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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 결여 된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비판적 소고
게시물ID : sisa_3669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비나스
추천 : 4/3
조회수 : 588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3/02/27 22:16:01

나는 현재의 친노들이 친노의 껍데기를 쓴 가짜라는 것에 내기를 걸 준비가 되어 있다. 개혁당에 몸 담아 그 시절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나로선 현재의 친노들이 그 당시 친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근래에 친노들은 본질이 빠진 빈 껍데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왜?

 

본래 친노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로,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패거리 정치라는 삼김 정치의 부패를 넘어 정치 개혁 세력의 뉴 리더들로 급부상한 인물들이다(486). 마침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IT와 인터넷 문화가 생기면서, 낡은 정치에 신물을 내던 당시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노무현 후보 주변으로 몰렸고, 그들은 사회를 변화 시킨다는 순진한 믿음 하나로 노무현을 지지하며,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시대 배경과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이 맞물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노풍을 만들어 냈고, 선명한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노무현 후보를 중심으로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욕망을 투사하던 사람들은 곧 배반당하기에 이른다. 이라크 파병이었다. 본래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반미 정서에 읍소하던 대통령, 손 흔들기 위해 미국 방문은 안 하겠다고 단언한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얼마 안 되서 이라크 파병을 한 것이다. 당시 이라크 전쟁은 국제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것이 드러나, 미국 내 여론도 안 좋아지던 시기였고, 이라크에 파병했던 나라들도 자국의 여론 때문에 철수하던 시기였다.

 

이에 의해서 친노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였던 다소 이념과 가치를 중심으로 하던 사람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외 남은 친노들은 대한민국의 현실적 조건(미국이라는 강대국)을 거론하며 이라크 파병을 현실적 선택인양 두둔하고 있었다. 이 외 대통령은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노통을 끝까지 지지하며, 이라크 파병 반대는 계속해야 한다는 괴상한 문법들도 난무하던 시기였다.

 

이것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본래 사회 개혁, 거시적인 담론으로 변화를 바랐던 욕망들이 현실이라는 차가운 감옥에 갇힌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욕망이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를 변화 시키겠다는 믿음은 현실이라는 조건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철저히 외면당했고, 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법개혁을 말하던 노통은 선거 불법 자금이라는 덫에 걸려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치 한바탕 꿈에서 깬 것처럼 꿈의 기억을 지우면서 회의적인 현실로 돌아갔고, 정치(or경제) 개혁은 철없는 젊은이들의 주장처럼 여겨지고 말았다.

 

즉 욕망이 실패 한 것이다. 그것도 철저히.....

 

이제 이념과 가치를 대변 할 개념들이 사라지자, 대통령과 친노들은 조중동이나 한나라당 권력 따위의 것들로 대중에게 읍소한다. 이에 나온 게 차악론이다. 2004년부터 판 치는 걸 봤으니, 꽤나 오래 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들이 선거에서 떠들던 사회 변혁론 같은 것들은 거론되지 않고, 조악하게나마 한나라당 보단 나으니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치만 부동산 폭등과 신자유주의 문제를 야기시키면서 이런 주장도 힘을 잃게 된다. 대체 정치-경제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있는데, 무얼 가지고 차악을 이야기 할 것이냐라는 것이 대중의 의견이었다. 물론 초반의 높은 국정 지지도가 곤두박질 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차악론은 이라크 파병에서 시작 된 모종의 현실론의 변형이었다. 욕망을 선택하기 보단 현실론으로 빠지기 시작하면서, 사회를 변화 시키자는 욕망은 죽고 친노 정치 권력 그 자체가 대의인 거처럼 만들어 진 것이다. 요컨데 뭔가 변화 시키는 것이 대의가 아니라, 권력을 지켜내는 것이 대의인 거처럼 대의란 것이 전도 된 것이다. 핵심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었다.

