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들어가기 앞서...
- 이작소는 '이 작품을 소개합니다'의 약자이며 애니메이션과 만화, 라이트노벨, 웹툰 등을 소개 및 추천하는 애게의 행사입니다. -노이탕 님
사실 이작소에 제가 쓰려는 글이 어울리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작소를 소개하는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여러 작품들을 소개 및 추천하는 자리이지 분석하는 자리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고민하긴 했지만 스포를 하지 않고서는 이 작품 속에 숨겨진 진정한 매력들을 제대로 말씀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접하고,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감동을 느끼신 분들. 그리고 두 번째(혹은 세 번째, 네 번째) 정주행을 준비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을 위해 4월은 너의 거짓말을 관통하는 작품들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부족한 글솜씨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아직 안 보셔서 스포당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신 분들은 ‘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 4월은 너의 거짓말’ 리뷰(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animation&no=305469), '한번 더, 4월은 너의 거짓말' 리뷰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animation&no=372566)를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리뷰에는 강력한 스포들이 담겨있습니다. -
(글 쓰기 하루 전에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안 보신 분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서 글을 완전 갈아엎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4월은 너의 거짓말에 대한 ‘소개’는 매 이작소마다 꾸준히 나와 주는 글이기 때문에 제 글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품 3대장 중 하나입니다. 안정적인 작화와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들, 그리고 뛰어난 심리 묘사로 방영 당시에 호평이 끊이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뛰어난 작화와 음악의 연출에는 애니메이션 총 감독인 이시구로 쿄헤이의 공이 큽니다. 신인 감독인데 사람들을 다루는데 재주가 있어 이런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제작과정에서 자신의 성이 차지 않는다 싶은 작화들을 몇몇 이유들을 들며 되돌려 보냈는데,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tva에서 이걸 하나요?’ 라고 되물었다 합니다. 하지만 그런 꼼꼼한 체크 덕분에 이런 명작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뛰어난 심리 묘사는 원작인 만화와 애니메이션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여러 가지 인용구를 사용합니다. 인용이라고 해서 옛날에 어디 멀리 살았던 성현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정확히는 일본 사람들에게) 익숙할만한 인용구들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부터 그러한 인물의 심리묘사에 사용된 작품 3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1. 피너츠(peanuts)
-이미지 출처: http://www.disney.co.kr/channel/program/index.jsp?program_seq=93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애니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 당하기 전에 돌아가주세요!)
초반의 인물 관계 설정에 주로 쓰인 피너츠입니다. 피너츠는 1950년부터 2000년까지 신문 지상에 연재된 4칸 만화입니다. 작품 소개란에 가보니 ‘호기심 많고 용감한 소년, 소녀 그리고 비~글의 이야기~’라고 되어있군요. 이 호기심 많고 용감한 소년(찰리 브라운)이 주인공인데 어째선지 그리고 비~글(스누피)이 더 유명한 만화입니다.(한국 독자들에게는 피너츠 보다는 스누피가 훨씬 더 익숙한 이름일 것입니다.) 최근에 극장판으로도 개봉하여 꽤나 호평을 얻었지요.
피너츠를 읽다보면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훈훈한 만화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찰리 브라운이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하며 생기는 고민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이 이 만화의 관람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만한 명언들이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어느 장면에서 나왔는지는 제가 찾을 필요가 없이 엔딩 영상에 수록해두었네요.)
“해도가 없는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 법!” -스누피
상당히 뜬금없이 스누피의 말을 인용하기 때문에 당황하시는 분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전 카오리가 귀여워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번에 또 한 번 피너츠에 나온 말을 인용하게 됩니다.
