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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도망쳤던 여자
"…...는 거의 없어…..."
"…...전쟁통에 ……여자가 있기 힘들지……."
축축 늘어지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기는하지만 …… 요원으로 쓰기가 …..."
"…… 작은 여자 시체가 필요해."
또 다른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왜소한 시체 한구가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부서질 듯 한 몸을 일으키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묘지였다. 사방에 막 무덤에서 파헤쳐진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 중 대다수는 놀랍게도,
"흐아아아아악!"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를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스컬지가 로데론을 휩쓸던 때를 떠올렸다. 저주받은 왕자가 왕을 살해하고, 나라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람이 썩어 괴물로 변해 다른 사람을 뜯어먹고 시체를 이어 붙인 괴물들이 광장을 휩쓸었다. 그 끔찍한 것들이 바로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작은 칼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저만치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이, 아니 시체 두 구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있는 힘을 다해 질러본 위협이었지만 그 목소리엔 분노보다 두려움이 더 많이 배어 있었다. 이미 그녀는 포식자가 가득한 투기장에 홀로 떨어진 희생자의 모습이었다. 시체들이 그녀를 향해 걸어올 수록 그 두려움은 조금이나마 묻어 있던 분노와 위협을 절규로 덧칠해갔다.
"그래. 저런 걸 찾고 있었던건가?"
"크기는 적당하네. 또 죽지만 않는다면 가져갈 만 하지."
그녀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시체들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두 구의 시체. 방패와 장검을 든 시체 한구와 등불을 들고 로브를 입은 시체 한구가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소리를 질러버린 탓에 그 주변의 모든 시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살아서 도망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겨우 그 생지옥을 피해서 도망쳤는데 결국은 시체들에게 뜯어 먹히는 신세가 되는 걸까? 한평생을 도망치며 살아왔건만 이곳이 내 마지막이 되는 걸까? 온몸을 두려움에 벌벌 떨며 뒷걸음치던 그녀는 발이 걸려 결국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다가오던 시체 중 한 구가 손을 뻗쳤다.
"거기, 얘기 좀 하지."
"제발…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이미 잠깐이나마 있었던 용기는 사라져 버린지 오래 였다. 잠시나마 의지가 되었던 칼은 이미 놓쳐서 저만치 굴러가있었다. 비굴하게 엎드려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작은 몸뚱아리만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킥킥킥. 이래가지고 뭐 어디 써먹을 수나 있겠어? 이것도 꽝인것 같은데?"
등불을 든 시체가 말했다.
"그건 모르지. 죽을 상황에 몰아넣으면 뭐든 할 수 있게 된다고."
칼을 든 시체가 말했다.
"아니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후방에서 잡힌 다음에 아는 걸 줄줄 불면 어떡해? 그냥 나 한테 넘기고 딴 걸 찾아보지?"
등불을 든 시체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썩어서 푹 들어간 눈동자는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빛과는 무관하게 그 눈매가 왠지 모르게 소름끼쳤다. 시체가 주는 두려움 이상의 뭔가 다른것이 느껴졌다. 이 느낌을 로데론에서 느껴 보았던가? 왠지 기억도 희미하고 머리가 아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시체들에게 잡아 먹힐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칼을 든 시체가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건 안돼. 나도 임무라는 게 있다고. 아가씨, 지금 상황파악이 잘 안되는 것 같은데 이걸로 자기 상태나 좀 확인해 보지 그래"
시체가 건넨 것은 때가 탄 손거울이었다.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본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숨이 멎을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안돼….안돼…. 내가…."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지. 다들 그래."
거울에 비친 것은 푸르죽죽하고 생기 없는 얼굴이었다. 금발이었던 머리는 색이 바래 마른 풀처럼 변해버렸고, 얼굴 군데군데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 눈가엔 썩어서 검게 변해버린 살들이 말라 붙어 있었다. 오직 움푹 패인 눈구멍에만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얼굴을 한참 쳐다본 뒤에서야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쳐다볼 수 있었다. 팔꿈치와 무릎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 있었고, 손가락은 살점이 다 날아가서 겨우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한숨이 차 올랐다. 결국 그녀는 도망치지 못했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좋지 않은 상황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하던 대상에 자신의 존재 전체가 삼켜져 버린 것이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흐르지 않았다. 이미 말라서 없어져버린 눈물샘에서는 아무것도 흐르지 않았다. 영영 흐르지 않을 눈물을 목소리로 채우기라도 할 듯이 그녀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못써먹을거라니까. 그냥 나한테 넘기라고. 부릴 하인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포세이큰은 노예가 아니다.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는 존재를 네 맘대로 노예로 삼을 순 없어."
