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어서 다음 편도 올려요.
산티아고 가는 길, 카미노에서 만난 우리 부부 이야기입니다.
홀수는 여자, 짝수는 남자 시선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9. 란, 동상이몽(同床異夢)
프리미티보로 접어들면서 순례자는 급격이 줄었고, 그와 함께 걷기 시작하고 벌써 두 번의 주말이 지났다.
우리처럼 배낭을 메고 걷는 순례자를 만나는 일보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부지런하게 집을 짓고 있는 거미나 이른 아침부터 풀을 뜯는 송아지들의 방울소리를 마주치는 일이 더 잦았다. 길 위에는 우리의 앞으로 뒤로 끝없이 뻗어있는 산맥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멈춘 듯 시간 속에서 한발 한발 내딛는 그와 나의 발자국 소리만 세상에 울려 퍼졌다. 아수투리아스 지역에서는 그 흔한 지역주민을 마주치는 것까지 일상의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매일 아침 당연하게 펼쳐지는 안개는 내 팔을 뻗은 딱 그 거리만큼만 시야를 허락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준비할 수가 없었다. 두 눈을 아무리 끔뻑여도 허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조금도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생소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질문을 해도 시원찮은 답변을 고수하는 파비안이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답답한 내 미래와 닮아 있었다.
"너는 나랑 왜 함께 걸어?”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지난 주말에 이런 질문을 했다. 자유로운 그의 영혼은 여러 사람과 뒤섞여 잠을 청할 이유가 없었고 더욱이 누군가와 하루 이상을 함께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생긴 예외의 사유가 알고 싶었다.
“너는 내가 좋긴 해?”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할 것 같다. 어떤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보다 그에게 나라는 사람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지 않았으면 했다. 특별한 예외이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시원스러운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쓸데없이 고민거리만 하나 더 추가하고 말았다.
섭섭했다. 그에게.
아니다. 섭섭하다는 말을 하기에 나는 이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옷깃을 스치게 된 인연이라 하여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됐다. 그래도 나는 섭섭하였다. 게다가 아주 많이, 너무 많이 섭섭하여 섭섭하다는 단어 하나로 복잡한 감정을 전부 담아낼 수 없었다. 또한 그 섭섭함을 보상받자니 내가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입을 다물고 말을 아낀다.
풀 섶의 꽃들은 바람을 담아 노래하고 하물며 길가에 고인 빗물조차 진흙 웅덩이 속에 해를 품고 누구보다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아물아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내 감정들도 저들 못지않게 빛난다 생각했는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려는 순간, 마음까지 볼품없어지는 것은 왜 일까. 더는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더 이상 그와 함께해서 좋을 것은 없어.’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웃고 있는 그의 미소는 어느새 잔인한 바람이 되어 가슴을 찌르고 무심하게 지나가버린다. 가버리면 다시 돌아올 줄 모르는 바람처럼 내게 다가올 줄 모르고 그렇게 멀어지기만 했다. 잡아도 잡을 수 없고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는 구름 조각처럼 그는 언제나 내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내 무의식은 기대치를 탑처럼 쌓아 올리고 말 것이다. 어떤 것을 바라며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은 바벨탑처럼 끝도 없이 하늘로 솟아버리겠지. 그리고 곧 무심한 그의 바람은 내 탑을 매정하게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와 나의 관계는 굳이 탑을 쌓아보지 않아도 언젠가는 파도에 쓸려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로 지은 탑과 같았다. 처음부터 너무 방심했었다. 애초에 그와 함께 걷지 말았어야 했다.
이안의 상상 속 러브스토리는 적어도 이제 내게는 현실이 되었다. 나쁜 사람. 의미 없던 그의 망상이 어느 순간 이 어린 사람을 남자로 둔갑시키고 만 것이다. 처음엔 나와 함께 프리미티보 길로 와준 그가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의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보폭만큼 내 마음에도 다가왔다. 구차하게 내 생각과 마음을 전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고 이해주는 사람과의 소통이 간절했던 만큼 점점 사람들과 멀어지는 모순된 내 마음이 본능적으로 그를 알아봤다. 몇 마디 하지 않아도 그는 내 가슴속 깊게 맺힌 눈물을 알아 위로했고 때때로 누구도 관심 없는 내 감정 세포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섬세한 감각은 산만한 내 마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과 주변을 예리하게 관찰하지만 대부분의 것에 무관심한 그의 성격에 예외란 없었다.
‘다행인 걸까?’
