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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용!!!!
게시물ID : sisa_3899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풀잎향기
추천 : 4
조회수 : 45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5/15 19:57:06

헌법재판소, 대법원, 정부, 국회 등 국가기관은 진상규명을 거쳐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교과서에서 5.18 민주화운동으로 실려있습니다. 새누리당 등 보수 정당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은 신군부의 반민주적 5.17 쿠데타에 맞섰고, 신군부의 과격진압에 희생됐기 때문입니다. 5.18은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서 범국가적으로 기념하죠.

 

 

 

 

최근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자유북한군인연합'이라는 한 탈북자 단체의 임천용 회장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임천용의 주장을 극우보수세력이 인용하여 확대 재생산하고 있고요.

 

 

임천용의 증언이 5.18 북한 개입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 극우세력의 의도인데요. 5.18 북한군 개입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북한 인민군의 5.18 작전일지, 광주 군투입을 지시하는 명령서 등 물증으로 크로스체킹이 되야 하는데, 일단 물증이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내 지휘관이 5.18에 침투했다'라는 주장까지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럼 이제부터 임천용의 주장이 틀린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임천용의 증언은 매번 달라지고 일관성이 없습니다.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임천용의 인터뷰는 그때 그때 다를 정도로 일관성이 없습니다.

5.18 북한군 침투설과 관련된 인터뷰는 세개가 존재합니다. 세 인터뷰에서 보이는 모순점을 짚어 보겠습니다.

 

1. 2006년 8월 한국논단 인터뷰

2. 2006년 12월 기자회견

3. 2008년 뉴스한국 인터뷰

 

  

 

 

 

A. 침투 인원

 

한국논단 : 우리 대대에서만 7명이 나왔다는 이야기이고 총체적으로 약 1개 대대가 내려 왔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추산하면 한 4백50명 정도로 볼 수 있지요.

 

기자회견 : 나중에야 상관들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대대가 광주에 투입됐고 희생도 많았고 공로도 있었다고 들었다. (북한 특수부대 1개 대대는 300명 가량)

 

뉴스한국 :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600명 정도 됐을 것이다. (중략) 이 부대에서 1개 대대가 차출되어 서해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각 특전사부대들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차출한 300명 정도는 별개로 함경남도 신포 동해안으로 마양도라는 잠수함기지에서 내려왔다.

 

 

B. 귀환 인원

 

한국논단 : 그때 광주에 내려왔다가 3분의 2는 못 돌아갔는데 그 인원이 북쪽에서 추산하기로 그게 다 죽었겠느냐 부상당했거나 합류 못했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기자회견 : 3분의 1이 희생되고 나머지 2는 귀대했다.

 

 

뉴스한국 :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C. 침투, 퇴각 경로 모순점

 

한국논단 : 그때는 계엄령이 내려져서 육지는 전부 봉쇄되어있었고 그들은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왔지요. 그런데 광주에 그 사람들이 내려와서 절반으로 나뉘어져서 한 무리는 진압군 쪽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그리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뉴스한국 : (침투할 때는) 이 부대에서 1개 대대가 차출되어 서해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각 특전사부대들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차출한 300명 정도는 별개로 함경남도 신포 동해안으로 마양도라는 잠수함기지에서 내려왔다. (퇴각할 때는) 60-70명 정도 강원도 중부전선을 타고 넘었다. (중략) 중부전선을 넘어간 특수부대원들은 1차로 배로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로 광주봉기가 끝난 뒤 육로로 빠져나간 것이 가능했다.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 2006년 한국논단의 인터뷰에서는 계엄령 중이라 육지가 봉쇄되어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나, 2008년에는 자신이 2년 전에 한 말을 까먹었는지, 봉쇄되어 침투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육지로 60~70명이 귀환하였다고 주장했다. 2006년 한국논단 인터뷰에서는 전부 서해안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주장했지만, 2008년에서는 1개대대씩 각각 서해안과 동해안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D.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뉘어 침투했다는 황당한 주장

 

 

한국논단 : 절반으로 나뉘어져서 한 무리는 진압군 쪽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그리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뉴스한국 : 당시 김정일 정권이 정예의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을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뉘어 침투시킨 정황과 증거가 명백하기에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했다.

 

 

출처

 

1. 한국논단 인터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8300

 

 

2. 2006년 기자회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19&aid=000001755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0267072

 

3. 뉴스한국 인터뷰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k2007021120301185542

 

 

 

2. 탈북자 내부에서도 임천용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 단체인 탈북군인협회 회장은 5.18 북한군 침투설을 제기하는 자유북한군인연합에 대해 "탈북군인협회와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일하는 방법이 달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특히 보여주기 사업, 이벤트성 사업 등은 지양해야 한다. ‘북한 보급창고 등을 까고 나오자’ 식의 선동적이고 과격한 활동이나 ‘5.18 광주에 북한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주장 등도 현실과 맞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6100&num=53887

 

 

  3. 임천용은 2006년 이미 크게 헛다리를 한번 짚은 적이 있습니다.

 

2006년 임천용이 "북한군 사망자가 민주화 투사로 둔갑된 사례가 있다면서 한 사망자의 시체 사진을 제시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1980년 5월 22일 총에 맞아 쓰러진 외삼촌 손광식을 구하러 갔다가 화정동 국군통합병원 앞에서 사망한 임정식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012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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