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주민들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부모뻘인 노인들에게 욕을 하고 폭행을 할 수 있나.” 21일 오전 경남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 여수마을 주민 30여명은 마을 뒷산으로 가는 길을 막아선 경찰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새벽 5시30분께 마을 주민 5명이 한국전력공사가 뒷산에 세우려는 124번 초고압 송전탑 설치 공사를 막으려 현장에 가려다 이들을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주민 박삼순(68)씨가 경찰에 떠밀려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병원으로 이송됐다. 박씨의 남편 김운곤(75)씨 등 주민들은 “경찰이 한전 편만 들고, 주민들은 개만큼도 취급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저기가 밭인데, 왜 거기도 가지 못하게 하느냐”며 경찰에 항의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 투입된 경찰이 곳곳에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 한전이 공사를 재개한 20~21일 이틀 동안 주민 6명이 다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가운데 3명이 통행을 가로막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다쳤다.
경찰이 주민들을 가로막은 사이 한전은 헬리콥터로 공사 장비를 실어나르며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 경찰은 한전과 충돌을 막는 등 주민 안전을 위해 경찰력을 배치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의 통행까지 차단하며 한전 쪽 공사를 거든다는 항의를 받고 있다.
이날 아침 7시께 밀양시 부북면 위양마을에서도 주민 이재란(72)씨 등이 공사현장에 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중 왼쪽 손목을 크게 다쳤다. 단장면 고례리 바드리마을 84번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공사를 저지하던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도 경찰에 의해 끌려내려갔다. 20일 인근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에서도 주민 이금자(82)씨가 경찰과 충돌하다 의식을 잃고 쓰려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경남지방경찰청 기동대 병력이 공사현장으로 가는 진입로에서 주민들의 통행을 가로막고, 그동안 노동자들이 공사하도록 보호해주는 한전의 ‘경비’ 구실을 하고 있다. 질서 유지는 고사하고, 갈등만 키우는 경찰은 즉각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관 11명을 밀양 현지에 보내 주민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정상영 국가인권위 기획조사팀장은 “대부분 주민들이 고령이어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주민의 안전과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발견되면 현장에서 시정조처를 요구하고 증거를 확보해 심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남경찰청을 방문한 이성한 경찰청장은 “한전과 주민 양쪽의 충돌이 명확하게 예견되기 때문에 불상사를 막으려 경찰력을 배치했다. 노인들이 많아 걱정되지만, 한전 판단에 따르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까지도 예견된다고 하니 방관할 수도 없다”며 한전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 경남경찰청은 부산·대구에서 지원받은 병력까지 전투경찰 7개 중대와 여경 2개 제대 등 730여명을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에 배치했다.
밀양/최상원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