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투자마인드의 모델을 노자에서 찾습니다.
그러니까... 무위(無爲) 무슨 일을 억지로 하지 말고 순리에 따라서 마음을 비우고 억지행동을 하지 않는다.
남의 아래에 처신하고 만족할줄 안다....예 그러니까 남이 팔고 싶어 애를 쓰는 종목을 사줄수 있는지 살피고 남이 사고 싶어 얘쓰는 종목을 팔아줘도 되는지 보아서 양보하고 자기는 뒷쪽에 아랫쪽에 처신한다.
예, 이 철학을 그대로 실천한 이를 저는 경주 최부자의 사례에서 봅니다. 이 사례에는 요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이 관계되어 있어 2-3년 전에 올린 글을 ..10부작인데 모아서 한꺼번에 첨부합니다.
이러한 사안에서 옳바른 판단의 윤리감각을 개발할수 없다면 ...예 사오정 공주소리를 들어도 어쩔수 없을 것입니다.
최진립 장군 이야기
1편
kbs프로그램에서 다룬건데 자못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야기가 기니까 좀 끊어서 다뤄보겠습니다. 주식과 무슨 관계냐구요?
관계가 있는 것이 돈버는 법에 시사하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음...때는 임진왜란 이 끝나고 흉흉한 사회분위기 속의 조선입니다.
최진립 장군은 애초부터 돈이 많은 집안이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부자가 된 것은 이시기입니다.
최장군은 경주사람으로 임진왜란때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가 종전을 맏게 됩니다.
이 때는 전쟁으로 일할수 있는 사람의 태반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전체 농업생산 기반이 무너져 내렸고 일할사람이 없어지자 땅도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농민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부랑민, 즉 유민이 되어갔고. 이제 농사지울수도 없는
땅들은 그저 곡식 두어말하고 바꿔버리고 있었습니다.
최진립장군은 거저 버리다 시피하는...요즘 주식하고 똑같죠?
땅들을 나오는대로 사들입니다.
일할사람이 없는데 어쩌자고 사들인 걸까요?
일단 많은 땅을 확보하고 나자
최진립은 그당시로는 새로운 농법을 받아들입니다.
바로 이앙법입니다. 모내기를 한다는 거지요.하지만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는 관개시설의 확충이
필요하지요.
최장군은 가진 재산으로 땅을 사들일 뿐 아니라 사람들을 사서 수로를 건설합니다.
이미 뉴딜정책을 경주지방에서 시행한 거지요?
이앙법이 시행되자 일은 반으로 줄었고 이제 부족한 인력으로도 농사를 지을수 있게 됩니다.
최장군은 많은 농지와 수확량 뿐 아니라 인력까지 자신의 농지주변으로 관계맺게 됩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거지요?
2편
일이 반으로 줄었다는 표현은 정확하게는 이모작을 하게되어 생산량이 두배가 되었다가 맞습니다.
즉 모내기를 하기 전까지 논에 보리를 심어 전에는 쌀만 수확하던 것을 보리와 쌀을 한해에 모두 수확하기
때문에 인력당 수확량이 늘었다는 말이지요.
최장군은 일약 만석군의 지위에 오르고 경주 최부자라는 별칭을 얻게됩니다.
최장군이 한 특별한 또하나의
일은 일꾼 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경영방식을 도입한 것입니다. 일정한 토지를 떼어
주어 일의 성과가 큰사람에게 혜택을 부여하기도 하고 공동경작지를 두어 일꾼들이
공동의 행사나 필요한 일에 사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일은 마름을 없애고 소작인들과 직접계약을 하는 방식을 취한 겁니다.
직접 계약을 하니 마름의 횡포를 없앨 수 있을 뿐 더러 소작인 개개인의 특성과 형편을 살필수
있어 소작인과의 일체감이 증진되고 생산성 역시 매우 높아졌고
최장군은 이익이 나면 계속 재산을 불려갈 수 있었습니다.
계속 ~
(재미있으면 추천을 눌러주세요. 그래야 계속 쓸 힘이나지요~)
3편
자손까지 번성하여 그야말로 만복을 누리던 최장군에게 다시 닥친 시련은
병자호란이었습니다. 용골대의 위용에 눌려 지리멸렬하던 조선군과 임진왜란과 달리
의병도 활발하지 못한 병자호란인지라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혀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합니다.
최진립은 이미 노인이 되어있었지만 아들들에게 재산의 관리를 맏긴채 노구를 이끌고
결과가 뻔한 의병의 길로 다시 나섭니다.
최진립은 남한산성 외곽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나중에 최진립은 무관으로서는
최고의 칭호와 대우를 받으며 그의 사당을 경주 용산서원에 건립하고 위패를 모시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정신과 재산은 그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최부자 집은 계속적인 부와 명예- 최진립의 헌신에 기인한-를 누리며
그의 사당에는 당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현판을 쓰고 참배합니다.
이러한 부자의 지위는 삼대가 아니라 7대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부자가 되는데 여기에는 남다른 주변과 화합하는
최진립의 신념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한 실례로 한번은 화적패가 집안에 들어 재물과 인명에 큰 타격을 가합니다.