(역시나 엔딩 영상에 출처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분이 울적할 땐 팔로 턱을 괴어봐. 팔은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쁠 거야.” -찰리 브라운
작가는 어째서 두 번씩이나 피너츠에 나온 말들을 인용했을까요? 그냥 단순히 작가가 스누피 팬이었던 걸까요? 애니화됐을 때 카오리가 ‘왕!’ 하고 짖는 모에모에한 장면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던 걸까요?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의 관계를 봐봅시다. 찰리 브라운이 스누피의 주인이지만, 사실상 스누피는 찰리 브라운을 친구이자 집사 정도로 생각합니다. 스누피는 찰리 브라운과 함께 찰리 브라운에게 엮인 일들을 풀어나갑니다. 문제는 스누피는 상당히 용감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건데, 여러 악동스러운 일들을 하다가 일이 커져서 안 그래도 자신감 없는 찰리 브라운을 멘붕 상태에 빠트리는 역할을 하죠. 그러면서도 결과적으론 도움을 주고받아서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됩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구도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이는 작품 초반부에 카오리가 코우세이를 대하는 태도와 똑같습니다. 피아노를 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던 코우세이에게 카오리는 완전 민폐덩어리입니다(작품 내에서 자주 언급되죠. 고집불통, 무책임, 방악무인...).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코우세이에게 자신의 반주자가 되어달라고 하고, 콩쿠르에 나가달라 하고 완전 제멋대로인 성격에서 말썽쟁이 스누피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듯 미야조노 카오리는 자신을 스누피에 대입하고, 아리마 코우세이를 찰리 브라운에 대입하였습니다. 이는 1쿨까지는 확실히 유지되는 관계입니다. 이 장면을 분기점으로 서서히 찰리브라운과 스누피의 관계가 옅어져가죠.
“내가 항상 곁에서 도와주리라고 보장할 순 없어. 찰리브라운.”
카오리가 반딧불을 보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 하지만 부지런히 빛나 마치 (자신의) 생명의 불빛과 같다고 느꼈던 그 장면입니다. 카오리는 코우세이에게 넌 마음에 무엇을 품고 연주했느냐고 물어봤고, 코우세이는 자신의 마음 안에 네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카오리는 만감이 교차하지만, 이윽고 자신은 계속 찰리 브라운 옆에 있는 스누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저 말을 독백하게 됩니다.
어쨌든 그 장면을 기점으로 카오리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약화되고, 찰리브라운에게 말썽꾸러기이자 친구 관계였던 스누피는 점점 찰리 브라운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그 둘 사이에 숨겨진 관계가 나타납니다.
“있죠, 선생님. 우리들은 모두 작별의 키스를 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Marcie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Marcie는 어떤 인물일까요?
마시(마사가 아닙니다)는 피너츠의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찰리 브라운을 짝사랑하는 소녀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카오리는 마지막이 돼서야 자신이 코우세이를 짝사랑 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코우세이의 관계를 애써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의 관계로 숨겨왔지만, 실은 마시와 찰리브라운의 관계였다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도 애니를 처음 볼 때 까지만 해도 이런 설정들을 몰랐었는데, 관심을 가지고 찾다 보니까 이런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어서 ‘정말,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 깊이 생각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이치고 동맹
스누피가 아리마 코우세이와 미야조노 카오리 둘의 관계에 대한 설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면, 작품 전반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작품은 이 이치고동맹입니다.
입원한 카오리를 위해 책을 가져왔지만 이렇게 많이 읽을 시간이 없다는 카오리.... 그리고 중앙에 있는 책은
이치고 동맹의 표지입니다. 이 작품이 이치고 동맹을 오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아리마 코우세이가 그 책을 빌려보았다는 것을 확인하죠.
이치고 동맹은 일본의 대표적인 청춘 소설로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박완서 작가의 ‘옥상의 민들레꽃’ 같은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죠(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떤 작품에서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다.” 라고 말했다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저거 소설에서 나온 말이었던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4월은 너의 거짓말에서는 이치고 동맹에 나왔던 대사들을 여러 곳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보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몇 개가 있습니다.
갑자기 라벨이 듣기 싫다며 도망가는 코우세이와
갑자기 자신과 같이 죽지 않을 거냐고 물어보는 카오리입니다. 이는 모두
라든가에 나와 있는 부분입니다.(이 부분은 성우분께서 책읽듯이 이야기를 해서 책을 인용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코우세이에게 해준 말도
소설상에서 자살 이야기를 들은 후 처음으로 다시 간 병문안에서 들은 첫마디와 똑같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databox&no=66344&s_no=66344&page=1
(사진이 너무 많네요... 링크로 대체)
이름을 불러준 게 두 번째라던 이 쌩뚱맞은 말도
이 장면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카오리가 이름 불러준 거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있으니 카오리는 아직 이치고 동맹을 보지 않았고, 자신의 엄마처럼 세상을 떠나서 그들의 관계가 이치고 동맹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며칠뒤 같이 자살하지 않겠냐고 말하며 그 기대를 박살내버리죠).
