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들은, 실용음악과 출신 분의 경험담입니다.
다소 필력이 부족해서 저 편하라고 1인칭 시점으로 기술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 이야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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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X년, 나는 비교적 상당히 늦은 나이에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급 군악대를 가려 했지만 번번히 시험에 떨어지고 결국 일반병으로 입대를 하였는데
운이 좋게도 모 사단의 군악대원으로 차출되었다.
문제는 내가 드럼을 전공해서 당연히 드럼 파트를 맡게 될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사단 군악대 내엔 드럼 사수와 부사수까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실용음악과' 출신 이라는 것 때문에 차출된 것.
기존에 있던 드럼 파트 사수와 부사수는 전공자가 아니었고 그냥 취미로 드럼을 배웠을뿐인데
당시에 전공자를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뽑힌 인원들이었고
수 없이 갈굼을 받으며 겨우 한사람 몫 하나 싶었더니만 난데없이 '실용음악과 전공자'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나를 차출한 군악대장은 당연히 실용음악과 출신이라 기존의 두 대원들을 실력으로 압도하고
드럼 사수를 맡긴후 기존 두 명의 다소 못 마땅한 드럼 담당들을 전출 보내려 했는데 역시나 짬밥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일단 나는 실용음악과 출신이긴 하지만 '세트 드럼'에 특화되어 있었고
기존의 드럼 사수 & 부사수는 1년 동안의 혹독한 갈굼 & 연습으로 인하여 '스네어 드럼'에만 특화 되었던 것.
뭐가 다르냐 반문 하신다면 의외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아두자.
아무튼 군악대에서는 내가 잘하는 '세트 드럼'보다 기존의 두 드럼 담당이 잘하는 '스네어 드럼'이 훨씬 더 쓰일일이 많았으므로
나는 처치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
아무리 내가 나름 날고기는 전공자라도 '세트 드럼'을 연주할 일은 사단 축제를 포함해도 일년에 3, 4 번 정도였고
'스네어 드럼'을 연주할 일은 한 달에 최소 5번 이상.
즉 나는 별 쓸모가 없다는 뜻.
그로 인해 나는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게다가 기존 드럼 담당들의 갈굼과
- 그게 아니더라도 군악대는 원래 존나 쓸데없이 빡세게 군기 잡기로 유명하다 -
하마터면 자신들을 내쫓게 만들뻔한 원흉으로 낙인 찍혀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 별로 배우지도 못하고
(혼자 독학하려 해도 신병이 그게 가능할거 같은가?) 그저 하루하루 이유없이 갈굼 받기에 바빴다.
나름 기대하고 뽑아왔던 군악대장도 면담에서 '너 전공자라서 뽑았는데 자꾸 배우는거 늦으면 전출보낸다?!' 라는 말로 불안하게 만드는데,
안 그래도 기대와 달리 연습을 거의 못하다시피 해서 손발이 굳어가는걸 느끼고
여러모로 갈굼받고 힘들기까지 해
'연습도 못하는데 욕 먹어가며 굳이 군악대에 남아야 하나.......'
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백일휴가를 다녀오고 사단장이 바뀌면서 갑작스레 상황은 반전된다.
이유인즉슨, 새로운 사단장은 'Live 연주가 곁들인 연회'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분이었던것.
취임이후 대략 한 달쯤 지나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군악대를 불러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음주를 즐기는데
당연히 군가, 행진곡 같은 것만 주구장창 연습하던 군악대의 연주가 성에 안 찬것은 당연지사.
특히 스네어 드러밍에 특화된 기존 드럼 사수 & 부사수는 스네어 드럼이라면 모를까 세트 드럼을 연주하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와 드럼 존나 못치네' 소리가 나올 정도라 결국 세번째 연회 날, 드럼 스틱은 나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별로 손 발을 맞춰보지도 못해서 멜로디 파트는 지들끼리 알아서 코드만 맞춰 연주하고
나는 그저 일정한 박자로 중심을 잡아주는 위주로 드러밍을 했을 뿐인데
술에 꼴은 사단장님께서는 '그래 바로 이게 음악이야!'하며 기뻐하셨고 양주 한 잔과 특박까지 하사해 주셨다.
