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하다. 온통 내 몸을 감싸 묶은 이 검은색의 무언가는 계속해서 죄여들고 있었다. 몸에서 뚜둑뚜둑 소리가 나는 것은 내 착각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떡해, 어떡해!!!!!!!!! 이거 찢어지질 않아!!!!!!"
시끄럽게 소리를 내는 요정은, 그 노력이야 가상하지만 도움은 되지 않는다. 결국 나 혼자 극복하는 수 밖에 없는거지. 크게 심호흡, 그리고 맘을 다잡고 힘을 끌어올린다. 손과 발 끝으로 피가 돌듯이, 빠른 속도로 힘이 퍼져나가는 상상.
찌직.
파열음이 들렸다. 조금 더, 더, 더!
"으아아아아아!!!!!!!!!"
내 기합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연이어 팔다리의 자유가 돌아온다. 꽤 높은 곳에 잡혀있었던 것인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 탓에 어깨부터 떨어졌다.
"하윽..!"
"힘내, 디디! 너만이 저 괴물을 물리칠 수 있어! 어서 일어나!"
어느새 내 곁으로 포르르 날아온 요정이 나를 응원한다. 그래, 지금 저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건 나밖에 없지. 그건 알고있어. 하지만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싸움을 하란 말인지 설명부터 해줬으면 한다. 난 결국 요정에게 소리를 질렀다.
"서포터 요정이면 저기 잔뜩 모여있는 카메라 부대부터 어떻게 해보란말야!!"
"요정은 선량한 인간에겐 손을 댈 수 없는걸!"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 그 방향대로 한바퀴 빙글 돈다. 검지를 입술 끝에 가볍게 갖다대고 한껏 귀여움을 뽐내는 요정을 모기처럼 찍 소리나게 때려주고 싶다. 난 격한 동작으로 한무리의 카메라 부대를 가르켰다. 내가 이 짧은 바지나마 입었으니 망정이지, 저 대포같은 카메라를 들고 찰칵찰칵 날 찍어대는 저 놈들이..
"저게 선량해보이냐 넌!!!"
그 와중에 내가 손짓해준게 좋다며 환호성을 울리는 카메라 부대. 머리가 지끈지끈할 지경이다.
"힘내, 디디!"
"닥쳐, 시커먼 새끼들이 응원해줘도 힘 안나!!"
"저 거친 말투가 최고야, 디디!"
"다 꺼져버려!!!!!"
통칭 디디.
핫팬츠에 검은 니삭스를 신고있는 나는, 저놈들은 모르겠지만, 남자다.
분명히 나는 신을 양말이 다 떨어져 인터넷 쇼핑몰에서 여러개의 양말을 주문했었다. 도착한 택배를 뜯어 양말을 정리하던 도중, 생소한 것이 보여 나도 모르게 그것을 집어들었다. 손바닥보다 큰 비닐 안에 꽉 차게 포장되어있는 검은색의 양말. 이거, 음.
"니삭스잖아..?"
역시 아무리 봐도 니삭스다. 말로만 듣던 니삭스. 하지만 이거 여성용 아니었던가? 짐작가는 것이라면, 내가 발이 작은 탓에 여성용 양말로 여러개 주문해서 딸려온 것인가? 정도의 짐작 뿐이다. 하지만 이런걸 줘봐야 내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반송시켜 보내기에는 사은품으로 온 것이라 그것도 애매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인터넷에서나 종종 입은 사진이 올라올 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이상 거의 볼 수가 없는게 니삭스다. 실물이 우연히 손에 들어온 김에 한번 뜯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본 뒤에 누나를 줘버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봉투를 뜯었다. 그 순간, 뜯어진 입구에서부터 무지개빛 빛이 온통 쏟아져나와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그 빛은 금새 사라졌고, 대신 더 엄청난 것이 내 앞에 나타났다.
새하얀 피부, 그리고 그 어깨를 넘어 흘러내리는 금발의 트윈테일은 깜찍한 푸른색 리본으로 강조되어 있다. 단정한 흰색의 상의는 머리의 리본과 마찬가지로 눈이 부실만큼 환한 푸른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와 반대로 치마는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어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매끈한 다리는 검은색의 스타킹으로 감싸여져있다. 내가 그 모양을 보는 와중에 천천히 움직여 눈을 뜨는 작은 소녀. 그 눈동자도 푸르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올라올만큼 작고, 또 그 등에는 판타지 속 요정이 달법한 나비의 날개가 달려있다.
"어..이게 뭐...."
얼이 빠져 멍청하게 바라보고만 있으려니 완전히 눈을 뜬 소녀가 나와 눈을 맞췄다. 웃는 것만으로 화사하게 방이 피어나는 듯한 착각. 소녀 요정은 바닥으로 내려와 두손으로 내 손가락을 부여잡았다.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군요, 마법소년님!"
어? 뭐라고?
덕질하는게 나니가 와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