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이 29일 새벽 일본과의 아시안컵 3~4위전이 끝난 후 사임을 발표했다. 취임 초 자신이 세운 목표였던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고 팬들의 기대가 큰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 사퇴의 이유였다.
지난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1년 1개월 동안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베어벡 감독은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지도자였다. 2002 월드컵과 독일 월드컵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독에 선임됐던 베어벡 감독의 공과(功過)를 짚어보자.
▲ 공격 사라진 불안한 수비축구
분명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투혼을 보였다. 마지막 경기인 만큼 배수진을 쳤고 그 결과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승부차기 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경기를 포함해 과정을 찬찬히 짚어보자. 대표팀은 8강전부터 3경기서 360분 동안 무득점에 그쳤다. 90분 경기로 환산하면 4게임에 해당된다. 그만큼 한국의 공격이 실종된 것이다. 이를 베어벡 감독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전술을 수립하는 감독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비력도 문제가 있었다. 비록 기록상으로는 6경기에서 3실점으로 경기당 0.5골에 불과하지만 내용이 좋지 않았다. 한국의 수비라인이 가장 크게 흔들렸던 것은 바로 일본과의 경기에서였다. 이전 경기까지 11골을 넣었던 일본은 이날 경기에서도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스트라이커가 수비를 달고 나오는 동시에 전방으로 침투하는 2선 공격수들의 모습은 한국 수비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베어벡 감독의 수비수 기용이 잘못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원래 베어벡 감독은 김동진(제니트)과 김상식(성남)을 중앙 수비수로 기용해왔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지자 아시안컵을 한 달 남겨두고 수비수 전체를 바꾸는 모험을 단행했다.
지난 6월 2일 네덜란드전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나선 김진규(서울)-강민수(전남) 조합은 단 3경기만 뛰고 아시안컵에 임했고 결국 흔들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게 된 것이다. 물론 김진규가 서울로 이적하기 전까지 같은 소속팀과 올림픽대표팀에서 뛰기는 했지만 이들을 아시안컵 코 앞에서야 중용한 것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 새로운 피 발견으로 세대 교체 가능성 열었다
일단 베어벡 감독이 가장 잘했던 것은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맹활약한 염기훈(울산), 김치우(전남), 오범석(포항)은 베어벡 감독이 아시안게임을 통해 중용한 선수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올림픽 대표팀의 신예 선수인 이근호(대구), 한동원(성남), 김창수(대전) 등도 베어벡 감독이 K리그를 관전하며 발굴한 선수들이다.
신예 선수들의 발굴 및 성장은 한국 축구의 선수층을 탄탄하게 해주었다. 염기훈과 이근호는 기존 대표팀 선수들과 경쟁할 만큼 부쩍 성장했다. 부쩍 성장한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역시 기존 대표 선수들을 긴장하게 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항상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새로운 선수를 눈여겨보고 테스트를 하며 선수를 발굴한 것은 베어벡 감독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