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역 중인 한 선교사의 일기-
오마이뉴스에서 가져왔습니다.
신해철씨 기사를 비롯해서
언론에 조금씩이나마 최근 여론이 반영되어 가는듯하네요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4739&ar_seq=1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배형규 목사의 피살을 계기로 더욱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염원하는 가운데, 한국 교회의 선교 방식에 대한 논란 또한 뜨겁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긴급 구호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 게재된 것입니다. <편집자 주>
2007년 7월 20일 아침 6시,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몸살과 오한으로 밤새 잠을 설치다 어렴풋이 든 잠이어서 금방 받지 않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끊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대사관 강아무개 영사의 전화였다. 이른 아침에 대사관으로부터 전화라, 심상치 않은 듯하여 곧 전화를 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른 아침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한국인들이 피랍되었다는 정보가 있어서 확인차 전화 드렸습니다. 단기 방문객들 가운데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곧 전 지역에 확인해 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강 영사와 통화를 마치자 혹 싶어서 칸다하르로 전화를 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시는 지부장이 이날따라 잠에 덜 깨신 듯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문의를 드렸는데, 혹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 한 팀이 오도록 되어 있었는데,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있는 분당 샘물교회 단기팀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해결이 된다 해도 그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후폭풍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할 복잡한 문제다.
아프간이 가장 큰 피해자…한국 선교 위기관리 능력 떨어져
이번 일로 우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결과가 나오든 결국 그 내용은 부메랑이 되어 아프간에 피해를 입힐 것이다. 아프간은 여전히 위험하고 불량 국가라고 전 세계가 한번 더 확인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 선교의 위기라는 것이다. 고 김선일 선교사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 교회의 위기관리 능력은 제로 수준에 가깝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능력이 아직은 미숙하다. 이번 사태로 인해 선교의 문이 닫힐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단순논리만 붙잡고 무분별하게 뛰어들 세력이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사건이기에 어디서부터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니 인간적인 솔직한 심정은 당장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 살게 되더라도 더 이상 아무 방문객도 올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입국이 금지된 상태에서 언론사들은 연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해온다. 기독교 방송사들도 "선교사님, 선교사님" 하면서 연일 현지 상황에 한마디라도 듣고자 목을 맨다. 내가 선교사인지 특파원인지 착각이 든다. 어쩌면 이 기회에 생방송 9시 뉴스에 이름 석 자라도 올리고 싶은 숨은 공명심 때문일까? 기자도 아니면서 괜히 목에 힘주고 이런저런 개인 평까지 섞어가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장단을 맞추어본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무분별한 한국선교 전략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의 희생양인가? 작년에 연이은 비기독교인들의 엄청난 비난을 단지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이들의 편견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선교의 길은 계속 가야 한다는 헌신만을 다짐하기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가 단순논리로 해석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지난 6년 동안 수많은 단기팀들이 이 곳을 지나갔다. 이번 팀보다 더 많은 인원의 단기팀들도 수없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번 팀이 현지 문화에 돌출되는 행동으로 주목받을 짓을 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현지 사정에 밝은 3명의 한국인 선교사의 인솔 하에 이동을 하지 않았던가? 다만 카불-칸다하르 길은 아침에 출발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부분은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는다.
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여러 단기팀 중에 유독 이 팀이 희생양이 되어 시대의 집중을 받고 있는 것은 이 팀이 지녀야 할 십자가일 수밖에 없다. 주님은 그런 아픔을 이 팀에게 허락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인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문제였고 그것이 어쩌다 보니 '샘물팀'이라 한다면, 이곳의 선교사들은 그동안 안전 불감증 속에 단기팀들을 맞이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 팀만을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앞으로 이 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 누군가는 같이 져주어야 하고 그 누군가에 한국교회 전체가 동참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그런 준비가 안 된 듯하여 더 걱정이 앞선다.