친밀감이 느껴질수록 기쁨보다 불안함이 더 커져갔다. 이 길이 끝나면 바쁘게 움직이던 우리의 발도 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고 길과 함께 끝날 일회성 관계에 나를 밀어 넣기에 나는 이미 먹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이에 반해 그는 어떤 무모한 도전으로 시간을 허비해도 배울 것이 많고 아깝지 않은 나이였다. 9살이나 어린 그를 두고 내가 이런 생각에 빠진 것을 누가 훔쳐보기라도 한다면 비웃을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내 이런 생각을 전혀 모르고 있으며, 그저 길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열흘 하고도 수일 이상 씻을 때를 제외하고 늘 붙어 지냈다. 게다가 프리미티보로 접어들고 다른 순례자가 전혀 없었기에 의도치 않게 지금 그는 나의 유일한 동료이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데 유일한 전부가 된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어쩌면 나란 사람, 금세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감정이 헤픈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내 인연들은 언제나 상대방에게서 시작했었다. 늘 애정이 고팠기에 내가 좋다는 사람, 또는 내게 호감을 표시하면 그때부터 내 감정을 키웠고 관계를 형성했었다. 그저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그와 관계를 발전시키기에 우리가 처한 현실은 각자 너무 달랐다. 하여 그로 향하는 마음을 이성이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보지 않는 것뿐이다. 자연스럽게 그와 떨어질 방법을 모색하느라 머리 속이 다시 분주해졌다.
"Yesterday was history, tommorow is mystery, today is present."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신의 선물이다. 그래서 현재를 프레젠트(present, 선물과 동의어)라고 조앤 리버즈 (Joan Rivers)라는 사람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워낙 유명한 글귀여서 이미 여러 번 접했고 그때마다 “좋다! 오늘을 열심히 살자!” 했는데 산티아고 초입의 길바닥에서 이 글을 다시 보고 새삼 뭉클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오늘은 여전히 선물일까?
그와 떨어질 기회를 찾으면 찾을수록 주변엔 우리 둘 뿐이었다. 프리미티보로 접어들고 첫 번째 숙소에서도 그랬고 두 번째 숙소에서도 그랬다. 우리 주변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북쪽 길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오늘을 선물로 받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 시험을 치는 수험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떤 기도를 해?”
“이기적인 기도를 해.”
“이기적인 기도?”
“응. 박애주의자가 아니라 인류나 세계 평화 같은 것을 빌지도 않고,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기도하지도 않지.”
“원래 다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네가 말한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매우 드문 경우지.”
“정말 그럴까?”
“그래서 어떤 기도를 하는데?”
“내가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길 기도해.
사람에게도 사랑에게도 상처받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어.
물론,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상처받는 일도 없으면 좋겠고.”
“음, 상처가 꼭 나쁜 건 아닌데.....”
“알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상처를 통해 발전하고 성숙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잖아.
발전하고 성숙하는 건 당분간 안 하고 싶어. 안 해도 될 것 같아.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안정이야.
사랑과 일. 이런 것들이 이제는 안정되면 좋겠어.”
“내가 너를 잘 모르지만, 네가 말했던 너의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지금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여.”
함께 걷는 동안 내가 팔목에 있던 묵주를 꺼내 잡으면 그는 언제나 내게 거리를 두고 걸어 주었다. 묵주 알을 굴리며 중얼중얼 기도를 하는 시간을 허락해 준 그에게 고마웠다. 사실, 나는 자꾸만 그로 향하고 있는 내 마음을 멈추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와는 어떤 미래도 전혀 꿈꿀 수 없었고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감정을 그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나만 멈추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거란 생각이 확신처럼 들었다. 하지만, 우연인가, 신의 장난일까. 간절하게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길 위에 우리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침대 수만 50 가까이 되는 이 넓은 알베르게 숙소에 그와 나, 단 두 사람만이 이곳에.
프리미티보의 세 번째 날.
숙소가 나올 때마다 확인해보면 아무도 없어서 조금 더 걸어 다음 마을까지 걸어도 봤지만, 소용없었다. 일찍 도착하는 것도 아닌데 숙소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그 뒤로도 누군가 올 확률도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세 번째 날에도 커다란 숙소에 아무도 없었다.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봉사자도 커플이냐고 물으며 보내는 눈초리도 불편하고, 며칠 째 이런 날이 계속되니 이 어색한 분위기에 그라고 다를 리 없었다. 숙소 밖에라도 사람이 많으면, 아니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안 되는 스페인어로 붙잡고 수다판이라도 벌일 텐데, 간혹 마주치는 꼬마들도 수줍어 내빼기 일쑤였다. 씻고 빨래를 하고 오랜만에 밥에 후식까지 먹었는데도 시간은 벌써 몇 시간째 초저녁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손목시계가 멈춘 것 같아 식당 안의 시계와 휴대폰 시계를 확인해봐도 변하는 것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 듯 때 마침 정각을 알리는 성당 종소리가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애써 모른 척하기에도 지나치게 크고 우렁찬 그 소리, 더 이상 카페에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 있기 민망해졌다.