거기에
"야 군악대장, 그냥 아예 저 드럼치는 애 중심으로 밴드 하나 만들어봐라.
전공자라며? 확실히 전에 하던 놈하고는 차원이 다르구만 헛헛헛."
이렇게 되버린 것이였다.
지엄하신 사단장님의 명령하에 군악대장은 사단내의 실용음악과 출신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키보드리스트, 보컬이
있으면 찾아 보내라 공문을 내려 보냈고, 거기에 내가 몇 마디 보태서 음향 관련 경험자도 구하게 하였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원하는 인원들을 아마추어가 아닌 전공자 출신으로 모두 채우게 되었다.
당연히 전공자들만 모은데다 주로 연습하던 장르 음악 위주로 공연을 하다보니 - 물론 절반은 트로트였지만 -
기존 군악대의 연주보다 퀄리티는 월등히 좋았고, 군복무 하는 동안 손발 굳어지면 어쩌지 매일매일 한숨쉬던 이들이라
연습도 알아서 매우 열심히 하게 되었다. (거기에 아예 전용 합주실을 하나 내 주기도 하고!)
음향 관련 전공자 덕분에 사운드도 기막히게 뽑아내고 사단장님이 이 곡도 되냐 하시면
왠만큼 어렵지 않은 이상 2, 3일후면 상당한 퀄리티로 연주가 가능하니
우리팀은 사단장님의 이쁨을 듬뿍 받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얼마후 사단장님의 동기들과 부부 동반으로 '가든 파티'를 열고 거기서 공연을 했는데
극찬을 받아 여러 장군들에게 금일봉을 받고
(나중에 합쳐보니 총 금액이 무려 근 3백만원 ㄷㄷ - 다시한번 말하는데 이때가 199X년이다)
사단장님의 위상을 빛내게 했다는 이유로 더더욱 귀여움 받고 여러 특혜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금일봉의 1/3은 단 한 번의 단체 외박으로 증발하고, 1/3은 군악대장의 손에 들어갔고, 1/3은 장비 수리하고 소모품 사는데 썼다)
영관급 이상 장교와 상사 이상급 부사관만 이용이 가능한 사단 본부의 호프집도
일주일에 한 번에 한해서 우리팀은 이용할 수도 있었고,
외출 외박은 거의 원하는대로, 포상휴가도 분기마다 한 사람당 하나씩 나왔고,
무엇보다 경계근무는 물론 불침번도 안서고 훈련도 안 받고 그저 합주실에서 연습만 하다가
언제언제 공연해라~ 명령만 떨어지면 그것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거기다 공연 한 번만 하면 약간의 금일봉과 진수성찬 (먹다 남긴것이긴 하지만) + 술을 마실수 있다니!!!
당연히 기존 군악대원들은 배가 아파서 죽을라고 했지만 지들이 뭐 어쩔껴?!
가끔씩은 군악대장이 사단장님께서 하사하신 금일봉을 뺏어가고
연회에 자주 불려오던 한 간부의 부인이 울 팀원 한 명을 유혹하고 (물론 실패했다)
공연 전날 합주실에 빗물이 새서 약 100만원 상당의 우리팀 전용 믹서(음향장비)가 고장나
군악대장이 울며불며 일단 자비로 서울까지 가서 새로운 믹서를 사오는 등 크고 작은 일들도 있었지만
나름 편히 - 외출 외박과 휴가를 자주 나와 펑펑 쓰고도 되려 근 2백만원을 모아 -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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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분 전역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더니 온몸에 알게 모르게 트로트의 기운이 너무 깊게 스며들어
1년 가까이 엄청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무슨 뜻이냐 하면 뭘 쳐도 트로트 삘이 묻어 나오더라는 이야기.
덕분에 '밤무대에서 좀 날렸나봐?' 라는 소리를 수십번 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