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옷을 입었다
장마가 길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서
함께 젖어갔었던 모습들을 떠올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감정들이 문득 찾아 왔듯이
간신히 스며들었을 차가움이 피부에 닿았다
빗 속에서 우리는 함께 걸었다
나와 그녀의 여름은 잠깐이지만 강렬했고
급하게 다가온 행복은 예정된 결말로 안내하고
걸음마다 길들여지게 될 차가움이 익숙한 듯
내가 떠올렸던 그녀의 건강한 생각들과 연약한 몸은
쉽게 마르지도 못했다
약속된 시간은 젖은 옷을 입고 외출을 하게 만든다
서둘러 걸어갈 자리에는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표정들이 기록되었을 장면들을 모른척한다
시간은 천천히 젖을 옷을 말려 갈 것이고
서서히 잊어갈 줄 알았던 그리움은
달이 떠난 자리를 채워간 바다처럼 천천히
마른 가슴을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