"아니, 그런게 아니라 조수가 필요하다고. 이 많은 시체들을 다 손질하기엔 손이 열개라도 부족한 실정이야."
칼을 든 언데드가 그녀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체구가 작은 그녀는 덩치 큰 언데드의 손에 잡혀 공중에 매달려졌다. 놀라서 잠시 우는 것을 잊었던 그 순간에 덩치 큰 언데드가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너 혼자 구석에서 얼마나 질질 짜던지는 상관없다. 하지만 울꺼면 좀 조용히 울라고. 여기 너만 있는게 아니니까."
아직 서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위협적인 모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울음을 그치자, 그녀는 다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받아들여야 한다. 넌 죽었어."
"내가…죽었어…"
"그래. 그리고 지금은 다시 살아났지. 밴시 여왕님의 복수의 도구, 포세이큰으로 말이야."
그제서야 그녀는 무덤가 주위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다. 시체들은 단순히 걸어다니고 있지 않았다. 칼과 방패를 든 시체들, 활과 화살을 든 시체들, 지팡이를 들고 불꽃을 공중에서 어루만지고 있는 시체들…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진군할 듯한 이들은 시체들의 군대였다. 시체들의 사이에는 그들을 지휘하는 듯한 푸른 빛의 날개 달린 희미한 형체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참을 상황을 지켜보고 숨을 고른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여긴 어디죠? 당신들은 또 누구고요?"
"여긴 티리스팔 숲의 죽음의 종소리 마을이지. 내 이름은 모르도라고 하네. 여기서 너처럼 살아난 시체들을 위해 수선작업을 하고 있지. ‘죽음이라는 새로운 삶을 위한 장의사!’ 이게 내가 밀고 있는 유행어라네. 어때? 멋있지 않나?”
"난 다넬이다. 넌 이름이 뭐냐?"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뱉어내야 할 다른 이름을 망설이는 사이, 다넬이 뿜어내는 위압감에 눌린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익숙한 이름을 뱉고 말았다.
"...로..즈라고 해요."
"...로즈? 아… 그래…? 킥킥킥… 귀여운 이름이구만."
모르도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남자는 이상하게도 시체인 것 이상의 기분 나쁜 느낌을 주었다. 살아있을 때라면 장의사보다는 매음굴의 포주가 더 어울렸을 것 같은 눈빛과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산 자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로즈. 어둠의 여왕님의 권능과 축복으로 죽음의 손아귀에서 너는 해방되었다. 그렇다고 네가 어둠의 여왕님께 속박되었다거나 그런건 아니야. 넌 자유다. 어디든지 갈 수 있지. 하지만 어둠의 여왕님을 섬기고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웬만하면 함께 하는게 좋을꺼야. 킥킥킥. 우리처럼 다시 살아난 놈들을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거든."
"지금은 아직 상황이 낯설고 당황스럽겠지. 마음이 진정되면 저 납골당으로 오라고. 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주겠다."
마음이 진정되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앙상한 손발과 망가진 얼굴에 겨우 적응하고 나니, 온갖 생각과 기억들이 머리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로데론이 무너지던 날… 저주받은 왕자가 돌아오던 날의 끔찍한 기억들… 그리고 올리버…! 그녀는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아야 했다. 내가 다시 살아났는데, 그도 다시 살아났을까? 내 삶을 지탱해준 사람, 올리버만 다시 볼 수 있다면… 함께 옆에 있어준다면…
"아직 생각이 복잡한가? 우리 아가씨?"
장의사 모르도였다. 숲에는 어느새 깊은 밤이 찾아와 있었다. 죽어버린 몸에 밤 숲의 한기는 그렇게 많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희미한 등불의 빛은 숲의 어두침침함을 밝게 비추어 그녀의 기분을 한층 진정시켜 주었다.
"저기…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저랑 같이 있지는 않았나요?"
"응? 무슨 소리야. 넌 내가 이 무덤에서 파냈어. 옆에 누가 있긴 있었다는거야?"
"그러니까, 제가 죽을 때… 혹시…"
"또 엉뚱한 소리하고 있네. 니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난 그냥 여기 무덤을 파내서 니 시체를 꺼낸 것 뿐이라니까?"