 

이런 실패가 후에 대중들의 회의를 낮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명박을 찍었던 손에는 노통과 친노를 심판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젠 욕망의 정치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고(그것도 친노에 의해서 말이다. 친노는 내내 현실주의적 개념을 들먹거리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재비판했다. 만약 가치나 이념이 중요하지 않고 현실적 선택만이 중요하다면, 노통의 대연정 발언(한나라당과도 타협할 수 있다는 주장)을 못 받아들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먼저 이념과 가치를 우선으로 두고 현실적 전망을 바라봐야지, 그것이 없이 현실만 따지고 든다면 대체 뭣하러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하나?), 시대를 변화 시키자라는 것보다, 일단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에 기대 이명박이 당선 된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죽음이었고 친노들의 상징적 죽음이었다.

 

물론 이에(이명박 대통령을 찍은) 대해서 친노들은 이죽거리며 부동산이나 기타등등 천박한 대중의 선택을 비하하는 걸 잊지 않았다. 자신들이 이미 차악론을 거론하며 권력 중심의 천박한 사고들 팔아대던 과거는 잊고, (성장이라는 것에)지푸라기라도 잡으려던 대중의 선택을 비꼬고 비하한 것이다. 오늘날 국개론도 이와같은 친노의 ㅄ같은 사고에서 나온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떠난 친노들은 늘 그랬다. 부동산 폭등도 제 정부의 뻘짓은 인식 못하고 투기꾼들이 문제라며, 자신들의 정책에는 문제가 없는 거처럼 곡학아세의 태도를 보였고, 여하간 그들은 이라크 파병이든 뭐든 온갖 썩은 내가 풍기는 짓들에 대해서 현실적 상황이니 뭐니 투기꾼들의 문제니 뭐니 이런류의 주장들을 하면서 자신들 정권의 과오를 덮으려고 한 것이다.

 

물론 참여정부가 삼성 공화국이엇다는 것이 임기 말에 드러나면서, 친노의 저런 눈물겨운? 노력들이 자기 혐오를 불러 올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뽀록났지만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그들은 멍청하다.

 

자, 이런 소리를 늘어 놓은 건 486들의 등장과 사회 변혁 열기가 배반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 이후의 상황은 욕망이 죽은 상태의 정치였다. 안철수를 통해서 욕망에 불을 지핀 것은 사실이지만, 기성 정치에 밀려서 안철수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게 반 새누리당이라는 미래같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변화론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차악론으로 변형시켜 욕망을 죽게 만들었다. 

 

애초에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기대 한 것은 새로움과 정치(or 사회 경제) 개혁이었고, 안철수가 가지고 있는 상상적 이미지는 대중의 그런 열망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근데 그게 기성 정치 대립에 포획되자 욕망은 미끄러지고 반 새누리당이라는 차악론에 근거 한 주장들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물론 이 자체가 안철수의 한계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 정권(참여정부)의 실패에 의해서 한번 욕망의 실패를 겪은 사람들이 안철수를 지지 한 것인데, 그걸 또 다시 현실론으로 포획한 것이 친노 세력이었고 기성 정치의 틀이었다.

 

기성 정치 대립관은 이처럼 욕망이 죽은 정치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 예전에 변화에 대한 열망과 자기 확신에 찬 진보적 자유주의자들도 이번 대선에서 친노들에게 놀아났다. 온갖 사회 진보적 지식인들이 반 새누리당이라는 것에 놀아나 결국 패배를 맛 보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기본을 따지지 않고 현실 타령이나 하는 멍청한 패배자들이 국개론이나 물며 헛소리를 싸지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무엇이 본질적인 문제인지 모르겠는가?

 

사회를 변화 시키자, 사회를 해방 시키자, 미래 사회를 만들자라는 열망은 사라지도 멍청한 낡은 관념 대립에 몰두한 것 차제가 실패의 요인이고, 바로 이게 참여정부와 친노의 부채란 말이다. 이걸 인식하고 기성 정치의 틀을 떠나 새로운 관점과 동력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환상에는 관심이 없고 여야의 대립이라는 틀만 가지고 헛소리를 지꺼리고 있다. 그 틀 안에서만 친노라는 자의식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게 본인들이 말하는 대의와 어긋난 것이란 걸 알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박정희란 과거의 유물에 환상을 갖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수 우익이 자라나는 것이다. 차악은 바로 최악을 부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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