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당시 중국의 신예강자로 떠오른 왕시(王檄) 5단이 우승을 다퉜다. 대국장은 서울 삼성화재 본사에서 두어졌고 선수들은 건너편 롯데호텔에서 묵었다. 결승1국이 열리던 12월7일 아침, 이세돌 9단이 평소 절친한 삼성화재배 진행 총괄책임자인 P상무와 대국장으로 함께 이동하면서 뜬금없이 이런 말을 건넸다.
“상무님, 미안해서 어쩌죠? 아무래도 이번 결승전은 3국까지 가지 못할 거 같아요.”
감기 기운으로 이세돌 9단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상태인 걸 알고 있었던 P상무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엔 이9단의 표정이 자못 진지했기에 ‘생각 이상 몸상태가 좋지 않구나'라고 받아들였다. 주최측 입장에서는 당연히 최종국까지 가서 승부가 판가름나는 게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이세돌 9단의 “미안하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승부가 2-0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얘기이고, 이건 누가 듣더라도 컨디션이 안좋은 이세돌 9단이 자신감을 잃고 하는 말로 들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9단의 이어진 말이 기막혔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두 판으로 끝내야 할 거 같아요.”
2-0으로 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2-0으로 끝내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실제 2-0으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