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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 서태지와 검열, 그리고 우리 문화산업의 근현대사
게시물ID : sisa_2292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inSt.Ein
추천 : 1
조회수 : 4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9/23 01:13:20

서태지 7집을 듣다가 Victim이라는 곡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서태지씨가 자신의 곡 Victim이 방송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에 항의, 재심의 요청을 하며 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2004년에 써진 글이지만, 현 세태에 어찌도 이리 잘 부합하던지요. 글을 읽고 가슴 속에 뭔가 피어오르는 게 있어 서태지 씨가 쓴 글에 대한 일종의 첨언 형식으로 글을 달아보았습니다. 최근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자, 사회 각계에서 갈채를 쏟아내었죠. MB 대통령도 매우 자랑스럽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독립영화를 힘들게 한 것은 누구입니까? 독립영화에 지원을 끊은 것은 누구입니까? 기만적인 행태로, 보여주기식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제가 쓴 글은 그에 대한 분노도 한 몫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래는 서태지씨가 쓴 재심의 요청서입니다. 그 아래에 -로 구분되어진 글은 제가 쓴 글입니다.


VICTIM(희생자)에 대한 방송 재심의를 신청하며


서태지 7집에 수록된 제 곡 중 Victim이 MBC, KBS, SBS 등 공중파 방송3사로부터 방송부적합 결정을 받았습니다.

각 방송사로부터 통보 받은 Victim의 방송부적합 결정 사유는 ‘Victim의 가사 내에 낙태와 살인을 연상시키거나 묘사하는 표현이 있어 방송용 곡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각 방송사의 이와 같은 결정은 심의에 있어 제가 의도한 곡의 본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한데도 크게 기인한다고 판단하고 곡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여 재심의를 신청하는 바입니다.

방송부적합 사유로 제시된 가사를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그 뜻을 상세하게 부연설명 하고자 합니다.

 

 

Just another victim

너는 네 엄마에게 네 아빠에게
단지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건만
결국 퍼런 가위에 처참히 찢겨 버린
테러리즘에 지워진 아이야

 

 

1년간 약 3만명에 달하는 ‘성감별을 통한 여아 낙태’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으로서 위 가사를 통해 한국의 여성문제의 현실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여아라는 이유로 태어날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은 미성숙한 사회체제가 인간 개인에게 가하는 테러가 될 수 있음을 표현했으며 사회 시스템에 의해 희생된 개인의 생명과 그 존엄성을 표현하였습니다.

 

 

Sexual assault
넌 넥타이에 목 졸린 채 구토를 하는 너

 

 

Sexual Assault는 성폭행, 강간(rape) 등을 표현한 것이 아닌 폭넓은 의미의 ‘여성(性)에 대한 사회적 공격(폭력성)’, ‘성을 매개로 가해지는 체제의 억압’을 의미합니다. 또한 ‘넥타이에 목 졸린 채 구토를 하는 너’는 방송 부적합사유로 전달 받은 것처럼 ‘살인’ 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체제가 규정지어놓은 지배세력으로서의 남성(넥타이)에 의해 주체성을 거세 당한 채 그 고통으로 절규하는, 상처 받는 여성(너)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Victim은 단순히 현실을 비판만을 하는 것이 아닌 ‘이제 네가 잃어버린 너를 찾아 싸워야 해’, ‘너는 또다시 바로 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거야’라는 가사에서 보듯 긍정적인 미래를 확신하는 말로 끝맺어 회의적, 염세적이거나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여성이 사회의 주역으로 남성과 함께 세상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는 희망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는 곡입니다.


