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그녀'가 있다.
편의상 '그녀'라 불릴 이 여자는 너무 나도 '그녀'라는 단어-영어단어를 일어체로 직 번역한-에 어울리는 공간에 있다
하얀색 반들거리는 정사각형 세라믹 타일이 짐짓 의식하지 못 할 만큼규칙적으로 늘어 서 있고, 그에 합당 하게 멋 없는 반들 거리는 얼굴로세면대며 변기, 색깔에 무척이나 무신경한 수건이 차곡차곡 들어있는 선반 따위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에는 어이 없게도 진 하늘색의 육중한 세탁기가 믿음직 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이 세탁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세탁기 옆의 옅은 복숭아 색의 욕조에 들어 있다.
때를 밀지 아니면 샤워를 하고 일어설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 때를 밀자. 그러고 보니 이제 때를 미는 것도 마지막이네. 그 집은 욕조가 없더라.
'그녀'는 때타올을 찾는다.
내가 때타올을 어디다 뒀더라. 전에 분명히 찜질 방 갈 때 들고 갔었지. 근데 목욕가방이 안보이네. 두고 왔나.
'그녀'는 반쯤 일으킨 몸을 다시 물 속으로 집어 넣는다.
'그녀'는 그다지 끈기 있는 성격이 못 된다.
물은 이미 식어 있다.
'그녀'는 발을 뻗어 수도꼭지를 돌린다. 물은 쏟아지고, 욕조는 다시금따뜻해진다.
'그녀'는 발을 이용해서 물을 멈춘다.
약하게 잠긴 수도꼭지에서는 가늘게 물이 쏟아진다.
'그'이가 이번 달 수도세는 냈던가. 아니 물어볼 세도 없었지.
내가 고지서를 어디다 뒀더라. 그 집은 수도가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역시 너무 급하게 계약한 건 아닌가 몰라.
아니, 그만한 가격에 구할 수 없어, 다른 집은.
그런가. 아냐, 미숙이도 그만하면 괜찮다고 했어. 근데 내가 알 수가 있나.
'그'이가 다 했었는데.
'그녀'는 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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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부터 ‘그’는 한사장의 반질반질한 화상 흉터가 있는 불그스름한 손이 신경 쓰였다.
손으로 빙빙 돌리는 가당치도 않게 얼음이 든 글라스의 위스키라던가-요즘은 돼지도 자본만 있다면 신데렐라에게나 어울릴 듯한 진주 목걸이를 구입 할 수 있는 마법의 시대이니 패스―마치 살리에리라도 울고 갈 듯이 모차르트를 '감동적으로',혹은 '마음 속 깊이 이해한다는 듯' 흥얼거리며 예의 그 손으로 잔을 톡톡 치며 박자를 맞추는 것이며 모두가 기상이변으로 찾아온, 선주가 말하던 '미친개나리'4월 더위에 온통 뒤섞여 ‘그’를 짜증 이상의 분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은 공부도 헐만큼 헌 교양인이고 허니 이 무식쟁이가 그냥 편하게 허는 말을 좀 용서 하게요.”
표준어,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쓰는 언어.
‘그’는 한사장의 손이 자꾸 신경 쓰인다.
“뭐 전에도 설명 했다시피 말입니다, 그것이 뭐 그닥 어렵게 생각 할 것도 없어요. 아, 지금 내 손을 보고 계십니까, 선생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 하하 괜찮아요. 뭐 좀 신기하게 생기긴 헜지, 요 물건이.”
쾅 내려놓는 방금 전까지 내 눈앞 바로 앞에 있었던 저 손, 저 '물건'
“하지만, 하지만 말요. 선생 같은 사람들도 나 겉은 사람들 헌테는, 나 겉은 사람들이 보기엔 당신도 괴물이요.”
글쎄 과연 그럴까?
스위스도 지금 이곳처럼 더울까 갑자기 궁금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