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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4(자작-과거)
게시물ID : readers_42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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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2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1/26 22:57:59

  혜주는 유령을 보았다.

아니 귀신이라고 해야 할까.

 혜주는 언제나 체육시간이면 배가 아팠다.

혜주는 달리기를 할 때면 허벅지 살이 비벼지곤 했다.

언니는 괜찮다며 그거 다 스무 살 넘으면 빠진다고 말했지만, 언니, 혜선 언니는 글쎄, 태어날 때부터 언니는 날씬했잖아.

혜주는 오늘도 배가 아프다.

 -혜주야, 괜찮아? 아파 보여.

 “응, 생리통.”

 -나, 약 있는데 줄까?

 “괜찮아, 고마워.”

 혜주는 아직 생리 때가 아니다.

생리 때면 혜주는 얼굴이 붓는다. 오늘은 괜찮아. 이 정도면 양호해.

 혜주는 혜선 언니의 다이어트가 생각이 난다.

언니는 어느 여름날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긴 검은 생머리로 하얗게 점점 더 말라갔다.

51킬로이던 혜선 언니는 어느새 46킬로까지 몸무게가 떨어졌다.

혜주는 그런 혜선 언니를 보면서 81킬로로 몸무게가 늘고 있었다. 괜찮아 성장기니까 괜찮아. 괜찮아. 스무 살이 넘으면 다 빠질 거야. 괜찮아 그게 다 키 크려고 그러는 거야. 괜찮아.

 혜주는 내년에 스무 살이 된다.

 “어쩌란 거야.”

 -응, 뭐라고?

 “아냐,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괜찮아, 열 있는 거 아냐?

 “아냐. 괜찮아.”

 정말 머리가 아파온다. 아니, 말하자면 머리카락이 아파온다. 혜주의 곱실거리고 칙칙한 머리카락.

 혜선 언니는 긴 머리가 정말 잘 어울렸다.

혜선 언니는 혜주가 언니처럼 머리를 묶으려고 매일같이 허비했던 거울 앞의 두 시간을 모른다.

 그러니까 어느 날 언니가 그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돌아온 날, 혜주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언니는 알리가 없다.

 그러니까 언니는 같이 울면서 괜찮다고, 스무 살이 지나면 다 괜찮을 거라고 힘내자고 그렇게 밖에 말 할 수가 없었겠지.

 언니는 점점 더 말라갔다. 언니는 점점 더 하얗게 변했다.

 혜주만이 밤마다 언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니는 소리죽여 그렇게 글씨라도 새겨 넣듯이 울고 있었다.

혜주만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시간에는 혜주만이 밥을 먹었다.

부엌은 언니 방 옆이었다.

 혜주는 갑자기 맹렬하게 배가 고프다.

 -혜주야, 괜찮아?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졌어.

 “안 괜찮아. 세수라도 해야겠어.”

 -같이 가줄게.

 “괜찮아.”

 혜주는 아직도 여드름이 어른어른 번져있는 노리끼리한 자신의 얼굴을 싫어한다. 언니는 정말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언니는 항상 아파보여서 싫다고 했다. 언니는 언제나 자기 피부보다 더 어두운 색깔의 베이스를 사용했다. 혜주는 언니 화장품은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니를 묻고 오던 날, 혜주는 언니 화장품을 몽땅 끌어내 비닐에 싸서 버려 버렸다.

 나에겐 맞지가 않아, 도무지 맞지를 않는 걸 하고 연신 중얼거리며 언니의 옷가지도 모두 싹 다 들어내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언니의 44사이즈 블라우스, 언니의 44사이즈 스커트, 언니의 청바지. 뭐가 또 있지. 언니의 구두, 언젠가 가로수 길에서 맞춤으로 샀던. 언니가 수제품이라며 웃던 가방. 그리고 다른 것은 다 돌려줬지만 그것만은 가지고 싶었다던 ‘그’가 사 줬다던 목걸이.

 혜주는 어지럽다.

 -괜찮아?  

 멀리서 물어본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스무 살이 지나면.

 정말 멀리서 말해준다.

 혜주는 눈물이 났다. 혜주는 언니가 죽었을 때 울지 않았다.

한번 나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생각 없이 흘러나온다.  

 -괜찮아, 정말. 정말 괜찮아.

 혜주는 아직 스무 살이 아니다.


++++++++++++++++++++++++++++++++++++++++


 정석은 우편물을 분류한다.

중대별로 쌓인 그 이야기들.

중요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기껏해야 ‘이제 그만 헤어져.’ 정도겠지.

그따위 편지로 부대 담장을 넘는다. 그따위 편지로 모두가 잠든 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워커끈으로 목을 동여맨다.

 정말이지, 씹던 껌처럼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어.

병신들.

 사랑. 글쎄, 어머니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정석아, 사랑은 그저 지나가는 감정이야."

아버지가 사라진 어머니는 부쩍 늘어난 눈 밑의 주름을 바탕으로 사랑에 대해 말씀 하셨다.

 아마도 어머니는 모르셨을 것이다.

이미 그때부터 정석의 직업은 사랑의 전파자, 호스트였다.

하루하루의 일회용 사랑을 서비스하고, 그 대가를 받는 직업.

정석은 아버지의 또래에 비해 큰 키와 건장한 몸, 그리고 준수한 마스크를 지니고 있었다.

정석은 어머니의 또래에 비해 늘씬한 몸과 고운 피부, 그리고 섬세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처음이 힘들지, 다음부터는 논다고 생각해. 그 년들이 놀리는 것도 니가 잘 받아치면 할만 할 거야.”

 글쎄, 정석이에게는 처음부터 힘들 일이 없는 자리였다.

자신의 용모로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비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어머니.

나라도, 정석은 생각한다. 나라도 전 대의 빚을 갚아야 한다.

나를 밟아줘, 나의 자존심을 끝까지 끌어 내려줘, 나의 처참한, 그리고 유치한 죄책감을 말끔히 탈색해줘.

 처음에는 좋았다.

처음에는 좋았었더랬다.

 하지만, 정석은 연애를 했더랬다.

다시 한번 경아씨.

 글쎄, 정석에게는 어떠한 선택이 남아있었을까.


 주변을 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올라탄 서울역 발 기차가 데려다 주는 새로운 세계.

정석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정석을 본격적인 ‘성인계급’으로 밀어 넣던 선택이었다.

 정석은 이제 서울역에서 입대한 제 34사단 총성부대 우편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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