 웃으며 반겨 줬다. 그렇게 평범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조용한 정적속에 걷던 그와 그녀 사이의 회고적 침묵을 먼저 깬건 그녀였다.
“오늘, 정말 아무 문제도 없었네.”
그도 마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듯 뜸들이지 않고,
“그러게... ‘사이좋아’ 보인다는 말도 듣고 말야.”
라고 대답해 주었다.
“정말 다행이야.”
그녀의 말 끝에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그 한숨의 의미가 뭔지 아는듯, 조용히 그녀의 코트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하고 싶어도 말 할 수 없는, 고민으로 간직해서도 안 될 고민이, 맞잡은 손을 통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1년 후’
그는 그의 부모님께 그녀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도 그녀의 부모님께 그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와 그녀는 함께 살아도 된다는 승낙을 받았다. 그는 이제 막 취직한 새내기 직장인이었고, 그녀는 대학생활의 막바지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그와 그녀가 장만한 작은 집은 그의 직장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고, 그녀의 대학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둘의 생활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껴주고 서로 챙겨준다. 그가 아침을 차려두고 나가면, 그녀는 항상 그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준비한다. 가끔은 그녀의 학교 친구들이 찾아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같은 과 친구들인데, 잠깐 빌릴게 있어서요.”
형식적인, 그러나 예의상 필수적인 느낌의 인사일 뿐이지만, 다른 어떤것도 가미되어있지 않았다.
그의 회사 동료들이 찾아와서도, 인사하며 여담을 주고 받는게 전부였다.
그녀와 그의 생활은, 대다수가 표방하고 지향하는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의 친한 친구가 찾아와 그녀에게 물었다.
“나한테 너하고 같이 사는 그 사람 소개시켜 줄 수 있어? 나 사실 그 사람 좋아해.”
그녀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이루 말 할 수 없는 질투심과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표출할 수 없었다.
“아... 그 사람, 다른 여자 있어.”
그녀는 이렇게 둘러댔다. 그녀의 머릿속에 이런 식으로 둘러댔던 오래전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고민거리... 그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퇴근하고 들어오는 그를 붙잡고 다시 예전과 같은 질문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왜 우린 안 되는 거지? 왜 우리의 사랑은 비난 받는 거냐고!! 아무에게도 우리의 사랑을 지켜봐달라고 한적 없어. 그런데..... 도대체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우리를 비난 하는 거야...?”
그녀의 고함소리는 목메인 소리로 변했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가 그녀를 감싸 안아주며 말했다.
“우린 더 일찍 만나야 했어.... 더 일찍 만나서 서로에게 다른 방식의 사랑을 나눴어야 했는데...”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와 그는 늦게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서로에 대한 부재와 실재의 여부는 그들의 권한 외의 일이었다. 그도, 그녀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그와 그녀의 사정을 모를뿐더러, 이런 상황에 처해진 사람도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비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있을 거 다 알고 있었지만... 항상 준비한다고 되는건 아닌가봐. 미안해...”
그녀가 그녀만큼 힘들어 할 그를 위해 마음을 추스르고, 그에게 가벼운 키스를 했다.
“아니야. 언제든지 힘든 일은 이렇게 말해줘. 같이 나누면서 풀어가기로 했잖아. 우리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우리 둘 뿐이야.”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평생을 동생으로 살아도 사랑할게. 오빠”
그녀가 그에게 그녀의 사랑을 다시 되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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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후기
평소에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근친사랑에 대한 소설을 쓰게되었습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지탄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이 근친간의 사랑입니다만,
꼭 근친간의 사랑이라고 더럽고 불온전한것만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유년기나 성장기에 서로 같이 생활하지 않았다면 서로를 가족이상의 이성으로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한 소설입니다.
꼭 지지 하기보다는 정말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가족이라는 끊을 수 없는 끈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혹은 사랑을 숨겨야만 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 싶다는 취지로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