어려움없이 부자로만 살던 최진립의 후손은 이일을 계기로
큰 각성을 하게됩니다.
"그 도적들은 남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며 소작인들이다.
그들이 배가 고파서 이웃집 담을 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보다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무터 최장군의 후손은 과부나 고아, 질병자와 같이 집에 우환이 있느 집안에는
소작료를 면제해주거나 생활비를 보조해 줍니다.
그리고 흉작에는 가산을 털어 구휼에 나서지요.
요즘말로 하면 사회보장 정책을 시행한 겁니다.
또 추천들어오면 계속 쓰겠습니다.
4편
추천이 들어왔으니 또...
그러니까 사회보장의 효시는 20세기들어 비스마르크가 아니라
이미 300여년전에 최부자집에서 시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탄탄하게 내려오던 최부자집의 본격적인 시련은 일제강점기가 됩니다.
이 때 최진립의 후손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나라가 망했는데 부자가 무슨 소용이며
과연 부자가 할일이 무엇인가...
최부자집의 어떤아들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감옥에서 옥사하기도 하고 어떤 아들은 재산을 관리하며
독립자금을 지원합니다.
일제는 그런 최부자집을 의혹의 눈초리로 감시하고 밀정이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일도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친지를 통해서 독립자금으 전달하기는 했지만 그게 배달사고 없이 무사히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 되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걸 의심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전달되겠지 하는 마음에
무작정 자금을 보냅니다.
잘 전달 되었는지 궁금하세요?
그럼 추천을 눌러주세요 그러면 계속 쓰겠습니다.~
5편
드디어 해방이 되고...
이제 해방의 감격을 실감하기 전 최장군의 후손은 김구선생의 급한 호출을 받습니다.
김구 선생은 귀국하여 다른 일을 제쳐놓고 최장군의 후손을 찾은거지요.
최장군의 후손을 맞은 김구 선생은 장부를 내놓고 장부확인을 합니다.
여기 이날 이날 받은 돈들이 얼마얼마인데 혹시 누락된 것이 없느냐
있으면 말씀하시고 보내주신돈은 약속드린 바와 같이 해방이 되었으니 새정부에서
발행할 화폐로 갚아드리겠다. 보내 주신 자금은 우리 임시정부에서 정말 요긴하게 썼고
독립운동에 큰 힘이 되었다....
최장군의 후손은 항목을 일일이 대조하여 확인 한 후 거기에 한건의 배달사고도 없었음을
확인하고 배달을 해준 이미 고인이 된 친지가 묻힌 곳을 향하여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고인인 된 그 친지를 회상하며 통곡을 합니다.
....
아마도 그대목에서 시청자들도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해방은 되었다고 하지만 나라는 어수선하고
민족의 자긍심은 땅에 떨어져있고
국민들은 여전히 가난과 비참 속에 빠져있고
나라는 친일세력이 반공과 미군정에 기대어 다시 득세하는 참담한 모습입니다.
이미 나라일을 내일로 생각하게된 최부자 후손은 다시한번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이 최부자의 할 일은 무엇인가요?
궁금하시면 또 추천~
6편
식민지 백성 출신의 가난과 무능이라는 딱지를 띠고
잘난 백성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것은 교육이었습니다.
한명이라도 데려다 가르쳐서 인재를 만들면 그 넘이 산업도 일으키고 돈도벌고 좋은 정치도 하고
해서 이 질곡을 벗어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장군의 후손은 영남지역의 대처인 대구로 나아가
남은 재산을 털어서 대학교를 세우고 이름을 대구대학교라고 짓습니다.
그리고는 가난하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교육을 시키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돈벌이를 하는 대학이 아니라
돈이 없는 학생들을 주로 장학사업으로 가르치는 학교로서 학교의 운영비는 수업료로 주로 충당하지 않고
최부자의 재산으로 충당합니다.
이제 우리가 알고있는 사실들에도 점점 다가오죠?
최부자는 자신의 전재산을 자기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을 포기하고
교육사업에 모드 쏟아붓습니다.
그만큼 나라의 현실이 참담하고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던 겁니다.
땅을 팔아서 학교를 짓고 땅을 팔아 교수 월급을 주고
땅을 팔아서 학생 장학금을 주고....
이렇게 말입니다.
최진립 장군의 7대에 걸친 대부호의 터전은 이렇게
나라의 교육사업에 아낌없이 쏟아부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궁금하시면 추천을...
7편
앗싸~ 추천 많이 들어온다.~
레드켄들님이 바쁘신 것 같으니까 빨리 이어서..
최장군 후손중 이제 마지막 부자...이 분의 후손들은 더이상 부자가 아닙니다.
이미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다 투척했기 때문입니다.
최부자가 아무리 대부호이긴 하지만 대학교 하나에 무한정 퍼부는 자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해방 15년정도가 된 60년대 초반에는 이미 전재산이 다 쏟아부운 상태이고 최부자는 자신의 선산까지
남김 없이 학교에 투입합니다.
근데 이제 재산이 다 동이 났으니 이제 어쩌지요?
