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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사태와 김재규
게시물ID : history_65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춘풍설
추천 : 3
조회수 : 210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11/29 19:46:52

얼마전 박근혜가 "흉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써보았습니다.

 

72년 유신헌법이 만들어지고 사회, 경제, 정치적모순이 극심하게 달하던때 79년 10월 26일 인간 박정희가 총탄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당시 극심한 국가적 모순으로 인해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박정희 정권은 위기에 치달았습니다. 당시 차지철이 했던말은 명언아닌 명언이지요.

 

"캄보디아에서도 3백만을 죽였다는데 우리가 1, 2백만명 정도 죽이는게 대수겠냐" 이런 미친개소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극심한 사회적 모순속에 박정희의 독재는 지속되었고 결국 극심한 마찰로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암살했습니다.

 

이 암살한 경위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1. 권력다툼

2. 미국과의 갈등

3. 민주화의 갈망

4.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살해


이렇게 존재합니다. 몇개 더 있지만 굵직한걸로 뽑아보았습니다.


권력 다툼은 다들 알다시피 차지철과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를 암살함으로써 차지철에게 죄를 뒤집어 쓰고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였지요.

 

미국과의 갈등은 당시 박정희가 미국과 사이가 안좋아 미국의 사주를 받고서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내용인데. 김진명의 소설 1026에서는 이 설을 채택하여 쓴 소설입니다. 하지만 떡밥은 떡밥일 뿐이지요.

 

민주화의 갈망은 김재규가 박정희의 통치방식이 질려 박정희를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김재규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만... 중앙정보부 수장이 이런말을 했다는거 자체가 재밌지요.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살해. 이 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높습니다. 차지철이 김재규보다 높은데 김재규를 무시하고 다녀 분노에 의해 우발적으로 쏘았다는것이지요. 박정희와 김재규는 육사 동기이고 예비역 중장인데 차지철은 육군 중령으로 제대하였습니다. 이런 계급차이에도 차지철은 김재규를 무시하고 다녀 김재규가 "차지철! 이새끼 너 건방져!" 라는 말과함께 죽였다는 것입니다. 또 이 설이 유력한 이유는 김재규가 당시 자신의 손안에 있던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이동했다는것이 분노에 의해 우발적 살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술자리 전부터 김재규가 심복들에게 박정희를 죽이겠다고 말하였고 끝난후에 "난 한다면 하는 사람" 이라고 말해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살해라고 보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에는 민주화의 갈망과 분노에 의한 우발적 살해설이 연계되어 가장 설득력있는 설이 되었습니다. 아마 김재규가 부마 항쟁이 일어나서 깨달음을 얻고 박정희를 암살했을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것입니다. 아마도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았으면 부산 마산지역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처럼 됬을수도 있었을것입니다.

 

제 생각에도 여러가지 사회의 복합적 모순과 차지철과의 갈등 그리고 부마항쟁이 섞여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게 만든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만약이 없지만,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고 육군본부가아닌 중앙정보부로 갔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것입니다.

 

정보은폐조작이 가능한 중앙정보부로가서 차지철에게 죄를 뒤집어쓰고 자신이 정권을 이양받았다면 지금과 다른 큰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육군 본부로 갔기에 결국 민주정권이 들어서지 않고 1212사태가 일어나 또다시 군부 정권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는것이 씁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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