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꽃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여름동안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궈가던 꽃은 가을이 되면 열매를 위해 따뜻함을 희
생한다. 뿌리도 그대로고 줄기도 그대로고 가지도 그대론 데 꽃만은 이다지도 슬프게 진다. 숭고한 희생의 슬픈 기쁨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 꽃잎을 흩
날리며 떨어지는 꽃은 잡을 수 없다. 그 슬픔을 잎과 열매는 아는 것 일까. 가을이 깊어지면 잎과 열매는 꽃의 피로 예쁘게 물든 자신을 내려다보며 몸
을 뒤튼다. 갑자기 떨어져 버린 그녀를 바라보며 붉게 물든 나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내가 절규한 것처럼. 아직 따뜻한 꽃의 잎사귀를 꽉 움켜쥔다. 그
래, 넌 이제 다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가장 사랑스럽던 순간을 평생 살아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난 널 다신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넌 이
미 떨어진 꽃이니까. 그래, 떨어진 꽃아, 너의 희생으로 붉게 물든 열매가 언젠가는 떨어져버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나. 아, 길가엔 자줏빛 꽃이 가
득하고 아침 해는 너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너는 이제 대답할 수 없구나. 꽃 사이로 난 계단이 보인다.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듯하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그래, 문이 있다. 모든 계단의 끝엔 문이 있다. 날듯 이 -문으로 뛰어내리듯이- 계단을 올랐다. 문고리를 붙잡고 문에 슬며시 몸을 기댄다. 차
가운 금속 문은 나에게 쌀쌀한 가을같은 현실을 일깨워 주려는 듯- 나에게 기대지 않는다. 문고리를 돌리려는 듯 내 손이 떨려온다. 열릴 듯 말듯-. 나
는 꽃의 온기를 문에 불어넣으려는 듯이, 문이 아니라면 문고리만이라도 불어 넣으려는 듯이- 하염없이 그렇게 잡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문에 기대어
있었고- 여전히 문은 나에게 기대지 않았다.
화산(5.18 추모시)
마그마와 용암들.
곳곳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들.
후두둑 떨어지는 붉고 허연 것들이
천지에 가득하고
화아악 빛나는 신념의 깃대가
하나둘 쓰러진다.
마그마가 아닌 용암이 된 자들.
이제는 굳어져 그 자리에.
겨울, 어느날 밤.
언제나 포근한 함박눈을
짓밟는 발자국들.
굶주린 이리처럼 떠돌다
들려온
떨어질듯 말듯한 촛농같던
그 목소리.
떨어지는 그것은
네것이냐 내것이냐.
가로등 아래서
서늘한 불빛이 뱀처럼 똬리를 튼
이 도시에
별도 없이 달만이 저 하늘에서
태양을 끌어내린다.
반딧불보다 따가운 작은 태양 아래서
걷고 있을때
문득 불빛이 나의 뺨을 스친다.
파리의 손버릇을 한 채
두 손을 뺨에 갖다댄다.
그러나 더이상 내 손에는 온기가 남아있질 않다.
천 국
내 마음은 이리도 고요한 데
푸르던 하늘은 붉게 물들어 가고
저 먼 바다에는 오늘도 풍랑이 불어오는 구나.
흰 구름에 둘러 쌓인
저 허연 새는
지 몸이 어떤지 알까.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붉게 물든 나는
지 몸이 어떤지 알까.
내 육신은 스러져도
내 정신은 높고 높은 그 곳
살아생전엔 갈 수 없는 그 곳
죽음이 머무르는 곳
영혼이 탄생하고 죽어가는 그 곳
그 곳으로 한 없이 나아간다.
그리고 주제 써놓는 것을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ㅎ
낙화는 그리움+일탈이구요
화산은 그리움,
겨울, 어느 날 밤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일탈,
가로등 아래서는 그리움,
천국은 일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