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 생명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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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목소리의 형태'라는 작품은 왕따라는 상처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예민한 주제인 만큼, 본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작품임을 알려드립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와 '고독'이라는 단어는 언뜻 보기에 같은 뜻인 것 같지만 사실 '고독'쪽이 더 깊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단순히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과 달리 고독이라는 감정은 자기복제의 욕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나의 진심을 완전히 이해해 줄 사람도 없기에 느끼는 근본적인 감정이죠.
그러면 우리가 고독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진심을 전하고 나 또한 타인의 진심을 전해받을 수 있어야겠지요.
여기,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말이 아닌 글과 몸짓의 언어로 진심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소리의 형태' 작품 소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위 그림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애게 여러분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일본에서 쓰는 '소리 성'자는 声(신자체)으로 표기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공식 타이틀엔 聲이라고, 구자체(한자의 정체자)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표기한 이유는, '소리 성'자의 정체자엔 又(또 우)자가 들어가 있죠. 이 글자엔 '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작가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마음을 전하는 방법에는 声(소리), 耳(귀)가 아닌 다른 것도 있다는 뜻에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초등학생 '이시다 쇼야'는 매일 친구들과 함께 개천의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등, 장난을 치며 지내던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태중 감염에 의해 청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여자아이 '니시미야 쇼코'가 전학을 오게 됩니다.
쇼야는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학교에서 앞자리의 쇼코를 놀림감으로 삼게 됩니다.
반의 다른 아이들은 쇼코를 처음엔 친절하게 대해 줬지만, 점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고
학교 합창대회에서 노래를 못 하는 쇼코가 쓸데없이(...) 열심히 하는 바람에 합창대회를 망쳤다고 몰아붙여
쇼코에 대해 완전히 돌아서게 됩니다. 그 이후로 쇼야가 쇼코를 괴롭히는 것을 방관하고 심지어 부추기기까지 하죠.
장난의 강도는 이제 애들 장난에서 벗어나 심각한 지경에 다다릅니다.
아침마다 쇼코는 일찍 등교해 책상에 써 있던 악담들을 걸레로 닦곤 했습니다.
쇼코의 보청기가 계속 망가지는 것에 수상함을 느낀 쇼코의 어머니는 쇼코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판단해 학교에 전화를 하고
담임 선생님은 주범이 쇼야라 판단하여 쇼야에게만 책임을 묻습니다(여기서 반 아이들은 한 명씩 책임을 회피합니다).
이후 쇼코는 다시 전학을 가게 되고, 쇼야는 쇼코를 전학가게 만든 나쁜 놈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왕따가 됩니다.
쇼코가 전학간 다음 날 등교한 쇼야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닫습니다.
매일 아침 쇼코가 닦던 책상은 쇼코의 것이 아니라 쇼야 자신의 책상이라는 사실을요.
쇼야는 그제서야 후회하며 울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도 자신을 기억하는 친구들을 의식해 스스로 아웃사이더 생활을 지속하던 쇼야는
더 이상 살기 싫다는 마음에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쇼코에게 사과하고 죽겠다는 마음에 자신의 물건을 판 돈과 알바비를 모아
주무시는 어머니의 머리맡에 놔 두고 집을 나와 수화 교실로 향하게 됩니다.
수화 교실에서 쇼야를 마주친 쇼코는 도망치고, 그런 쇼코를 따라가던 쇼야는 넘어지게 되는데
넘어진 쇼야에게 다가온 쇼코는 손바닥에 글씨를 쓰며 '어째서?' 라고 묻습니다.
이에 쇼야는 초등학교 때 쇼코가 놓고 간, 너덜너덜해진 노트를 전해주며 수화로 '놓고 간 거'라고 말합니다.
이에 쇼코는 놀라며 '어째서 수화를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묻고 쇼야는 수화를 배웠다 말하며 노트를 전해주려 하는데
노트를 전해주며 자기가 했던 행동들이 하나하나 떠오른 쇼야는 자기가 아직 죽을 자격이 없다 되뇌이며 쇼코에게 사과를 전하고
쇼코는 쇼야의 손을 일단 잡아줍니다.
여기까지가 내용의 인트로, 전 7권 중 2권 초반부까지의 내용입니다.
이 이후부터가 본론이라고 할 정도로 친구들과의 재회와 갈등이 촘촘히 얽힌 스토리가 이어지게 되는데요.
일단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면서 줄거리 소개를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친구라는 게 뭘까. 사람은 언제부터 타인을 친구라고 인식하는 걸까?
단둘이 이야기했을 때?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을 때?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쟤네는 알까?
친구라는 게 뭘까."
"그게 꼭 그렇게 정의를 해야 하는 건가?
이시다, 난 우정이라는 건 말이나 이치...그런 걸 초월한 곳에 있다고 봐."
쇼코가 손을 잡아준 이후에도 쇼야는 '자기가 쇼코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계속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있어 자격이 어떻고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끌리게 되는 건 이성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쇼야와 쇼코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왜인지 모르게 불편한 기분이 듭니다.
"저기, 네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 봤자 행복했어야 할 쇼코의 초등학교 시절은 돌아오지 않아."
"그래서 그 죄책감을 원동력 삼아 넌 포기 안하고 열심히 노력한다 이거야?!
그 다음은 뭔데? 의무감이야? 설마 사명감? 재수 없어!"
그렇습니다. 이 말들을 하는 쇼코의 가족들은 불편함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쇼코가 심한 괴롭힘을 당한 건 독자와 쇼야의 옛 친구들이 모두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회상하는 방식이 아닌, 순행적인 구성이 이 작품에선 더 위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어떡하면 자신이 옛날보다 성장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혹자는 이 작품이 왕따 문제에 대해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예전의 일진이 반성하면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은근한 일진 미화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요.
(이 문장은 나무위키 '목소리의 형태'문서의 서술을 참고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쇼코가 당한 괴롭힘을 회상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극의 처음에 두고 스토리의 일부분으로서 가감없이 보여줬고
예전의 가해자들이 보여주는 멋진 모습보다는 피해자였던 쇼코의 선함과 자기애적 측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함으로써
그런 오명은 피할 수 있지 않나...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여기까진 주관적인 생각이었고, 작가 본인도 '답을 찾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만화이기 때문에 논의의 여지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분들이 봐 줬으면 하는 만화이기도 합니다.
'목소리의 형태' 소개글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