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박근혜 후보의 소위 ‘과거사 정리’에 대하여
오늘 박근혜 후보의 소위 과거사 정리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동안 박 후보가 부친 박정희의 유산에서 벗어나 스스로 옭아맨 연좌제의 사슬을 버리고 독립적인 정치인으로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충고해온 우리들은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30여 년을 기다려온 결과 치고는 “(5.16과 유신쿠데타로)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정치 발전이 지연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한마디는 박 후보의 진심이라고 동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표현이지만, 어쨌든 그동안의 요지부동했던 태도에서는 어떤 의미로든 ‘진일보’한 표현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의 회견을 진심 어린 사과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우리는 박 후보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내용들이 너무나 많으며, 그런데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도 없이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 나가는 모습에서 사과 회견의 진정성에 대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먼저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박근혜 후보가, 지난 30여 년 동안의 소신을 갑자기 바꾸게 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요지부동이던 소신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 데는, 적어도 박 후보의 진정성을 의심치 않는다면 단순히 표 계산 같은 얄팍한 이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지한 성찰의 과정이 있었을진대, 오늘 회견에서는 전혀 이에 대한 언급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발언 내용도 없었다는 점에서 무엇을 근거로 진심 어린 사과로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는 당혹스러울 뿐이다.
또한 아버지 박정희를 대신한 사과에 앞서서, 박 후보 스스로가 그동안 소위 인혁당 관련한 두 개의 판결 운운하는 망언에 가까운 발언 등으로 유족들을 포함한 당시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가슴에 직접 대못을 박은 데 대한 사과 한마디가 없었다는 점도, 오늘 회견의 진정성을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헌법 가치 훼손에 대한 사과 한 대목을 제외한 회견문 전체가 여전히 그동안 “사과를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라는 배째라 식의 발언에서 한 발짝도 변하지 않은 논조라는 점에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박근혜 후보의 소위 과거사 정리라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을 최소한의 양보(?)로 방어하겠다는 정략적 발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진심 없는 사과에서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잘못 읽는 실수나, ‘내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라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으란 말이냐’ 운운의 발언은 차라리 애교스러운 수준일 것이다.
오히려 오늘 회견과 관련하여 새누리당 김재원 대변인 내정자의 베드로 운운하는 발언이야말로 진정 박 후보의 본심을 대변한 발언이 아닌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문제만 생기면 잘라내는 것으로 대처해온 박 후보 측에서 채 임명 절차가 끝나지도 않은 김 대변인의 내정을 취소할 것인지도 지켜볼 일이지만, 김 대변인 내정자가 전한 박 후보의 본심을 읽지 못하고 오늘의 회견을 진솔한 사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든 국민을 보면서, 새누리당과 박 후보 캠프 내에서 ‘개XX’들이라고 조롱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스러울 뿐이다.
2012년 9월 24일
유신 잔재 청산과 역사 정의를 위한 민주행동http://cafe.daum.net/minjuact/8geH/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