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생들의 학교폭력에 아홉 살 소년은 반신불수가 됐다. 소년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결국 법원이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지만 가해 학생 부모는 재산 명의를 바꾸고 ‘돈이 없다’며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정우네 가족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
가족의 절망은 2007년 봄 집 앞 문구점에서 시작됐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김정우(가명·14) 군은 문구점용 간이 오락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오락기 화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게임 빨리 끝내.” 같은 학교 동급생 4명이 뒤에서 정우를 재촉했다. 2학년 때 같은 반에 있으면서 정우를 괴롭히던 아이들이었다.
“잠시만, 조금만 더 하고.” 정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통수로 주먹이 날아왔다. 정우는 게임을 멈추고 일어났다. 오락기 옆에 있는 ‘뽑기’ 기계 쪽으로 걸어가는 순간 정우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의 중심을 잃었다. 뒤의 누군가가 “야, 시간 없는데 왜 이제 일어나!”라며 정우의 왼쪽 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바닥에 넘어진 정우가 일어서려 하자 뒤에서 더 센 발길질이 날아왔다. 정우는 뒤로 넘어지며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정우는 다시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도와 달라’고 외치려 했지만 말도 나오지 않았다. 4명은 재빨리 도망쳤다. 문방구 근처에 있던 정우의 한 살 터울 형이 쓰러진 동생을 향해 달려왔다. 정우는 눈만 멀뚱멀뚱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형은 친구와 함께 동생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옆에서 보고도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울부짖었다. 정우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 한순간에 장애인 된 소년
그날 이후 정우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정우는 다시 말을 시작했지만 말투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어눌해져 있었다. 왼쪽 얼굴과 팔, 다리 등 몸 한쪽이 마비돼 움직이지 못했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뇌경색이 생겼고 그 여파로 반신마비가 온 것이다. 담당 의사는 정우에게 뇌병변 1급의 중증장애 판정을 내리며 “수술 후에는 휠체어를 타라”고 했다.
엄마 이모 씨(44)는 아들을 이렇게 만든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정우는 병상에서 최준영(가명) 군과 임재현(가명) 군 등 4명이 자신을 때렸다고 했다. 이 씨는 학교를 찾아 각각의 담임교사가 동석한 가운데 네 아이를 한 명씩 만났다. “저는 그날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요.” “저는 그때 학원에 갔는데요.” “저는 그 문방구가 어딘지도 몰라요.” 아이들은 정우를 때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경찰 조사 때는 가해학생 부모들까지 가세해 폭행을 전면 부인했다. ‘우리 애는 절대 친구를 때릴 아이가 아니고 그날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반신불수가 된 정우가 가해자를 한 명 한 명 꼽았지만 때린 사람은 아무도 없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 탐문 결과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4명이 폭행에 가담했고 최 군과 임 군이 주로 때렸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가해학생은 9세, 10세의 어린 나이여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죗값을 치르게 하려면 부모들이 돈으로 손해배상을 하는 길밖에 없었다. 학교폭력 사건이 어른들의 ‘전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사건은 이듬해 민사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4명 중 최 군 한 명만 유죄를 인정했다. 사건 목격자로 법정 증언대에 선 정우 형의 친구 A 군이 최 군 한 명만 가해자로 지목한 게 결정적이었다. A 군은 재판 후 “임재현도 그날 폭행 현장에 같이 있는 걸 봤지만 그 친구가 학교 ‘짱’하고 워낙 친해 나중에 복수할까 봐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 홀로 끝나지 않는 비극
비극은 정우 혼자로 끝나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정우네 가족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정우 부모는 부부가 함께 동네 빵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정우가 병상에 누운 뒤 엄마 이 씨가 병간호에 전념하면서 남편 홀로 빵집 일을 해야 했다. 이 씨는 전국의 유명 병원을 다니며 아들을 고쳐줄 의사를 찾아 헤맸다. 혼자는 거동이 불가능한 아들을 등하교시키고 재활치료를 해주는 일도 엄마 몫이었다.
남편은 오전 4시부터 밀가루 반죽을 하기 시작해 밤 12시쯤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일상을 2년간 반복했다. 매달 수백만 원씩 드는 정우 치료비를 대려면 아르바이트생도 쓸 수 없었다. 남편은 피로가 누적돼 지난해 3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망막박리 등 눈에 이상이 왔고, 5개월 만에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다. 생계를 책임졌던 남편마저 장애인이 되자 빵집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정우 부모는 가게를 처분한 돈으로 소송비용을 대고 남은 돈으로 둘째 정우를 포함해 아들 셋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2010년 생기긴 했지만 그 이전에 벌어진 일이라 대상에서 제외됐다. 외부 도움은 아동복지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최근 수술비 지원을 받은 게 전부다.
