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제 나이대 학생들이 대개 그렇듯 영화와 영화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적도 없었습니다. 광고에 돈을 쏟아부어서 눈에 익게되는 영화나 남들이 많이보는 영화. 딱 그정도의 틀안에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관객이었던 셈이죠. 그러던 어느날 제게 친한 교수님으로부터 당신이 독립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그 영화의 마케팅 홍보를 도와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 왔습니다. 아무리 독립영화라도 영화의 배급과 마케팅을 전적으로 아마추어인 제가 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배급사도 없이 감독과 배우와 대학생 서포터즈들이 배급하는 정말 작은 영화는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아니, 출발하기도 전에 엎어질 위기에 당면했습니다. 저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지만,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아무리 작은 영화라도 언론시사회를 합니다. 기자들에게 시사를 하고 알려질 기회를 얻는 것이죠. 광고예산이 거의 없는 저희같은 영화에게는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왕십리 CGV가 시사회를 위한 대관을 거절해 버린 것이죠. '대관거절이야 영화관 측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거아냐?'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론시사회가 기자들 끼리 공유하는 공식적인 일정이라는 점, 영화관에서 일방적으로 대관을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점에서 제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때문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변은 '이 영화는 안되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 영화에 무엇이 등장하는지가 떠올랐습니다. 세월호. 강정마을. 제가 홍보를 맡은 <미라클 여행기>는 세월호를 타고 강정으로가는 다큐였습니다. 물론, 내용으로 봐서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영화는 전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코드 모두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언급자체가 껄끄러울 수 있겠죠. 결국 CGV는'자체검열'을 통해 정부에 알아서 긴 셈이죠.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영화 존윅과 수십억을 들여 만든 영화1970. 이들 큰 영화의 언론시사시사회 시간 사이에, 같은 장소에서 할 예정이었던 미라클 여행기의 언론시사회는 대관거절로 장소를 옮기게 되면서 기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 결과 언론노출의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죠.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제주도 강정마을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는 저희가 꼭 상영하고 싶고, 상영해야만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번엔 상영자체를 거절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지만 의외로 CGV측에서는 상영관을 열어주더군요. 네, 열어는 줬습니다. 다들 일하러 가시는 오전 9시30분에 한번 80석, 오후4시30분에 티켓 한장에18000원하는 프리미엄석으로 34석 한번 열어주더군요. 그리고 일주일만에 '관객이 안드네요'하고 내리더군요. 저 시간대에 관객이 들어봤자 얼마나 들겠습니까. 아니 오히려 저 시간대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성적은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1월15일에 개봉해서 같은 달 22일에 내린 제주도를 그린영화. 아직까지도 영화의 존재를 아시는 제주도민들로부터 영화 왜 개봉안하냐고 연락이 옵니다. 개봉했습니다. 관람하시기 힘든 시간대에 일.주.일.동안이요.
지금 영화관 가보면 국제시장, 오늘의 연애로 상영관이 도배되어있습니다. 박스오피스 가보면 역시 1,2로 올라있죠. 이 영화들을 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보통, 관객들은 박스오피스1,2위인 영화를 많이 트는게 영리를 목적으로하는 영화관 입장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죠, 저도 이 일을 겪어보지 않은 평범한 관객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껍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인기있는 영화라서 많은 상영관에서 틀어지는지, 많은 상영관에서 틀어져서 인기있는 영화가 되었는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