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육영수의 영화 대결
‘유신의 추억’과 ‘그녀에게’ 개봉 박두!
김종철·언론인 | [email protected]
2012년 10월 17일은 박정희가 ‘유신’을 발표한 지 만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역사적인, 아니 ‘반역사적인’ 날을 앞두고 흥미진진한 문화적 사건이 펼쳐지고 있다. 박정희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와 육영수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가 12월 19일에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흥행 대결’을 벌이게 되리라고 한다.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 노웅래는 지난 8일 ‘영화 <그녀에게> 관련 보고’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그가 국회의 모 의원실에서 발견했다고 밝힌 문건에는, 작성자가 지난 7월 9일 영화 제작사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과 함께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박근혜를 위한 홍보방안이 담겨 있었다.
“문건에는 영화 <그녀에게> 홍보 효과를 구체적으로 ‘박 후보의 딱딱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음. 육 여사 역의 배우 한은정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유권자들에게 영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2030세대에 육 여사의 이미지를 전달해야 한다’, ‘박 후보가 영화 촬영 현장을 방문해 배우들을 격려함’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미디어오늘>, 10월 9일자)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가 유신의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최태민 씨가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그 문건에는 육영수의 88회 생일인 오는 11월 29일에 맞춰 영화를 개봉할 예정인데 예산 45억 원 가운데 25억 원 정도가 들어왔다고 적혀 있었다. 45억 원이라면 블록버스터 급은 아니지만 상당한 규모의 극영화 한 편을 제작할 수 있는 돈이다.
노웅래가 <그녀에게> 관련 문건을 공개한 바로 이튿날 공교롭게도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서울 신문로의 인디스페이스에서 오전 11시에 시작된 발표회는 <유신의 추억> 예고편 상영으로 막을 열었다. 제작을 맡은 M2픽처스(대표 김학민)는 이 영화의 기획의도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올해는 1972년 10월 17일 이른바 ‘10월 유신’이 선포된 지 40년째 되는 해이다.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구집권의 야욕을 위해 민주헌정질서를 유린한 뒤 우리는 야만과 암흑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유신독재에 맞서 목숨을 던지며 싸웠던 민주열사들의 이름은 잊혀져가고 고문과 구속을 각오하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은 이제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과거의 기억은 어슴푸레 잊혀져 가고 있다. 젊은 세대는 아예 ‘유신’이란 말조차 모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
유신독재 시절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의 창씨개명)의 전성시대’였다. 그는 혈서를 쓰고 초등학교 교사에서 일본의 괴뢰 만주군 장교로 출세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장교로 변신했다. 남로당원에서 반공의 기수로, 군인에서 반란군 우두머리로 탈바꿈하여 대통령까지 지냈다. 그는 군대를 동원해 헌법을 고쳐 세 번째 대통령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1년 만에 또다시 자신이 만든 헌법을 파괴하고, 종신 대통령의 자리에 앉았다. (·····)
이 영화는 이 사람의 겉과 속, 생각과 말, 행동과 실천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 그리고 그의 전성시대에서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엄혹한 야만의 세월을 견디며 좋은 세상을 만들려 애썼는지를 스크린에 담으려 한다.”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는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식의 다큐멘터리를 지양’하고, ‘독재자 박정희의 야망과 야만적 행태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과거의 색 바랜 기록 필름을 바탕으로 관련자들의 증언과 새롭게 바뀐 역사의 현장을 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작품의 의미성을 바탕으로 하되,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지향하면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통렬하지만 저속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우리 겨레 고유의 전통음악인 판소리와 현대 대중음악인 랩을 접목시키는 특이한 시도를 하고 있다. 판소리는 ‘민주화운동권의 소리꾼’ 임진택이 맡는다. 에필로그에는 유신독재 희생자들의 혼을 달래는 ‘넋풀이 춤’이 들어간다.
이 작품의 제작위원으로는 전국 여러 대학의 민주동문회를 비롯해서 이한열기념사업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민변, 사월혁명회, 전태일재단, 한국작가회의, 기독교, 천주교, 학계 등의 구성원 550여 명(10월 9일 현재)이 참여했다. ‘박정희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화문에 탱크를 몰고 들어온 10월 17일’을 상징하는 뜻으로 제작위원을 1,017 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유신의 추억> 제작비는 1억3천만 원 정도라고 하니 <그녀에게>의 45억 원에 비하면 3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육영수가 박정희보다 훨씬 더 큰 영화에 나오는 셈이다. 이 작품은 오는 10월 25일쯤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사회를 연 뒤 시중에서 대중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그녀에게>보다 한 달 앞서 선을 보이는 것이다.
<그녀에게>가 11월 29일에 예정대로 개봉되면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박근혜가 ‘깨끗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어머니 육영수를 참으로 닮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어머니는 저렇게 부드러운데 딸은 왜 그렇게 독선적이고 ‘불통’스러울까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유신의 추억>이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다큐메터리인 데 반해 <그녀에게>는 극화(劇化)한 창작품이라는 점이다. 각본과 연출에 따라 육영수의 인품과 이미지가 생시보다 훨씬 미화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유신의 추억>과 <그녀에게>가 한국영화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는지가 궁금하다. 박정희 영화는 독립극장으로 가고, 육영수 영화는 복합상영관으로 진출해서 관객 동원에서 큰 차이를 보일까? <유신의 추억>이 <그녀에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관객을 동원한다면 대선후보 박근혜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참고 삼아 <유신의 추억>이 상영되는 기간에 열릴 중요한 행사를 소개하겠다. ‘10월 유신’ 40주년을 맞이해서 민주화운동권의 수십 개 단체는 10월 17일부터 27일까지를 ‘유신독재 바로 알리기 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유신독재 부활 저지 출범의 날’(17일), ‘유신독재 항쟁의 날’(18일-민청학련 등 긴급조치 사건들과 부마항쟁, 김재규 사건 재조명), ‘유신독재 학문 탄압의 날’(19일), ‘유신독재 문화예술 탄압의 날’(20일)로 일정이 잡혀 있다. 21일부터 24일까지는 ‘노동 탄압의 날’, ‘종교 탄압의 날’, ‘학원 탄압의 날’, ‘언론 탄압의 날’ 행사가 이어진다.
‘유신독재 상속자의 날’인 25일에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등에 대한 풍자 토크쇼가 서울광장(예정)에서 열린다. 26일에는 ‘유신독재 추모의 날’ 행사가 옛 서대문구치소 사형장 앞에서 치러진다. 마지막인 27일(토)은 ‘2012년 점령의 날’이다. 개그맨 노정렬의 사회로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민주소풍’, ‘패러디 유신찬양 웅변대회’ 등이 펼쳐진다.
올해의 ‘10월 유신 기념 주간’은 비장하고 엄숙하게 시작되어 신명과 희망이 넘치는 분위기로 끝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실체와 ‘유신독재’의 야만성을 거의 모르는 2040세대에게 소중한 ‘역사 판단’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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