방송심의담당자 여러분, 그리고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1995년 말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이후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음악 창작자의 개성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발전의 길을 걸었어야 할 한국 대중가요산업은 불행히도 각종 규제와 제약들로 인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사 내용 중 일부분에서 사람에 따라, 또 관점에 따라 듣기 불편한 단어나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하여 방송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은 법으로 최대한 보장된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이며 결국 이는 세계 속에서 경쟁하여야 할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산업의 발전을 막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문화 발전을 이루어낸 세계 각국의 경우와 국내의 대중가요를 제외한 영화 등의 문화산업 발전의 계기를 되돌아 보더라도 창작자의 창의력과 다양한 개성의 표현이 그 시발점이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물론 남녀노소가 시청하는 방송에서 어떠한 기준도 없이 모든 수위의 표현을 다 허용하기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방송이기에 정교한 심의기준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방송 심의 기준은 가사의 전체 의미나 맥락을 살피기보다는 특정 단어나 구절의 표현 자체에만 치중하는, 일차원적이고 방어적인 심의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심의 방식으로는 기성세대의 방어적인 관점에서 듣기 편하고 청소년들에게 들려줘도 안전할 것 같다고 여겨지는 표현을 담은 가요만 대중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중음악의 위상을 비생산적이고 향락적인 수준에서 머물게 하고 록(Rock) 등의 사회참여적인 성격이 강한 장르의 곡은 대중에게 전달될 기회를 잃게 됨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화와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Victim(희생자)과 같이 여성문제나 계층문제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음악에 대해서는 더욱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기준에서 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해당 방송국 자체 제작물의 경우와 비교해보더라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유독 대중음악 분야에 대해서만 심의의 수위를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실례를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깊이 논의해보아야 할 문제를 담은 수많은 명곡들이 방송국의 방송부적합 결정으로 대중들에게서 멀어져 갔다는 점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주제 선정, 표현에 있어 뮤지션의 창의력과 다양성을 발현할 수 있는 선에서, 또한 다양한 세대와 문화인들의 참여를 통해 심의기준을 마련하고 해당 곡에 대한 보다 엄중한 평가는

시청자에게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 대중가요산업이 방송심의로 인해 또 다른 Victim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4년 2월 8일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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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사회 구조적으로 한국은 아직 문화적 토대가 영글지 못 햇습니다. 한반도에서 자리 잡고 있던 나라들은 문화의 대국이었고,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컨텐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언어, 음악, 미술, 풍속, 요리 등 깊고 맑은 맛을 지니고 있던 한반도의 문화. 절절한 감정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웃음을 즐기던 한반도의 문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컨텐츠는 세계를 감화시키고도 남을 것들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뒤틀린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그 컨텐츠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피를 말려왔어요. 일제 강점기, 국치일 이후 일제는 칼뿐만 아니라 역사 조작, 문화 조작, 의식 조작으로 한반도의 문화의 맥을 분질러 버렸습니다. 일제에 의해 '범'해졌어요. 그리고 분단. 한반도의 허리를 동강내버린 민족 상잔의 비극.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버린 민족은 결국 두동강났고, 문화의 맥도 두동강이 나버렸죠. 문화의 교류가 막히고, 서로의 문화를 계승 발전할 기회가 끊겨버렸으니까요. 서로 반토막난 문화를 가지게 되고 만 거라 이 말입니다. 게다가 그 이후, 남북 모두 독재 정권이 들어섰죠.


독재 정권. 독재는 정치를 '범'하고 언론을 '범'하고 경제를 '범'하고 사회를 '범'하고 문화마저 '범'합니다. 사람들이 의식을 선진적으로 바꾸어 나갈 기회를, 진보할 기회를, 깨인 사고를 할 기회를 박탈해버려요. 정치는 독재자의 시녀가 되고 언론은 열심히 빵빠레를 울리고 경제는 독재자의 자랑거리로 전락하고 사회는 독재자가 밟고 다녀 엉망이 된 흙길이 되죠. 문화마저도 엉망이 됩니다. 미술은 독재자를 찬미해야 하고, 음악은 독재자의 귀에 즐거워야 하고, 글은 독재자의 구두를 핥아야 합니다. 영상 예술도 마찬가지고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예요. 모든 것이 독재자를 위한 노리개가 되고, 인민들을 속이고 그들을 멍청하게 하는 바보상자가 되죠.


