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은 결코 실수로 미화될 수 없으며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계획적으로 의도되고 자행된 일제의 명백한 만행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나 봅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아버님의 서재를 구경하던 중 '마루타'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책은 표지까지 생생한 칼라판으로 되어있었는데 그 사진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단발머리를 한 여인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고 일본군 병사가 그 위에 무슨 용액인가를 붓는 장면이었는데 그녀의 두 손은 흐물흐물 늘어져 있었습니다. 과연 이것이 사람의 손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형체를 잃어버리고 늘어진 그녀의 손,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슬프던 그의 공포에 질린 눈빛.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외에도 학교 과학실에 물고기 표본이 진열되어 있듯이 태아가 표본통에 담겨 있는 모습 등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일제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며칠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731부대 : 만주 하얼빈에 세워진 세계최대 규모의 비밀 부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균 병기의 위력을 확신한 일본군 이시이군의 중장이 관동군의 만주 지배를 발판으로 세균전 연구를 자행한 곳. 세균 병기를 개발하기 위해 페스트, 탄저, 콜레라와 같은 치사율도 높고 전염성도 높은 강한 세균을 연구 대상으로 일제에 대항한 독립 투사들과 많은 포로들에게 자행, 9년(36년~45년)간 약 3천명 이상의 마루타가 독가스, 동사 실험, 세균 실험 대상으로 사라지며 실험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마루타란 무엇인가 마루타란 1936년에서 1945년 여름까지 일본 관동군 만주 제 731부대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 중국인, 만주인, 몽고인, 러시아인등 전쟁포로 및 그 외 구속된 자(독립투사 등)로 약 3천여명 이상의 마루타 즉 '통나무'란 뜻으로 생체 실험 대상자를 말한다. 마루타에게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첫째, 마루타는 인간의 이름이 필요치 않다. 단지, 세자리의 번호로 구분되는 생체실험의 재료를 의미한다. 둘째, 마루타에게는 최고의 식사가 제공된다. 매끼마다 영양만점의 음식에 디저트, 비타민제까지 곁들여졌다. 보다 정확한 실험결과를 얻기 위해 실험실의 생쥐마냥 소위 사육된 것이다. 셋째, 마루타는 소약한 체력을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여 실험재료가 되기 위해 건강한 육체를 찾아야 한다. 일본군 세균 부대의 죄행 1. 세균전 계획 1927년 일본 다나까 내각은 "동방회의"를 소집하여 "세계를 지배하려면 중국을 먼저 지배하고 중국을 지배하려면 필히 만주와 몽골을 지배해야 한다"는 국책을 제정. 이것이 바로 악명 높은 "다나까회의"이다. 동북 3성을 최종 지배하기 위하여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동북에서 무단으로 시비를 걸고 동북국세의 혼란을 조성. 동북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1928년에 장작림을 암살하는 황구툰 폭파사건을 조작 하였다. 1931년 9월 18일. 시기가 되었다고 스스로 느낀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공공연히 중국 동북을 침략하는 "9.18" 사건을 발동하였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침략전쟁을 다그침과 동시에 일본군부는 즉각 세균전을 계획하였고 1931년에 일본 도쿄 육군군의학교내에 소위 방역 연구실을 설치하였다. 세균전의 적극 추동자인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및 그 연구실이다. 2. 만주로 이전 연구범위를 확대하고 세균연구 속도를 가속화 하기위해 광적으로 이성을 잃은 이시이 시로는 산사람으로 세균실험을 하기로 결정하고 동북을 제일 이상적인 실험장소로 정하였다. 