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침공당한 프로토스의, 남아버린 비참한 애국심 그것을 지탱하지 못하는
폐허와 모든것을 파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저그, 인간에게 배신당한 캐리건,
생존을 위해 모든것을 내던져야 하는 테란 세 종족의 장엄한 이야기는 그 당시 기술력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딫혀 일부분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크래프트는 최선을 보여줬다. 적어도 스타크래프트 부루드워 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나온 스타크래프트2는 팬심을 이용한 장난질로밖에 안보일 정도로
엉성한 스토리와 PC적 요소에 묻혀 그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켜버린 망작이 되고 만 것이다.
기술력과 연출력이 모두 충족이 된 시대에 나온 그 스타크래프트의 모습은 하잘것 없는 3D애니메이션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스타크래프트의 마지막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2 의 출시 이후 드디어 이 장엄한, 비열한, 협잡과 살인이 난무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끝을 드디어 보겠구나. 그런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그 끝은 단순한 클리셰 비틀기와
디즈니식 엔딩으로 마무리되고야 말았다. 나 역시 지브리 감성으로 모든 이야기의 끝이 흘러갔으면
하는 평화주의자(?)지만 적어도 스타크래프트는 그러면 안됐다. 끔찍한 실험을 자행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오페라와 클래식이 흐르던 아카데미 건물의 사운드와, 크립과 니다스 커널로 종횡무진 움직이던 저그,
무자비한 정화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던 프로토스는 온데간데 없고 그들은 점점 '인간성'을 중시했고
그것은 결국 '화합' 이라는 어정쩡한 결말로 스페이스 오페라로 시작했던 스타크래프트를
대충 마무리 하고야 말았다.
블리자드는 대중적인 컨텐츠가 지향점이였던 것일까.
내가 너무 게임에 대한 예술적인 욕구가 강했던 것일까.
워해머를 생각해보면 잠깐 이해되는 수순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더 좋은 흐름은 없었던 걸까.
뭐, 어른의 사정이 어쨌든간에 스타크래프트는 그러면 안됐던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슬퍼진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마우스 클릭질에 열중했던 2003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