“이제 그만 갈까?”
“밤엔 이제 제법 춥네. 숙소엔 난방이 잘 될까?”
“5유로짜리 도미토리에서?”
“아무래도 무리겠지? 성수기도 지났고 여긴 프랑스 길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으니......”
쌀쌀한 기운에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그 넓은 숙소에 있는 난방시설이라곤 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힘아리 하나 없는 라디에이터가 숙소 입구와 제일 안쪽으로 2개가 고작이었다. 입구 쪽에 있던 것은 커다란 테이블과 탁자들이 담처럼 둘러 싸여 있었고 안쪽에 있는 것이 그나마 침대와 가까웠다. 어색한 분위기에 마시지도 못하는 와인을 석잔이나 들이킨 탓에 간밤에 더 추웠던 것 같았다. 문제는 자고 일어나니 간밤에 부린 추태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얼굴을 보기 민망해 서둘러 일어나 숙소에서 나왔지만, 막상 말없이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여 이리저리 갈피를 못 찾고 헤매는 사이 그도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조.. 좋은 아침!”
그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어색하게 내가 먼저 인사했다. 그러고는 재빨리 곁눈질로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말을 할지 반응을 살폈다. 몸에 열이 많다며 한결같이 반팔 티셔츠만 고집하던 그도 이제는 재킷을 꺼내 입었다.
“이제 아침엔 많이 쌀쌀하네.”
“그러네. 그래도 오늘 날씨는 좋을 것 같아. 안개가 어김없이 뿌연걸 보니.”
“안개도 심한데 모닝커피 한 잔 하고 천천히 출발할까?”
간밤에 나는 현실에 취하고 꿈속에서 주사를 부린 것일까. 그는 어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침부터 모닝커피 타령이나 하고 있다. 꿈속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그 기억에 대해 나는 그에게 물을 자신도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확인이 된다한들 달라질 것도 없으며, 무엇보다 따라올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그와 따로 떨어지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제처럼 그 넓은 숙소에 혼자 묵는 것보다 지금은 차라리 단둘이 있을 때 그 어색한 침묵이 낫다. 오전 내내 그의 눈치만 살피느라 걷는 것도 더 힘들었다. 간혹 그가 멈춰 서면 겁부터 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꽃잎처럼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보면 내 마음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예전처럼 걸음이라도 빨랐다면 벌써 그를 버리고 도망이라도 쳤을 테지만, 그런 무리수를 두기에 내 걸음 세 살 배기처럼 느렸고 무엇보다도 다시 혼자가 될 용기가 없었다.
“전에 산을 타 본 적 있어?”
“아니. 한 번도.”
“그런데 왜 매일 크고 작은 넘는 산을 넘어야 하는 카미노를 걷겠다고 나선 거야?”
그의 눈치를 보던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2년 전 이맘때, 프랑스 길을 걸었었어.
동네 뒷산도 넘어본 적 없던 내가 그때 고도가 1,000미터가 넘는 피레네를 처음 탔지.
그게 내 인생 첫 등산이었어.”
“그럼 어쨌든 이번이 완전히 초보는 아니네.”
“그렇지. 첫날 피레네를 넘는데 그런 생각을 했어.
아마 피레네가 아니더라도 산을 올라본 사람들은 한 번쯤 비슷한 생각들을 할 거야.”
“오르막 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지.”
“맞아! 산을 올라본 적이 없으니 전엔 전혀 몰랐어.
피레네를 오르는데 내가 생각했던 산과 달리 그냥 거대한 언덕을 오르는 것 같았어.”
산만한 마음을 잊은 나는 어느새 흥분하여 그날 기억을 떠올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피레네는 나무가 우거진 수풀이 아니라, 끝도 없이 넓은 들판이 있는 거대한 언덕 위를 걷는 기분이었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암소들도 보고 지독하게도 파란 하늘은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 낮게 깔려 있었지. 그런데, 그 커다란 언덕의 오르막은 아무리 올라도 그 끝이 없었던 거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언덕을 서서히 오르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드는 거야. 오전 7시부터 오르기 시작한 산을 오후 4시가 되어서도 여전히 오르고 있더라고.
저 언덕만 지나면 내리막일 거야. 저 언덕만 지나면 내리막일 거야.
그런 마음으로 내리막만 기다리며 걸었는데, 그런 생각을 한 다섯 번쯤 하니까 그때서야 내리막이 나오더라.”
“아! 이제 살았다. 내리막이구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이제 내리막이니 다 왔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하루 종일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그 사이에 내 발에는 이미 예닐곱 개의 커다란 물집이 생겼던 거야. 오르는 동안에 제대로 쉬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숨 한번 고르고 출발하는데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어. 왜 그런지 온몸에 끔찍한 근육통도 있었고.