일본군이 할빈을 점령한 이등해에 일본 참모본부는 도쿄의 세균연구기지를 할빈으로 비밀리에 이전 하기로 결정하고 남강구 선화가와 문묘가 일대에 "이시이 부대" 라고 이름지은 세균부대 본부를 설치 하였다. 할빈에서 70Km 떨어진 배음하에다 세균 시험공장 건설이 부대의 안전과 비밀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대외로 이부대를 "관동군 방역급수부" 또는 "가무부대" "석정부대"라고 속칭하였다. 배음하 실험장의 죄행을 동북 항일연합군이 일찍 눈치채고 수차례 습격하였다. 1935년에 이 실험장내 에서 탈옥사건이 발생되면서 이시이 시로는 경황실색한 나머지 "화약고" 폭발구실로 실험장을 할빈 남쪽 20Km 거리의 평방지구로 비밀리에 이전. 이로부터 평방지구는 말그대로 "식인마굴"로 전락되었다. 1935년에 石井四郞은 평방역 북쪽 4Km 지역을 최적지로 지정하고 6㎢ 지역의 민간인들을 강제로 내쫒아 수천명의 유량민을 조성하며 사람들을 파산과 죽음으로 몰았다. 이와 동시에 일본군과 괴뢰 당국은 동북 각지에서 수만명 노무자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밤에 낮을 이어 세균시험공장을 건설케 하였는데 수없이 많은 노무자들이 기아와 피로를 못 이겨 생명을 잃었고, 공정이 거의 끝날 무렵 비밀 공정에 참여한 노무자는 모두 비밀리에 살해 되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731부대는 120㎢의 평방지구를 특별 군사구역으로 정하였다. 이를위해 관동군 사령부가 1938년에 공포한 평방지구에 특별군사구역 설립 제1539호이 특별군사 구역의 경비가 매우 삼엄하여 평방을 경과하는 나빈선기차는 평방역을 경과시 필히 전역에서부터 커튼을 내려야 했으며 승객중 밖을 내다보는자가 있을시 혐의범으로 취급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평방 특별군사구역내에서 파쇼통치를 실행하면서 "특별군사구역"내에 사는 거주자는 16세이상일 경우 남녀를 막론하고 괴로경찰서에서 발급하는 특별거주증명서를 소지해야 했다. 그렇지 아니하면 "특협"으로 헌병대로 압송되어 신문 받았다. 3. 부대확장 대규모의 세균작전과 대소련작전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1941년 관동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부대를 "만주659"로 개칭하고 부대본부를 731부대로 칭했다. 부대산하에 해림, 임구, 해납, 손오 4개지대외 대련위생 연구소를 설정하였다. 4. 세균실험 731부대는 내키는대로 각종 세균실험을 진행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페스트, 탄저, 콜레라 실험을 주로 하였다 . 731부대는 세균실험 뿐만 아니라 독가스 실험도 진행하였는데 중국침략 일본군 제516 독가스부대는 대원들을 731부대로 직접파견하여 독가스 생산시설을 설치케 하였다. 731부대는 세균실험시 늘 대비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하였다. 주 방법으로는 주사시험, 주사기로 세균을 근육에 주입 후 병변반응을 관찰했다. 731부대는 초기에는 각종 세균을 밥과 요리에 혹은 과일과 음료수에 섞은 후 실험자들을 속여 먹게 하였는데 그 수단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자 사람들을 묶어 놓고 강제로 투약시켰다. 5. 활체 해부 731부대의 핵심 비밀중의 하나가 바로 비인간적인 활인(산사람) 세균실험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잔인한 것은 활체해부였다. 활체 해부의 주목적은 세균실험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한것임. 피 실험자는 실험을 거친후 거의 다 활체해부를 받게 되는데 어떤자는 마취상태에서 화장노에 보내졌고, 해부하여 절단해낸 것은 병리연구 후 표본진열실로 보냄. 6. 동상 실험 동상실험 역시 731부대의 인체실험 중 제일 잔혹한 일종이다. 동상연구 목적은 관동군이 중국동북 추운지방 에서의 작전의 수요이며 또한 소련과의 전쟁을 대비해서이다. 부대 안에 냉동 실험실을 건설한 731부대는 여름에도 냉동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731부대 동상연구원들은 피실험대상을 혹독한 겨울에 알몸 혹은 얇은옷 한겹만 입은채로 밖에서 냉동시켰고 여름이면 사람을 냉동실에 넣어 실험하였다. 일정하게 냉동되였을 때 사람을 다른곳으로 들어다 부동한 방법으로 해동시켰는데 때로는 냉수를 붓고 때로는 온수에 담그며 때로는 뜨거운 물에 녹였다. 피실험자들은 극도로 고통해하며 그 자리에서 죽든지 혹은 살과 피부가 부패되고 흰뼈가 보일 정도였다. 병리적 실험수요를 위해 그들은 피실험대상의 동상상처에 각종 약을 발라 병변 과정을 관찰하였다. 수없이 많은 실험대상자들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잔인한 실험속에서 사망되었다. 수많은 실험을 통하여 731부대는 섭씨 37도의 온수에 담그었을 때 동상치료 효과가 제일 좋았다는 결론을 얻었다. 7. 