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animation&no=393101&page=2 위 글에서 "공각기동대, 아키라는 없고 하루히가 들어있는게 이상하다"는 분들이 있길래 씁니다.
해당 글 내용을 보면 작품들을 대체로 10년의 텀을 두고 선정한 듯 합니다. 먼저, 공각기동대와 아키라는 극장 상영용 애니메이션입니다. 반면, 건담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은 TV방영용이죠. 애초에 포맷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공각기동대와 아키라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과 같은 극장 상영용 애니메이션과 비교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공각기동대나 아키라나 두 작품 모두 명작입니다. 그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두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해당 글에 나온 6개의 작품보다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두 작품 모두 후대 애니메이션에 끼친 영향은 미미하고 오히려 서구권의 실사영화계에 끼친 영향이 더 큽니다.
반면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어떨까요? 작품의 주인공인 스즈미야 하루히는 당시 급격히 팽창된 "츤데레" 모에 열풍의 최대 수혜자이자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주연 캐릭터인 나가토 유키의 경우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의 설정에서 많이 차용했습니다. 즉, 과거 작품으로부터 연장선을 가지고 있으면서 당시 유행을 주도, 발전시킨 작품인 거죠.
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츤데레 붐의 시초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전년도에 방영한 작안의 샤나가 완전무결 츤데레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제시했고, 훨씬 이전부터 에로게나 연애 어드벤쳐 게임에서도 많이 나왔던 "모에요소"입니다.
사실 신세기 에반게리온 방영 당시에도 조금씩 나오던 비판점입니다만, 에반게리온 이후 애니메이션은 두 가지 길로 나뉘게 됩니다. 오타쿠 지향과 대중 지향. 90년대 후반부터 쏟아져 나오던 에로게/연애 어드벤쳐 게임 원작의 애니메이션은 오타쿠 취향인데다가 저예산, 발전이 적은 작화 품질로 "심야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 2000년대 들어서 매우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AIR, 풀 메탈 패닉의 고퀄리티 애니화로 화려하게 데뷔한 교토 애니메이션은 1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혀 꿀리지 않는 퀄리티로 심야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한방에 그 인식을 뒤집습니다. 그리고 당시 교토 애니메이션이 선보인 캐릭터 디자인(특유의 눈과 하이라이트를 받는 얼굴, 데포르메된 코와 입 등)은 심야 애니메이션 업계의 표준의 바탕이 됩니다. (사실 같은 제작사의 케이온!에 이러한 평가가 붙는 경우가 많지만 케이온! 캐릭터 디자인의 바탕엔 하루히가 있었죠)
영향력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버금가, "하루히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에 이릅니다. 이 작품 뒤로 라이트 노벨이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고 그것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그야말로 쏟아집니다.
따라서 이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떠나서, 현재 애니메이션 업계에 가장 큰 영향을 현재 진행형으로 미치고 있는 작품 단 하나를 꼽으라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 되는 것입니다. 당장 2010년대 방영한 심야 애니메이션 중 라이트노벨 원작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들 대부분이 "모에"를 강조했다는 점만 봐도 답은 나옵니다.
그나저나 이제 10년이 지났으니 하나쯤 센세이션을 불러올 직품 하나 나올 때가 됐는데... 뭐 요즘 이세계 전생물이 쏟아져 나오는거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