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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세탁소의 폐업
게시물ID : lovestory_476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꽃머슴
추천 : 16
조회수 : 11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0/31 00:25:13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 나와 종종 걸음으로 걸었다.
집에 가자마자 차 키를 집어 들고 세탁소로 달리려는 참이다. 며칠 내내 전화를 받지 않던 주인 아저씨를 만나면 심하게 쏘아붙일 독한 말들을 만들어 내면서 걸었다. 장사를 못해서 가게를 닫게 되었으면 가게를 정리하기 전에 옷을 맡긴 손님들에게 폐업 사실을 알려주고 옷을 찾아가라고 하는 것이 도리 아니냐? 혹은, 조용히 몰래 폐업한 뒤에 손님들의 옷을 몰래 팔아 치워 잇속을 챙기려고 했던 것 아니냐 따위의 말들이었다. 시동을 걸고 1km의 거리를 마치 서울-대전의 거리처럼 달렸다. 좁은 골목 사이에 자리잡은 이 세탁소는 주변 세탁소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우리는 이 세탁소를 애용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옷 찾는 날짜를 어긴다거나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지난 번의 일들까지 생각나서 화가 더했다. 이윽고 세탁소 앞에 도착했다. 다행이 불이 켜져 있다.

나는 씩씩거리며 가게 앞으로 다가섰다. 가게 문에는 연습장을 찢어 매직으로 ‘폐업’이라고 휘갈겨 놓은 종이쪼가리가 붙어 있다. 가게 문을 열었다. 아저씨가 안 보인다. 대신 내 또래의 여자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나를 맞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
“아, 저…… 옷을 찾으러 왔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XXX 입니다.”
“아! 여러 벌 있어요. 잠시만요, 제가 곧 내어드릴게요.”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세탁소 천장에 즐비해야 할 옷들 대신 빈 공간들이 천장을 메우고 있었다. ‘콤-퓨타 드라이 클리닝’이라는 이름이 붙은 큰 기계도 동작한지 한참은 되어 보였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저어…… 아저씨는 안 계신가요?”
“그게…… 두 달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
“아버지께서 세탁물과 고객 연락처를 제대로 기입해놓지 않으셔서 저희가 정리하면서 찾아드리고 있었어요. 자, 다 찾은 것 같은데요? 8벌, 맞으시죠?”
“아, 네……”

가슴이 먹먹했다. 뺨을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았다. 아저씨를 뵌 것은 약 3달 전. 만삭인 아내와 함께 겨울 옷을 맡길 때였다. 그때 뻥튀기를 나누어 주셨다. 일이 정확하지 않았어도 언제나 푸근한 미소와 구수한 말투로 손님들을 맞아주시던 아저씨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나를 보며 엷은 미소를 띄웠다. 한 두 달 후에 가게를 정리해서 다시 세탁소를 운영할 테니 그 때도 찾아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저씨였다. 그 말투와 얼굴은 세탁소 아저씨 그 자체였다.

옷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부끄러웠다. 나라는 인간은 왜 이 모양인가. 그까짓 겨울 옷, 없으면 없는 대로, 필요하면 사서 입으면 될 것 아닌가? 고작 옷 몇 벌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칼을 준비하고 또 날을 세우고 갈았던 내가 너무 부끄럽고 싫었다. 더군다나 아기를 키우는 아비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답답하고 먹먹한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담배 두 가치에 불을 붙였다. 한 가치를 나뭇가지 위에 올려 두고 끝까지 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옷을 잘 돌려주셔서 고맙다고, 나쁜 마음 먹어서 죄송했다고, 부디 편히 쉬시라고 말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아들 녀석이 나를 보고 소리 내어 웃는다. 이제 곧 ‘아빠’라고 할 것 같다. 죄스럽고 답답하고 무거웠던 내 마음이 어디론가 흘러가려고 할 때, 우리 세 식구의 환한 웃음소리가 집안과 내 마음을 채운다. 두 종류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나나 우리가 아닌 누군가의 죽음은 분명 우리의 삶과 함께 존재하고 또 함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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