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도 뜨거웠던 여름날, 아마 기억으로는 빙과 애니메이션이 방영된지 1년 정도 지났을 시기였다. 우연히 텔레비젼 다시보기를 돌려보던 나는 우연의 일치, 기적 처럼 들려온 한마디에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다시보기 최신목록에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걸 보면 가족 중 누군가가 보았다는 소리다. 나는 아니다.)
그것은 모든 분들이 예상하듯
'저 신경쓰여요!'
그녀와 나의 만남은 이야기속 호타로와 그녀의 만남처럼 무척이나 강렬했다. 신경쓰인다는 외침과 함께 그녀의 머리카락이 끝도 없이 자라나
남자주인공을 감싸쥐었고, 클로즈업 된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만화경같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치탄다 에루와의 첫 만남은 괴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게 정확할 것이다. 사실, ARIA 시리즈나 꽃이 피는 첫걸음, 타리타리 같은 작품들을 접한 직후였던지라 일상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어느정도 있었다. 대사가 간질간질하다던지...이야기전개가 잔잔하다던지... 뭐 누구나 예상 가능한 플래그들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언급했던 첫 장면을 보고 난 뒤,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은 일상물이라기보다 여러가지 요소가 가미된 학원판타지물 정도로 생각했었다. 주인공 여자가 나무로 변하다니... 물론 이 부분은 후에 일본어가 가진 언어유희라는걸 깨달았지만 이미 그때는 치탄다 에루에게 푹 빠져 있었다.
여튼, 굉장히 괴랄한 느낌을 준 이 애니메이션은 나에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라는 느낌을 주었지만, 한편으론 호기심도 생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치탄다가 아름다웠다. 1차적으로 외모적으로...?
고전부의 부장으로써, 장밋빛 고교생활의 첫 단추를 자신의 페이스대로 맞추어나가는 치탄다 에루는 멋있고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호타로가 보기엔 세상천지 무슨 이런 민폐녀가 있냐고 여겨질 수 도 있지만, 바꾸어 말하면 호타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엎어놓은 인물 역시 치탄다 에루이다.
피하고 싶어하는 호타로와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치탄다, 이 둘 사이를 멍하니 보면서 나는 호타로를 변화시키는 치탄다의 모습에 푹 빠져버렸다. 신기한 일이라도 주변에 일어나면 '이건 치탄다도 신경쓰인다고 했을 거 같아'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치탄다가 함께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렇게 치탄다는 호타로 뿐만아니라 꽤 오랫동안 나도 신경쓰이게 하였다. 마치 나도 고전부원이 된거 같았다.
별거 아닐 수 있는 부분이지만, 누군가에게 잊지못할 경험과 추억을 선사해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치탄다 에루를 만나게 된 건 정말 멋지고, 행복한 일이라 생각한다. '신경쓰여요!' 라는 말 한마디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은 호타로를 움직였고, 나 역시 그녀의 호기심과 함께 하며 고전부원들과 같이 희로애락을 나누었다. 닿을 수 없는 존재에게서 잊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빙과' 라는 제목 만큼이나 시원한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이 세상 누구보다 신경쓰이는게 많은 그녀, 치탄다 에루!
그녀와 만나고,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시기를 보내는데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큰 영광이다.
언젠가 그녀가 신경쓰이는 일이 있다며 나에게 손을 내어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담으로 꿈 속에서 치탄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수께끼를 푸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비록 짧은 꿈이긴 했지만, 너무나 행복하고 황홀한 추억이었다.
p.s 그리고 나는 아직 우리집에서 누가 빙과를 제일 처음 보았는지 찾아내지 못하였다. (후일 치탄다와 함께 찾아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