죽은 왕녀의 파반느를 치고 있었던 주인공과 병약한 소녀. 하지만 코우세이는 자기는 라벨 따위는 치지 않고 너는 그냥 카눌레를 좋아하는 케이크 집 딸이라고 말하며 이를 부정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코우세이의 앞에 나타나 코우세이를 도전하게 만들어준 카오리. 그런 카오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자 코우세이가 카오리가 말했던 그대로 ‘잊을 수 있겠느냐’ 라고 말하며 카오리가 살기 위해서 조금 더 힘내도록 해줍니다. 이렇게 다시 한 번 꿈을 가지고 죽음을 이겨내 보겠다는 카오리의 모습은
3. 오페라의 유령, 팬텀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보신 많은 분들이 나기의 에피소드가 꼭 필요했나 하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전 나기의 존재가 이 작품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기 에피소드가 없이 애니가 끝났다면 이 작품은 그냥 ‘카오리에게 구원받은 코우세이 이야기’ 정도로 끝나버립니다. 카오리는 코우세이를 음악을 통해서 변화시키는데 성공했어요. 그렇다면 코우세이는? 라이벌 두 명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게 강력한 임팩트를 주지 못합니다. 나기가 등장함으로써 ‘카오리에 의해 성장한 코우세이가 나기를 성장시키는 이야기’, 즉 한 사람의 성장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 얘기가 길어졌는데, 어쨌든 등장 중반부에서 나기가 하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숭고한 희생,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 나는 팬텀, 오페라좌에 머무르는 괴인.’
16화에 “나랑 같이 죽을래?” 부분에 겹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대사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바로 그 가면 쓴 유령입니다.
팬텀(본명은 에릭)은 크리스틴을 향한 집착과도 같은 사랑으로 크리스틴을 지키려고 합니다. 크리스틴이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에 반해 그를 이 오페라홀의 최고의 여배우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하고, 이것이 한 인물의 술수로 수포로 돌아가자 복수심에 관련된 많은 사람을 겁주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나기도 자신의 모습을 이 팬텀에서 비추어 본 것입니다. 나기 자신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오빠를 좋아했고 동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오빠의 무대를 망쳐버린 코우세이를 원망했고, 오페라의 뮤지컬 내용처럼 코우세이를 파탄으로 이끌 준비를 하고 있었죠. 팬텀처럼 자신도 어딘가 뒤틀린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불순한 동기로 음악을 시작했던 자신을 ‘오페라좌에 머무르는 괴인’ 정도로 격하시켜 비유합니다.
그러나 나기는 코우세이를 만나고 변화합니다. 자신이 불순한 동기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났을 때 코우세이가 ‘동기라는 건 원래 그렇게 불순한 법이지.’라고 이야기해준 후 나기는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음악에 마주한 후, 나기는 성장하게 됩니다.
‘나는 크리스틴. 오페라좌의 무대를 동경하는 소녀’
팬텀에서 크리스틴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일그러진 사랑을 하는 팬텀이 아닌,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크리스틴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이 단계에서 그녀는 이미 음악인으로서의 보람, 감격을 얻었고, 그러한 감동은 코우세이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조연인 한 소녀의 성장까지도 감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두 번째 정주행하고 여러 가지 분석글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분석글 중에는 꽤나 흥미로운 글들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습니다. 그것들을 종합하고 종합한 글들을 언젠간 써야지 라고만 생각하고 실천에는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이작소를 통해서 글을 완성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이작소에게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4월은 너의 거짓말과 관련하여 좋은 소식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4월은 너의 거짓말 실사 영화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애니의 실사화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번 예고편에 확 꽃혔습니다. 영화에서 얼마나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실사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애니를 다시 보실 분들은 제 글을 조금 참고하여 풍부한 감상이 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애니메이션 게시판 콘테스트 <이 작품을 소개합니다>의 참가작입니다.마음에 드셨다면 투표에 참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