근데 그렇게 하려면 여러 방면으로 우리 독재자님의 '따사로운 손길'이 필요하죠. 혹시나 인민들을 현혹시키는 못된 '반동분자'나 '빨갱이'가 없나 자애로운 눈길로 끊임없이 지켜봐주고, 그놈들을 솎아내서 사랑이 듬뿍 담긴 매로 다스려야 하니까요. 혹시 그런 놈들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그들을 매우 치는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줘야해요. 미리 방지하는 차원에서.


문화 산업 종사자에게도 혹시 그런 놈들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끊임없이 쳐다봐주십니다.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처럼. 그런 관점에서 기능한 것이 바로 검열이에요. 독재자에게 거슬리는, 혹은 '거슬릴지도 모르는' 것들을 정말 1차원적이고 유치하고 애매한 기준으로 걸러내던 것들이죠. 그럼으로써 훌륭한 작품들을 탄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치하고 천박한 체질에 살아남은 천박한 컨텐츠만 존속시켰어요. 그 예가 바로 3S 산업이죠.


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이러한 행태는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자연물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관성이 있으니까요. 여전히 검열은 행해졌죠. 대신 검열이 봉사하는 대상이 독재자에서 기득권으로 아주 '살짝' 옮겨졌을 뿐이죠. 여전히 애매한 기준으로. 그 사전검열제도를 없애는 데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큰 기여를 했죠. 아마 그 계기가 '시대유감'이라는 곡이었을 겁니다. 사전검열제도에 의해 곡이 계속 커트 요청을 받으니 아예 MR만 앨범에 실어버렸죠. 그 후 사전검열제도가 폐지되자 그 기념으로 나온 것이 1997년 '시대유감'이라는 음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폐지되어도 간섭은 계속 되네요. 2004년에 올린 서태지의 위 글만 보더라도 말이죠. 특히 이번 정권 5년간은 더욱 심한듯 합니다. 제가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게임 산업, 음악, 등등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억압받고 있는 문화산업들이 여전히 존재하죠. 아니, 사실은 문화산업 전분야에서 퇴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인디밴드, 독립영화. 전통 문화를 계승하던 단체들. 이들에게 지원이 끊긴 것이 바로 MB 정권 시작하자마자라고 하니까요. 아, 다만 인디밴드는 카우치 사건으로 공중파 진출길이 막힌 탓에 대중들의 관심을 못 받게 된 탓이 일부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없는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요. 이런 식으로 문화 산업을 억압하고 자금줄을 끊으면서, 작품들에 간섭을 하죠. 사회비판적인 컨텐츠는 성장하기 참 힘듭니다. 서태지 말마따나 락은 죽어가고, 향락적인 음악만 남았습니다. 그놈의 '애매한' 간섭 기준 때문에 정말 눈살 찌뿌려질 정도로 노골적이고, 섹스어필이 과도한 시청각 종합 무대(별로 음악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시각 자극이 없으면 형편없는 것들이 너무나 넘쳐나요. 물론 음악이라는 것이 무대에서 가수들이 행하는 퍼포먼스가 일부 필요하기는 하지만, 요즘 무대는 그 비중이 너무 과도합니다.) 만이 남았어요.  어딘가 친숙한 광경 아닙니까? 앞에서 묘사한 독재 시대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겉으로는 민주사회라고 하는데, 속살은 여전히 5공 시대이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뒤틀린 한반도 문화의 맥은 외세와 독재에 유린당한 채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 하고 있는 듯 합니다. 8년 전에 남긴 서태지씨의 고발은 아직도 유효하고, 여전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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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도 잡지 않고, 퇴고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서태지씨가 쓴 글을 읽고 느낀 한탄의 감정을 가지고 한 시간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이 나와버렸네요. 예상치 못한 장문. 본래는 '첨언' 정도로 가볍게 쓰려는 것이 갑자기 어어어엄청 길어져버렸습니다.


밑에는 제가 쓴 글에 달린 덧글로, 훌륭한 피드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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