특별 수송 모든 피실험대상들을 731부대에서 모두 "마루타" (일본어 "나무몽둥이"란 뜻)라고 불렀고 이 마루타들을 실험재료로 내키는 대로 살해하였다. 피실험대상자들은 모두 특별수송수단으로 731부대의 특별감옥으로 합송되었다. 소위 "특별수송" 이란 "마루타" 와 같은 뜻으로서 731부대의 전문용어이며 "특별수송"의 뜻인 즉 731부대로 "마루타"를 운송한다는 것임. "마루타"의 절대다수는 일본관동군 할빈헌병대. 일본 할빈주재 영사관 혹은 관동군 정보부로부터 끊임없이 731부대로 운송된 것임. 수많은 국제 반제국주의 멤버와 항일분자들이 체포된후 모두 "특별수송" 수단으로 731부대에 보내 각종 실험을 받으며 참혹히 살해되었다. 부대로 "마루타"를 압송할 때, 때로는 기차로 때로는 731부대가 자체개발조립한 특별자동차를 이용했고 사람들이 눈치차릴까봐 늘 "마루타"에게 일본군복을 입혔으며, 731부대 도착후 즉시 특별 감옥인 7호, 8호 두 건물로 압송하였다. 8. 쥐부대 14세기에 유럽전역에서 페스트가 대량으로 유행하면서 2,5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래서 페스트란 말만 들어도 섬뜩해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인간성과 이성을 잃은 일본군국분자인 이시이 시로와 일당들은 오히려 페스트 병균을 이용하여 중국 항일군과 세계반파쇼 전사들을 살해하려 하였다. 페스트균을 연구하고 또 그것을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이시이 시로는 쥐를 대량으로 잡고 양식하게 하는 한편 동물사육반을 설치하였다. 비교적 큰규모의 황서사육실과 쥐사육실을 건설 하기도 하였다. 삽시간에 731부대의 지상과 지하는 수천수만 마리의 쥐들이 욱씩거려 731부대는 말그대로 쥐부대였다. 9. 세균 생산 731부대는 대규모 세균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페스트균에 대한 연구외에도 상한, 콜레라, 탄저, 홍역등 몇십 종 전염병균도 연구하였는데 그생산 능력과 수량이 많기도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이다. 전731부대 대원의 말에 따르면 1941년 5월 제4부 제1과 대위의 명령으로 제4부의 위해 비탈저균. 서역병균을 모두 P Kg제조 하였고 1942년 7~9월에 돌연적으로 상한 콜레라균을 약 70Kg을 제조하여 항공편으로 남경1644부대로 보내 중국군민을 살해하는데 사용했다함. 전대원의 증언에 따라 18명이 150개 석유통에 벼룩을 번식시켜 배양한 900cc벼룩과 200마리 쥐를 동시에 상덕지구로 보내 중국군민을 살해 하였다고 함. 전731부대 노무자의 증언에 의하면 731부대가 상한균 전파하는 매개물인 이를 얻기위해 년장자를 보살펴 드린다는 명의로 나이 많은 노무자를 음침한 방에 가두고 겨울이든 여름이든 옷을 갈아 입지 못하게 하고 목욕을 못하게 하면서 그들의 몸에서 이가 번식되게 하였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일본인이 매일와서 이를 일정수량씩 거두러 갔다. 10. 세균무기 세균무기를 일력실전에 사용하기 위해 이시이 시로는 직접 도세균폭탄을 설계하였다. 이런 폭탄은 폭발력이 작아 세균의 생존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후 이시이 시로는 유리제 세균폭탄을 연구제작하였는데 미처 생산에 도입하지 못한채 멸망을 맞이하였다. 731부대는 세균전쟁을 계획하면서 각종 세균무기 제조와 저장에 세밀한 연구와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한편 간첩, 암살행동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을 위해 독탄두를 특별히 제작하였고 한편으로 권총식, 지팽이식, 만년필식, 완구식 소형무기도 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병기반이 전문생산, 조립한 소형 암살병기(무기)중의 각종 세균무기이다. 11. 야외실험 궁극적으로 세균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731부대는 실험실내에서 세균무기를 실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종종 실험하였다. 그들은 동북의 동녕, 경동, 도돈소, 아성, 안달 및 그 부근 3Km 떨어진 성라구등 여러곳에 많은 야외 실험장을 만들어 늘 활인(산사람) 야외실험을 하였다. 12. 세균전 731부대는 중국침략 일본작전을 협력하며 여러차례 "원정대" "음모파괴반"을 조직하여 전쟁에 가담하였으며 중국의 많은 지방에서 세균무기를 사용해 수많은 중국군민을 살해하였다. 1939년 8월. 731부대는 중좌를 대장으로한 "용감대"를 결성한 일본과 소련의 교전지인 노문한으로 비밀리에 접근하였다. 전쟁중 그들은 대량 세균폭탄을 발사하였고 전쟁에서 패하여 철수할 때 용감대 는 하라하강의 상유에 상한등 세균을 살포하여 수원을 오염시켰다. 그 결과 많은 쏘련과 몽골 군인들이 중독되었고 가축들이 대량 죽어 소련몽골군이 막대한 손실을 보게되었다. 