기자가 정우 가족의 59m²(약 18평) 임대아파트를 찾았을 때 집 벽지는 습기가 차 곰팡이로 새카맣게 변색돼 있었다. 30년 된 건물이라 부엌에 물이 안 나와 욕실에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 재산 명의 넘겨버린 가해자 가족정우 어머니는 2010년 6월 대법원의 중재로 가해자인 최 군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1, 2심에서 모두 최 군의 유죄가 인정돼 대법원까지 갔고 담당 대법관이 합의를 해보자며 양측을 부른 것이다. 사건 3년여 만에 피해자와 가해자 부모가 처음 만난 자리였다.
최 군 아버지는 거기서도 “우리 아들은 때린 적이 없는데 정우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해 8월 최 군의 폭행 사실을 인정해 피해자 가족에게 4억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폭행으로 인한 장애 정도가 심각해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고 향후 일할 수 있는 나이를 산정해 일당으로 계산한 액수였다.
3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그렇게 끝날 줄 알았지만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난 직후 최 군 아버지는 정우 부모를 찾아와 “우리 아들이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사정이 딱하니 1000만∼200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제안했다. 어머니 이 씨는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면 최대한 노력해볼 마음이 있었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최 군 부모는 올해 5월 “배상액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개인회생은 채무자가 수입이 있는 경우 그 돈으로 5년간 생계비를 제외한 일정 금액만 갚으면 남은 채무는 없던 것으로 해주는 제도다. 최 군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어머니는 정부 중앙부처 중간간부로 재직 중인 국가직 공무원이다.
개인회생이 받아들여지면 정우네 가족은 법원이 판결한 피해배상을 거의 받지 못한다. 최 군 부모는 향후 5년간 매달 몇만∼십몇만 원 남짓한 돈만 피해자에게 주면 남은 배상액을 모두 탕감 받는다. 받을 수 있는 돈은 모두 합해봐야 1000만 원 안팎이다. 법원의 피해 배상 결정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정우 어머니는 “한 아이와 가족의 인생을 망친 죄에 대한 대가인데 평생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교묘히 책임을 피하려 한다”며 울먹였다.
정우 부모가 최 군 부모의 재산 목록을 확인한 결과 빈털터리로 보이기 위해 개인회생 신청 전 보유 재산을 일부 숨긴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 판결 후 4개월 만인 지난해 2월 최 군 아버지는 법원에 재산 목록을 신고하면서 자신 명의로 된 수억 원짜리 부동산을 누락했다. 공시지가 기준(올해 1월)으로만 1억9300만 원에 이르는 땅이었다. 최 군 아버지는 법원 재산 신고 3개월 뒤인 지난해 5월 그 땅 명의를 누나 등 다른 가족에게 넘겼다. 지난해 9월까지 꼬박꼬박 재산세를 냈던 땅이다. 최 군 부모가 낸 개인회생 신청에 대한 법원 심리가 열린 지난달 13일 판사는 최 군 부모에게 그 문제를 거론하며 “재산 신고를 사실대로 하지 않으면 (개인회생 심사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군 부모의 개인회생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날 법원에서 기자와 만난 최 군 아버지는 “원래 가족들을 위한 집안 땅인데 명의만 내 앞으로 돼 있던 것을 정상화시킨 것”이라며 “개인회생이라도 되지 않으면 우리 가정 역시 파탄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최 군 어머니도 “아이들 진술과 증언으로만 판결이 나 수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축구선수의 꿈은 어디로사건 후 5년, 이제 중학생이 된 정우에겐 그날 사건의 흔적이 온몸에 배어 있다. 4일 기자가 정우네 집을 찾았을 때 정우는 ‘딸그락’ ‘딸그락’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두 발로 걷지 못하고 왼쪽 다리가 들린 채 오른발 하나로 총총 걸음을 내딛는 소리였다. 옆으로 뒤틀린 왼발은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채 힘없이 흔들거렸다. 두 다리의 길이도 10cm쯤 차이가 났다. 오른쪽 다리는 계속 자랐지만 성장이 멈춘 왼쪽은 5년 전 그때에 머물러 있었다.
정우는 가해자 2명과 같은 중학교에 다닌다. 사는 동네도 같아 등하교 때마다 거의 매일 마주친다. 초등학교 때는 보조기구를 착용한 외모가 흉하다고 욕을 하거나 때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해자 2명 역시 거기에 동참했다. 정우는 “그 아이들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만 해준다면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정우는 지난달 16일 발목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아직 한국에는 검증된 치료법이 없어 완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우는 어려서부터 박지성 선수를 좋아해 축구선수가 꿈이다. 수술 뒤 회복을 위해 학교를 쉬고 있는 요즘도 하루에 서너 시간은 TV로 축구 경기를 본다. 정우 어머니는 ‘수술 결과가 좋아도 보통 사람처럼 살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아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