그때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어. 산타는 거, 인생과도 참 닮아 있다는.”
산을 올라본 사람들은 느끼는 비슷한 느낌이 하나 있을 것이다.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 볼 때 느낄 수 있는 묘한 성취감과 다시 내려가면서 느끼는 안도와 편안함. 그것은 인생과 참 닮아 있다. 산의 크기나 높이는 인생 목표의 경중과 비슷하다. 오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도달하지만 막상 느끼는 기분은 항상 다르다. 마냥 성취감에 행복할 때도 있지만 어쩐지 시원섭섭할 때도 있다. 게다가 힘들 게 올랐다고 내려가는 길이 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고 더 아프다. 성취감이 클수록 허무함이 큰 것처럼, 사는 것도 그랬다.
중요한 것은 오르고 내려가야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이루고 난 뒤에 다시 내려가는 그 시간도 중요하다. 크고 작은 목표를 이루고 다시 좌절하고 또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카미노에서 크고 작은 산을 오르내리며 짧고 굵게 그리고 반복적인 경험으로 학습이 가능했다.
“4시에 내리막에 접어들었으면 첫날부터 꽤 늦게 도착했겠네.
나도 그때 늦게 도착해서 남은 침대가 당연히 한 개도 없었지.
그래도 뭐, 나는 워낙 비박을 좋아해서 그냥 텐트 치고 잤지만, 너는 어떻게 해결한 거야?”
이미 나에게 여러 번 비박을 제안했던 그는 내가 그처럼 비박을 해본 경험이 있길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내려가는 데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올라갈 때와 다르게 거의 70도의 가파른 경사를 부지불식간에 뛰어 내려왔다. 물집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발바닥이 땅에 닿기도 전에 떼어야겠단 생각만으로 언덕을 내달렸다. 미친 사람처럼 10kg나 되는 배낭을 메고 뛰어가니, 간혹 앞서가던 사람이 내 뒤통수에 대고 조심하라며 소리 질렀지만,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뛰어 내려가다 미끄러지기도 하고 구르기도 했다. 순간의 고통보다 발바닥과 발가락에 있는 그 작은 물집들이 수천 배는 더 견디기 힘들었다. 덕분에 비박하지 않고 침대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지만, 그때 후유증으로 물집은 그날부터 3주간 양쪽 발바닥 반을 덮었고 첫날부터 발톱에 피멍이 들어 산티아고까지 고생하다 산티아고에서는 결국 발톱이 3개나 빠져나가기까지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오르는 것만큼 ‘잘’ 내려는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인생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피레네 언덕은 내가 얼마나 오만한 사람이었는지를 제대로 알려 주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자꾸만 그에게로 다가가는 내 마음만 빼고 거의 모든 내 생각들을 읽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몰랐기에 그는 곧잘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했다. 가령, 산티아고에 자신이 즐겨가던 케밥집이 있다며 꼭 함께 가자고 한다던가, 피니스테라에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찾아가느라 잘 모르는 와일드 비치(wild beach: 야생 해변)가 있는데, 그곳의 거친 파도와 빼어난 일몰을 꼭 보여주고 싶다며 몹시도 설레어했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그도 종종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진지해지기도 했으나, 그는 사진도 찍지 않고 일기도 전혀 쓰지 않았으며 핸드폰도 없었다. 눈으로 풍경을 담고 마음에 그때의 느낌을 새겼다. 글 쓰는 재주가 있었다면 일기는 정도는 썼겠지만, 찰나의 순간이 곧 과거가 될 아까운 시간을 한 번이라도 더 기억에 남기고 싶어 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그의 신조는 전염병처럼 내게도 옮겨왔다. 그렇치만, 걱정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그의 신조는 사치에 가까웠다.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와 같은 나이라면 그처럼 오늘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아는 나는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그와 헤어져 곧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에는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더 중요했고 당장 먹고사는 생계가 시급했다.
“무슨 하루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
이렇게 먼 곳까지 온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 좀 쉬러 온 것 아니야?”
전에도 그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 그의 질문에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그가 나나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거나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조금 더 여유롭게 이 시간들에 머물기 바랐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옳은 것도 아니었다. 단 한 번도 내게 그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제안해 본 적 없었지만, 천하태평 풀을 뜯으며 유유자적한 그의 방식은 내게 정신적 사치였다. 나는 이미 그 과분한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그에게 내가 여전히 여유 없이 비쳤던 것은 그의 오해였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 기회를 찾느라 서둘렀던 모습이 그에게는 그렇게 비쳤다. 이것이 비록 내 진심이 아닐지라도 당장에 시급한 문제였다. 밀물이 들어오면 맥없이 쓰러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모래탑을 애써 공들여 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날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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