이제부터는 수업료를 제대로 받아야 할까요?
더이상 장학사업을 하지 말까요?
그래야 대학교 운영이라도 계속 하지요.
최부자는 자신에게 더이상의 재산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이것은 중단할 수 없는 사업이다...아직도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좋은 정치도 없고 산업도 없고...
최부자는 좋은 생각을 해냅니다.
대구에는 나보다 더 돈많은 사람이 있다.
그사람에게 내 재산을 주자 그럼 그사람은 돈이 더 많으니까
자기돈을 더 넣어서 내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부자는 그 부자를 찾아갑니다.
내 전재산을 붓어놓은 이 학교를 당신에게 그냥 주겠다.
그래서 당신이 돈벌이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당신돈을 더 넣어 가난한 인재를 교육시켜달라.
다시말하지만 학교의 가격은 0원이다.
그 부자가 누구냐구요?
알고 싶이시면 ...아시잖아요. 추천~
8편
레드켄들 님 독촉으로...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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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
자꾸 천기가 누설되는 것 같아 속도를 냅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 개발시대의 총아인 삼성 재벌의 성장동력은 최부자의 재산으로부터 비롯된거지요.
최부자가 모은 재산을 똘똘뭉쳐 대구대학교로 만들어 이병철에게 주었더니 이병철이 그걸 ....예
쉽게 말하지요 박정힙니다. 에게 주었더니 박정희가 갖은 이권과 특혜를 그 답례로 주는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60년대와 지금의 화폐가치는 약 10만배 차이가 납니다. 그당시 특혜는 각종사업의 독점권..사카린이나 설탕 수입권 같은거죠? 뿐 아니라 은행 대출을 독점하는 특혜대출 같은게 있었는데 그냥 대출받아서 땅을 사거나 현물을 사거나 하고 있으면 특별한 재주부리지 않아도 돈가치가 1/100000배로 주니까 물건 값이 그만큼 뛰고
국민의 재산은 그 비율대로 대출자의 이익으로 발생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국민의 부는 결정적으로 삼성 그룹에 쏠리게 되는데 거기서 트리거 역활을 한 사건이
최부자의 재산 ...영남대학교의 증여라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생각할 때 록펠러 재단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지요? 가진자들이 솔선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공동체 가치의 기반을 형성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에 한국의 록펠러는 이렇게 천민 자본주의자와 권력자에게 깔아뭉게 집니다.
이렇게 전달된 재산은 박정희 소장앞으로 명의 이전된 후 평생을 지난 후에 그의 상속자
박근혜에게 상속됩니다.
근데 이게 좀 문제가 된 적이 있지요? 어떻게 박근혜가 영남대학교의 소유자일 수 있는가?
젊은 박정희 소장....가난한 농민의 아들...봉급 이외는 소득이 없었던... 그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마자 대 재산인 영남대학교의 소유자가 된 내력을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박근혜는 황급히 자신의 권리를 부정하고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래서 이제 영남대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나요...
예 궁금하시면 또 추천~
10편
이제 이야기가 끝나갑니다.
레드 켄들님땜에 정신이 없네요.
근대 이 이야기가 생소하시죠? 저 역시 kbs프로를 보고 깜짝 놀랐고 충격받았습니다.
최진립 장군은 이조시대 무관으로서 이순신 장군과 동급의 추앙을 받던 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신격화 되고 숭배받는 반면에 최진립 장군의 이름은 일정의 터부가 되어 철저히
무시되고 묻혀버리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 아시겠지요? 최장군의 이름이 떠오르면 그 반대편에 있던 이병철과 박정희가 한꺼번에
땅에 추락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잔다르크이자 한국의 비스마르크 한국의 록펠러인 최진립이라는 이름은 묻혀버리고
그의 위패를 모신 용산서원은
인적없는 황량한 모습으로 잡초에 묻혀갑니다.
아! 영남대학교 애기해 주기로 했죠?
개인적으로 영남대학교에 교편잡고 있는 친구가 몇 있어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전혀 모른다더군요.....
앞에서 최부자는 자신의 선산까지 모두 대구대학교에 넣었다고 말씀드렸죠?
어느날 학교 재산을 살펴보던 영남대 행정 책임자는 연고를 알수 없는...혹은 부정하고 싶은
묘지들이 부지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게...누구묘지?...누구 묘겠습니까? 바로 영남대학교의 전신 대구대학교의 설립자 최부자
선친들의 묘소입니다. 최부자 조상묘...최진립 장군 이하 후손들의 묘 말입니다.
영남대학교는 ...이 알수 없는... 또는 모르는 것으로 하고 싶은 묘들을 이장해 가라고
공고를 합니다. 예... 배은망덕도 유 분수고 아비를 부정하는 후레자식이나 할 소행이지요.
하지만 영남대학교는 실정법상으로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지금은 이런 자들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맏겨서 공부랍시고 시키고 있습니다.
....
이야기의 출발은 최진립 장군의 지혜를 배워서 지금의 경제 상황에 응용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흥분을 하게 되었나 봅니다.
모두 명절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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