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 한창뜰때 분위기에 휩쓸려 샀다가 책장에 박아두고 이제서야 다읽내요; 1page라도 정리를 안하면 읽은것 같은 기분이 안들어서 감상문 올립니다. 제가 글에서 언급한 부분에 대해 이해도가 높으신분들 있으시면 쉽게좀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헤헤;;
우리의 삶을 도덕과 자유로 이해할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도덕과 자유는 그것이 실재하는지 증명해낸 사람은 없다. 우리의 삶을 이해한다는것은 자유와 도덕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 그것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가치를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인간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이에 반해 칸트는 인간 그자체가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언명령이다. 조건이 필요없다. 왜이것이 정언명령 일까?
칸트는 개개인 모두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를 원했던것 같다. 인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언제나 개인의 자유는 침해될 수밖에 없는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만을 논하는 사회에서는 누군가는 다른사람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그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것을 박탈 당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이때 인간은 그자체로서 목적이 되지 못하고 다른 가치에대한 수단이 되어버릴 뿐이다.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되버린 인간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로 살아간다.
자유란 무엇일까? 칸트는 이때 순수 이성의 실천을 이야기 한다. 자기가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규칙 그 규칙을 지키는것이 자유다. 인간은 끊임 없이 외부에서 그리고 내부에서 자극을 받는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것이다. 나는 배가고파 치킨을 먹고싶다. 치킨을 먹고싶다는 가언명령이다. 배가고파... 하지만 배가고픈것 나의 의지로 선택한것이 아니다. 이는 내부에서 오는 자극일 뿐이다.
순수 이성의 실천을 통해 나 스스로에게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나라는것을 그자체로서 목적이 되지 못하고 늘 이런저런 자극에 휘둘리게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순수 이성의 실천을 통한 가언명령 모든상황에 보편적인 그 가언명령은 무엇인가? 칸트는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같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이성은 무엇이 종속된 도구로서 사용되는 이성이아니라 그자체로 목적인 정말 순수하고 티하나없는 이성만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가언명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언명령은 무엇인가? 나로선 모르겠다. 칸트가 무엇이 순수이성실천에 의한 가언명령이다 주장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을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에 대한 보편적인 가언명령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따라야한다. 단 하나만을 주장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이 자유라고 말하고 싶다.
말은 지팡이다. 사람은 지팡이가 가르키는 곳으로 향한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사회는 도덕과 카오스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카오스를 이해할수는 없다. 도덕이 실재하는것을 전제로한 이사회를 받아들어야지 사회에 대한 이해를 쌓아올릴수 있다.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할수도 있다. 실재를 증명할수도 없는 존재를 대상으로 사회에 대한 이해를 쌓아올린다니 말이다. 하지만 도덕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중 하나라는 점은 인정해야한다.
실재한다는것은 무엇인가? 도덕 뿐만 아니라 무언가가 실재한다는것을 우리가 어떻게 증명해낼수 있는가? 색즉시공. 공은 색이고 색은 공이다. 이 우주가 특이점에서 시작했다는것을 인정한다면 모든 것이 공이라는 것을 떠올리기가 훨씬 수월할것이다.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까마득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것이든 파고들고 파고들면 전제하는것, 즉 무조건적인 가언명령, 다른말로 믿음 이라는것이 있다. 무조건 받아들이는것이다. 무언가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우린 존재와 비존재의 까마득한 영역사이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