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게임을 접한 시점부터 오늘날 까지 꾸준하게 똥손이었다.
장르, 플랫폼은 중요치 않았다.
액션, 전략 시물레이션, 슈팅, FPS ....
오락실 게임기, 패미컴, PC 싱글게임, PC 온라인 게임,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DS,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
남들이 초반 튜토리얼을 별거 아니란 듯 대수롭지 않게 끝내고 있을 때에,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튜토리얼을 부여잡고 있다.
'어 이 보스 별거 아닌데 ? ㅋㅋ 님도 해보세요 .' 라는 말을 듣고, 나 역시도 대충 갔다가
클리어하지 못한 것이 일상이었다.
게임 시스템이나 지형에 대한 이해도 또한 상대적으로 낮아서, 조금이라도 바뀌는 날에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
.
.
이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통의 게임들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게임' 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불우하게도, 내가 살고있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많은 게이머들은 그러한 게임들을 몹시 좋아한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게임이라는 어감이 낯설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생소한 녀석들은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우리 주변에 길가에 걸어다니다 발에 채이는 돌부리마냥 흔하디 흔한 것들이 그런 게임들이니....
간단하게 일례를 들자면, 오락실에 있는 철권이나 킹오파와 같은 대전격투 게임, 오늘날 PC 에서 유행하는 MOBA (AOS 라고도 합니다 ) 게임들인
도타, 롤, 히오스 .... 하다 못해 유치뽕짝한 카트라이더나 포트리스 같은 게임들 마저도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나뉘어진다.
제아무리 내가 극혐하는 장르일지라도, 대세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거지로라도 할 수 밖에 없는 법.
어린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면, 내 취향은 둘째치더라도 같이 놀기 위해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해야만 했다.
반에서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유행하며, 랭킹에 범버맨이니 갈매귀니 하는 유저들이 몇 등이네, 몇 등이네 할 정도로 성행했던 때가 있었다.
반에 있는 친구들의 계급이 비행기네, 삼각형이네 하고 있을 때 나는 간신히 은메달 달고선 팩토리맵에서 양학당하며,
물풍선이 터지고난 뒤 가죽떼기만 남은 내 캐릭터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의 시대의 전성기가 도래하였던 당시의 내 게임 인생은 그야말로 최대의 암흑기였다.
당시에는 어딜 가나 임요환이 어쨌네, 이윤열이 어쨌네 하였고, PC방에 남자 친구 여럿이 모인다 = 스타 2 vs 2 or 3 vs 3
이 암묵적인 룰이나 마찬가지였다.
친구들 앞에서 똥손임을 보이기 겁먹었던 나는, 일종의 정신승리와도 같은 방법으로 탈피를 했었던 것 같다.
" 아 스타크래프트 ? 난 그거 별로 나랑 안맞고 재미 없어서 안해. 난 다른게임 해."
사실은 재미없어서 안하는게 아니라, 더럽게 못해서 다른사람 앞에서 하질 못하는 것이었는데 .... 애써 정신승리를 마친 나의
도피처는 RPG 였다.
비록 똥손이어도 느릿느릿 착실하게만 해나가다보면, 나 역시도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열심히만 하면 나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컨트롤로 하는 부분을 못하겠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게임의 재화를 획득해 스펙업을 하면 된다.
물론 RPG 내에서도 똥손이기에 받는 불이익과 자괴감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항상 '패배자' 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지는 않아도 되었다. 또한 패배자라고 멸시와 조롱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똥손인 나 조차도 게임을 게임 그 자체로서 즐길 수 있었던 장르라고는 RPG 뿐이었기에 그렇게 집착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의 유행이라는 물결은 그러한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해를 거듭할 수록 쇠퇴하는 RPG 시장. 신작은 고사하고, 그나마 나와있던 작품들도 하나 둘 서비스를 종료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내가 영혼을 불사르다시피 했던 나의 게임들은 어느샌가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고대 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몇몇 게임들은 기존 유저가 적응을 도저히 못하게 만들거나, 게임사에서 게임 자체를 망치다시피 하는 쓰레기급의 패치를
해서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들었고, 결국 내 손으로 접기에 이르렀다.
게임을 좋아하지만 게임을 너무나도 못했던 나는, 더이상 RPG 라는 도피처 속에만 안주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강제로 떠밀려지듯이, 앞발을 내민 경쟁게임의 세계는 참으로 냉혹했다.
특히 평균적인 게임 실력이 상위에 속하는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평균 이하점이다 못해 밑바닥을 뚫을 기세인 나에겐 더욱 더....
그들은 항상 화가 나있는 것 같았고, 게임을 하는 과정의 즐거움 보다는
'과정이 어찌됬든 승리한 게임' 이외에는 전혀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서로간의 친목을 다지기도 어려워보였고,
이게 게임을 하는 건지, 스트레스 주입 기계로 나의 머리통 속에 스트레스를 다이렉트로 주입시키는 건지 모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말들을 했었다.
'자기는 못한다는거, 실력 안오른다는거 다 그거 개소리에요. 집중해서 겜 하고, 공략 숙지해서 보고,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하면 실력은 늘게 되어있어요.'
..... 글쎄올시다 ? 다양한 장르의 경쟁게임들에서 공략도 보고, 연습도 많이 해보고 했지만 밑바닥을 벗어났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엄청 오래붙들고 있는 게임은 잘 쳐줘봐야 중하위권이 나의 최고기록이었다.
그랬기에, 이런 말들이 내 가슴을 더더욱 후벼파는 비수와도 같이 느껴졌다.
연습해서 실력이 올라간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 올라가는 실력에는 개인 별 '한계치' 라는게 존재하는 건 확실하다.
마치 포켓몬스터의 세계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포켓몬스터에서는 처음부터 성능이 아주 좋고, 경험치를 올리면 아주 좋은 전설의 포켓몬이 있고
처음에는 볼품 없지만 진화도 하고 경험치도 올리면 강해지는 포켓몬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에도 별볼일 없는 쓰레기이고, 아무리 키워본들 구린 성능의 한계를 보여주는 포켓몬이 있다.
나는 이 중에서도 3번째. 그리고 그 3번째 분류 중에서도 개체값 이 최하에 속한 부류가 아닐까 ...
어떻게 보면 태어날때부터 이미 나의 한계점은 여기라고 선을 긋고 시작하는 것과도 같단 이야기가 되는데,
이는 게임, 경쟁에 혈안이 되어있는 우리나라가 배경이 된다면 또 그만큼 비극일 수가 없으리라.
.
.
.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나이를 하나 둘 먹어가고
인생의 연륜이 1년, 2년 차곡차곡 쌓여감과 동시에, 근심많던 나의 마음도 어느정도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게 되었던 것 같다.
'못하면 어때? 다른사람들이 뭐라 한들 못하는건 못하는거고 조롱은 한귀로 흘리면 되지.'
있는 그대로의 못하는 나를 인정하고 그냥 내 식대로 내 나름대로 게임을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소식에 어린 시절 회피해왔던 스타크래프트를 잡게 되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 유행을 탈 때에는 하지 않다가, 어느덧 하는 친구 하나 없게 된 리그 오브 레전드 또한 시작하게 되었다.
누가 똥손인 나에게 '그렇게 못해가지고 겜 무슨재미로 하냐.' 라고 묻겠지만,
나는 내 나름 즐기며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본인 이외에도 이 글을 읽는 유저들 중에 똥손인 사람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본인의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