둘째 녀석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늦은 시간이지만 한국인 인질들의 협상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착잡한 심정으로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는 사무실로 다시 가서 계속 생각했다. 도무지 편한 마음으로 집에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성경은 믿음을 요구하는데 믿음이 자꾸 없어진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울분을 터뜨리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이 안 되는 나의 미천한 영성이 안타깝다.
같은 시간 서구 선교사들은 동방에서 온 믿음의 동료들을 위해 특별 저녁기도회로 모이고 있다. 특별한 관계도 없는 23명의 영혼들을 위해 사건 직후부터 24시간 기도 체인을 만들어 자원하며 기도해주는 그분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늦은 시간에도 누군가는 골방에서 기도의 합주를 아버지께 올려드리고 있을 것이다.
▲ 단체 '개척자들'은 파키스탄 등 분쟁 지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평화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 개척자들
한국 교회는 큰소리 내어 섬긴다
과연 한국선교사들 가운데는 그만한 영적 책임감을 가지고 선교지를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한국교회 가운데는 그만한 영적 성숙함을 가지고 선교에 임하고 있을까? 그런 책임감과 성숙함보다는 열심과 비전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았는가?
120여 년 전 꽁꽁 마음 문이 닫혔던 조선 민족을 섬기기 위해 청춘의 몸으로 왔던 벽안의 선교사들. 때로는 배우자를 잃고, 자식을 잃고, 부모를 조선 땅에 묻으면서도 그저 말없이 수고하고 눈물 훔치던 그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앞 다투어 자랑하는 제2의 선교 파송대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빛도 소리도 없이 섬긴 방면에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소리를 내어 섬기고 있다. 자신의 비전과 욕망조차도 주님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떼를 쓴다.
작년 이맘 즈음 2000명의 인원으로 평화 행진을 하려고 했던 분들에게 묻고 싶다. "안전 문제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음을 장담하셨는데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그들은 가만히 있는 것일까?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이 남아있기에 미안함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행사에 반대하던 아프간 선교사들을 겁쟁이라고 비난했던 단체 대표께서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이 대표로 있는 단체의 선교사들이, 그 단기팀 운영의 전략적인 선교사들이 인솔을 하다가 벌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최소한의 양식이 남아있다면 선교계에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라고… .
그럴 용기가 없다면 타선교 단체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인들이 오늘 석방된다고 하는데 알고 계세요?"라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발언만큼은 안 해주셨으면 한다.
지금은 떠나있지만 10년을 넘게 몸담았던 단체이기에, 이생을 다할 때까지 지울 수 없는 마음 한편의 그리움과 애틋함이 배어있기에 호소한다. 그리고 조국 교회여, 조용히 아버지 앞에 침묵함으로 나아가자. 입을 벌려 악을 쓰지 말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보자. 안 느껴지면 안 느껴지는 그것을 붙잡고 애통해 하자.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회복하자. 우리의 속사람을, 한국교회의 내부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가득 채우자. 그것이 지금 당장 모든 기독교인들이 취해 야 할 최우선적이며 최종적인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협상 시간이 하루 더 연장이 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하루 더 공포 속에서 지낼 팀들이 생각난다. 잘 알고 지내던 자매의 얼굴이 스쳐간다. 우리 아이들이 무척이나 따랐던 자매다.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성장기를 겪으며 자라왔기에 지금의 고난도 잘 참으리라 애써 위안해본다. 어쩌면 협상이 며칠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딸이 내 앞에서 자고 있다.
사랑하는 딸들아!
너희들을 데리고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매서운 겨울강 바람을 건너 오직 믿음으로 아프간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곳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잠들기 전에 너희가 했던 말이 아직 귓전에 남아 있다. "아빠, 우리 정말 떠나야 해요?" 아직은 무엇이라 분명히 말하기 힘들고 그러나 곧 분명히 말할 시간이 오겠지만 아빠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시로 답을 대신한다.
언더우드의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의 일부 중에서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 프런티어의 긴장이 진하게 감도는 아프카니스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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