하긴 그랬다. 이곳은 그녀가 죽은 로데론 성과는 한참 떨어진 숲이었다. 올리버도 죽었다면, 그동안 시체가 어디론가 섞여버렸을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보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그럼 혹시 이 근처에서 파내진 시체중에… 그러니까 묘비에 올리버라고 적힌 사람은 혹시 없었나요? 꼭 찾아야 해요!"
모르도가 피식 웃으며 그녀 옆의 묘비를 가르켰다. 그 묘비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이름 모를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그 영혼이 어둠 속에서 편히 쉬기를.'
"여기 있는 대부분의 무덤은 이름 없는 무덤들이야. 너도 마찬가지였고. 요즘 세상에 자기 이름까지 가지고 뭍이는 사람은 거의 없어. 간혹 있긴 하지만, 내가 본 것 중에 그런 이름은 없었는데…"
"아니야!"
외마디 비명을 지른 로즈는 모르도의 손에서 등불을 낚아챘다.
"엇… 이봐..."
그러거나 말거나. 로즈는 등불을 들고 묘지를 미친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올리버, 올리버…. 한참을 그렇게 뛰어다녔지만 올리버의 묘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이름이 적힌 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스컬지에게 희생된 자들의 무덤만 사방에 가득했을 뿐이었다. 다시 눈물이 흐르지 않을 눈에 슬픔이 차올랐다. 난생 처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사는게 더 이상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것 같았었는데.
"이제 그만 하라고. 로데론이 통째로 죽어버렸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사람을 찾겠다는거야."
모르도가 곁에 와 있었다. 그 말이 옳았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 안의, 마지막 남은 오기가 그녀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곧 그녀는 그녀 옆의 나동그라진 삽을 들고 아직 파헤쳐지지 않은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무로 된 관이 드러났다. 로즈는 허겁지겁 관뚜껑을 열었다.
"흐앗!"
"그만 하랬잖아 내가."
관에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썩어서 부패된 시체가 들어있었다.
"모든 시체가 너처럼 운이 좋아 형체를 잘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야. 대부분은 썩어서 문드러졌고, 그나마 몸 구성품이 한군데 잘 모여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살려낸다고 다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로즈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허망함과 한맺힘이 먼지 뿐인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이렇게 쉽게 썩어 무너질 삶을 뭐하러 그렇게 발버둥을 쳤을까. 그 결과가 이것뿐이라니. 또다시 이렇게 저주받은 몸뚱아리가 되어버리다니. 그리고 올리버, 올리버는 어디있지?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던 걸까? 차라리 저렇게 형체도 없이 썩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이 괴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올리버, 어디로 간거야. 이제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는데...
"헤헤헤… 이봐, 이제 그런 지나간 과거 추억팔이는 그만 하자고. 어짜피 못찾아. 지금을 살아야지 안그래? 어서 일어나. 내가 수선해 줄테니까…"
모르도가 아무 도움되지 않는 능글맞은 말투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한번 지칠때까지 울어버린 로즈를 모르도가 부축했다. 여전히 숲은 어두침침했고 그 가운데 작게 빛나는 모르도의 등불은 로즈를 깊고 깊은 납골당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납골당은 어두침침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꽤나 아늑한 곳이었다. 로즈가 걸어 다니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남은 여생을 조용히 누워 보내기에 적당한 은신처였을지도 몰랐다. 모르도가 로즈를 납골당 구석에 앉혀 주었다.
"진정해, 진정! 정신차려야지! 자꾸 그러면 어렵게 살아난 목숨을 또 날린다고! 또 죽을 셈이야?"
"몰라요. 또 죽으면 죽죠 뭐. 마음 추스리던게 다 흐트러졌어요."
로즈는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흐느끼는 소리를 지울 수 없었다.
"하여튼 여자 아니랄까봐 오락가락하긴. 그만 좀 울고 웃어라 웃어! 여잔 웃어야 이쁘다고."
"내가 이쁘든 말든 뭔 상관이에요. 어짜피 난 시체라고요."
“못생긴거보다는 이쁜게 훨씬 좋잖아!”
“못생기든 이쁘든 그냥 좀 냅둬요.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그래, 하긴. 아까 그 놈과는 달리 형체는 불들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꽤 운좋은 편이기는 하지. 꽤 오래죽어있었던 것 같은데 이정도나 몸을 붙들고 있었다니 거의 기적에 가까워. 아니 그냥 기적 맞아."