1940년 10월 27일에는 731부대와 남경 1644 세균전부대가 협력하여 녕파지구에 페스트균을 대량 살포하여 녕파지구는 적오도 106명이 서역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 녕파서역 피해자중 유일 생존자인 전귀법노인에 의하면 731부대는 한편으로는 세균을 살포하고 한편으로 방역명의로 병역지역으로 들어가 중국인을 가해하였다. 1942년 8월 원정대원들은 머리에 방호마스크를 쓰고 몸에 방역복장을 차린채 절강 이오현 승산촌에 들어가 그마을에 사는 이취봉의 병균에 감염된 며느리를 마을밖으로 강제로 끌고가서 그 자리에서 복부를 해부하고 내장을 꺼내 세균전염효과를 검사하였다. 1941년 봄에 731부대 제2부 부장인 대좌가 원정대를 인솔하여 호남상주지구에 서역벼룩을 공중살포하여 중국인 400여명을 살해 하였다. 731부대는 전쟁에서 처음으로 세균무기를 사용하면서 준비부족과 경험부족으로 자체 1개사단의 관병도 세균감염당한 사례가 있었다. 이시이 시로는 그래도 세균무기 사용에 공이 있어 장려를 받았다. 13. 죄증회멸 1945년 봄과 여름. 항일군민과 국제 반파쇼의 타격하에 일본군은 연속패배하기 시작. 731부대도 도망준비를 서둘렀다. 이시이 시로는 일면으로는 남아서 지킬인원을 선발(다시 돌아 올 것을 대비)하고 일면으로는 죄행을 없애기위해 시설을 폭발시키고 조증을 소각시켰으며 감옥에 감금중인 최후 400여명의 설험대기자들을 독가스로 살해한 뒤 시체를 사전에 파놓은 8개 구덩이에 끌어다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버렸다. 불에 탄 시체를 당장 묻어버리기도 하고 포대(마대)에 담아 송화강 물속에 던지기도 하였다. 이시이는 무류 죄행을 증명 할 수 있는 서류들을 모조리 소각하고 산 사람으로 실험하여 얻은 극비자료는 몸에 지닌채 사위가 운전한 비행기를 타고 조선을 경유해 일본으로 도망 했다. 14. 무고한 사람을 가해 731부대는 패배하여 도망하는 와중에도 고의적으로 불을 놓아 페스트균을 지닌 쥐등 동물들을 내쫓아 1946년 평방지구에 페스트 전염병을 유행케 하여 10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5. 역사의 심판 세균전쟁에 참여하여 반인류 활동에 종사한 일부 전쟁범들은 끝내 역사의 재판대에 올라섰다. 소련 버리군사법정과 중국 심양재판석에서 그들은 머리숙여 자기들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 정의와 양심의 실종 731부대가 패배한 후에도 그들은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시이 시로는 미국군의 두둔하에 모든 연구자료를 미군에 제공하여 보호를 받았다. 그후 한반도전쟁에서 다시 무기를 사용함. 망국의 역사를 기억하라 유태인은 히틀러(독일군)가 동족을 학살한 사건을 매년 기념한다고 합니다. 독일군도 일본처럼 세계대전 당시에 유태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이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인체의 수분 비율, 곧 인체가 70%의 수분으로 이루어졌다는 등의 사실은 독일의 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라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한 가지 차이점을 보입니다. 둘다 반인륜적인 악행을 저질었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가지지만 독일은 그것을 바탕으로 일정부분 과학에 기여를 했으며 전후에 전범을 강력하게 처벌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미군의 보호 속에 진실을 감추고 전범의 처벌도 최소화하며 패망의 그늘을 벗어났습니다. 우리 측 입장에서 봤을 땐 사람을 대상으로 그런 비인간적인 실험을 한 일본이나 세계평화라는 허울좋은 이름을 내걸고 응징하러 왔다가 어부지리로 실험결과들을 가로챈 미국이나 그밥에 그나물입니다. 유태인들이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이유는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유태민족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일제의 잔학한 억압과 수탈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민족의 자주성을 잃지 말자고 되새겨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며, 우리가 이 끔찍한 이야기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출처 :
http://cyplaza.cyworld.com/S26/20070816034015925546 이런 글 볼때마다 일본 너희를 좋아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