"제가 죽은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거죠?"
“니가 언제 죽었는데.”
“왕자 개선식때요? 아마 그럴껄...요?”
"그럼 거의 10년은 지나갔네. 그 저주받은 왕자가 몰락한게 요사이의 일이니까. 한 7년쯤 지나갔다 보구만. 7년을 무덤안에서 잠들어있던것 치고는 몸이 거의 부패되지 않았어. 살아있을 때 방부제라도 잔뜩 먹고 죽은건가?"
"7년이라고요?"
“나도 그때 죽었거든. 나는 거의 즉시 살아났으니까 맞을꺼야.”
7년? 그렇게 오래 잠들었었다는 말인가? 그럼 올리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어딘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썩어가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살아나서 날 찾아다니고 있을까?
"자,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수선을 시작해 볼까. 거기 탁자에 있는 노끈이랑 초록색 약병 좀 가지고 와봐."
"알았어요."
탁자 위에는 마법사들의 탁자위에서나 볼 법한, 아니 그것과는 뭔가 음침한 방향으로 다른 약들이 잔뜩 있었다. 굵은 노끈과, 온갖 위험할 것 같은 색의 약물들, 그리고 반쯤 썩어버린 사람의 머리통도 하나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머리통은 눈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무덤에서 눈알을 가지고 있는 건 이 머리통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흐억, 뭐야 이게!"
머리통의 눈알이 정신없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모르도가 뒤에서 키득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놀랬나? 그건 내 초기 작품이야. 무덤가에 굴러다니는 머리통을 가져다가 영약을 부었더니 그렇게 눈알만 살아서 움직이는 머리통이 되버리더라고."
"저거… 살아있는거에요?"
"글쎄, 아닐껄? 그냥 영약의 성분 때문에 뭔가 가까이 다가가면 반응만 좀 격렬하게 일어나는 정도야. 저런 건 살아있다고 말 못하지. 아무튼 빨리 가지고 와!"
로즈는 노끈과 약병을 가지고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았다.
"그럼…… 이제 벗어!"
"네..네? 뭐라고요?"
"옷 벗으라고! 니가 옷을 입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니 살을 꼬매겠어? 빨리 벗어!"
로즈는 당황스럽고 민망했지만 결국 걸치고 있던 누더기를 하나하나 벗었다. 살아있을 적의 몸매는 다 말라 비틀어지고 형체만 남아있는 수준이었다. 그래, 다 썩어서 없어지지 않은것만해도 어디야. 그렇게 로즈는 생각했다. 반대로 모르도는 내심 흥분한 듯 보였다.
"킥킥킥… 이거 정말 흥분되는구만… 몇 년째 다 말라 비틀어진 송장들만 꼬매다가 젊은 여자를 꼬매려니…"
어짜피 가릴데는 다 가리고 있었지만, 남에게 몸을 보이는 것은 언제나 약간의 민망함과 수치심을 동반하는 행위였다. 어쩔 수 없지만서도.
"거 참 신기하구만. 꼬맬 데가 그렇게 많이 없는데? 조금 트인 부분만 마무리해주면 되겠어. 영약도 그렇게 많이 필요 없을 것 같고."
"빨리 끝내기나 해 주세요."
"잠깐 있어봐바. 이게 꽤 정밀함을 요하는 작업이라고."
"좋아보이는구만. 이제 정신은 좀 들었나?"
다넬이었다. 언제 납골당으로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소리 없는 등장이었다.
"아, 왔나? 그래, 다른 쓸만한 자원은 좀 찾았나?"
"뭐 늘 그렇던 대로지. 수선은 다 되었나?"
"이제 다 됐어. 사실 할 게 거의 없더라고. 이정도로 잘 보존된 시체는 정말 오랜만이야."
모르도는 간결하게 수선작업을 마무리지었다. 살의 너덜거리는 부분을 정리하고, 살점이 떨어진 부분을 다른 피부와 살점으로 채웠다. 원래 몸이 아니던 부분이 늘어나 이런식으로 기워 붙이다보면 예전에 보았던 시체더미 괴물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럼 잠시 밖으로 나갈까? 할 이야기가 많다고."
"그러지."
세 사람은 어두운 납골당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섰다. 차갑고 축축한 납골당에는 눈알이 돌아가는 머리통만 조용히 탁자위에 남아있었다.
머리통의 입에서 조용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심…..해….."
"어…..서…..달아…..나…."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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